사진 찍는 눈빛 85. 그림을 살리는 사진



  오늘날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리는 꽤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기 앞서 여러 마을로 취재를 다니는데, 짧은 동안 온갖 곳을 두루 다녀야 할 적에는 밑그림을 그릴 겨를조차 내기 어려우니 사진을 바지런히 찍어요. 이렇게 찍은 사진을 살펴보면서 그림이나 만화를 그려요. 그렇다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면서 늘 사진을 보고 그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꼼꼼하게 그려야 할 건물이나 물건이 있을 적에는 사진을 찍습니다. 건물이나 물건을 앞에 두고 몇 시간씩 들여 느긋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곧바로 그림을 그리지만, 이렇게 하기 어려운 자리에서는 사진을 찍은 뒤 그림을 새롭게 그려요.


  한편, ‘사진으로 바라보는 눈길’을 헤아리려고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두 눈으로 볼 때하고 사진기로 볼 때에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눈’과 ‘사진기 눈’은 달라요. 그림은 ‘사람 눈으로 본대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삭혀서 새로운 숨결을 담으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리하여, 그림 한 장은 ‘눈으로 본 모습’을 그리되, 그림쟁이 마음속에서 새롭게 살아난 무늬와 결과 빛과 이야기를 되살리지요.


  지난날에는 사진쟁이가 그림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지난날에 처음 사진밭을 일군 이들은 ‘그림이 보여주는 무늬와 결과 빛과 이야기’를 곰곰이 살피면서 이를 사진으로도 담으려고 몹시 애썼어요. 이러던 흐름이 요새는 많이 뒤집어졌다고 할까요.


  그러나 그림과 사진은 서로 도우면서 새롭게 태어나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림은 사진을 보며 배우거나 사진한테 새로운 숨결을 가르치고, 사진은 그림을 보며 배우거나 그림한테 새로운 숨결을 가르칩니다.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쳐요.


  어른과 아이 사이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기만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는 동안 넌지시 어른을 가르쳐요.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는 사이 어느새 새롭게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그림을 살리는 사진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사진이 그림에서 많이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사진을 많이 살피고 돌아보는 까닭은, 그림이 사진을 많이 가르치면서 함께 배우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사진기를 틈틈이 내려놓고 연필을 손에 쥐면 한결 재미있습니다. 연필을 손에 쥐고 그림을 그려 보셔요. 사진기를 빌지 말고 ‘내 두 눈’으로 둘레를 살피면서 종이에 이야기를 그려 보셔요.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사진을 찍으면 ‘사진으로 보는 눈’도 언제나 새롭게 거듭나면서 아름다운 노래가 흐를 수 있습니다. 4347.1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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