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발자취 - 요시즈키 쿠미치 단편집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96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 너와 나의 발자취 (단편집)

 요시즈키 쿠미치 글 ·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8.30.



  나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어른이 됩니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새로운 숨결을 얻어 이곳에서 하루하루 자랍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철이 들고 생각을 깨치면서 어른이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어른이 되는’ 사람이지 ‘어른이 된’ 사람은 아닙니다.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요,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어른 나이가 되어 짝을 지은 뒤 아이를 낳습니다. 짝을 짓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시집이나 장가를 가야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마음이 맞는 짝을 찾아서 사랑을 속삭일 때에 비로소 아이를 낳습니다.



- “사람은 ‘꿈’조차 살아갈 양분으로 삼을 수 있죠. 난 그렇게 생각해요.” (16쪽)

- “어머니는 지난달에 과로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럼,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서 힘드시겠네요.” “글쎄요. 솔직히, 괴로운 것도 같고, 마음이 놓인 것도 같고, 복잡한 심정이에요.” (52∼53쪽)



  아이를 낳는 두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면, 이때에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가 된 사람이기에 어른이지는 않습니다. 어버이가 될 뿐입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사람을 어른과 아이로 나누었습니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나이가 많아도 아이라 했고, 철이 든 사람은 나이가 어려도 어른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이값으로 사람을 잴 수 없고 따지지 않습니다. 나이값을 앞세워 높임말을 쓰라고 윽박지른다면 철없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철든 사람은 둘레 사람한테 ‘자네가 나한테 높임말을 쓰면서 나를 섬기거나 우러러야지’ 하고 말하지 않아요. 철든 사람은 슬기롭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고루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줄 압니다. 높이려면 서로 높일 노릇인 줄 알기에 철이 있어요. 아끼려면 서로 아낄 노릇인 줄 알아서 철이 있어요.



-“제발, 엄마! 나도 언젠가 엄마가 된다고요! 나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줘요!” (66쪽)

- 알아차린 분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히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히나에게만 보이는 세계, 남보다 무언가가 적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없는 무언가가 많은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89쪽)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빚은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 (단편집)》(서울문화사,2013)를 읽습니다. 《너와 나의 발자취》는 ‘단편집’이 따로 있고, 여러 권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따로 있습니다. ‘단편집’에서는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바라보는 발자취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어머니로 걷는 하루를 보여주고, 아버지로 거니는 하루를 보여줍니다.



- “저기, 어, 어떤 곳이야? 내가 모레부터 살게 되는 도시는.” “척 보니 넌 가면 물에 뜬 기름처럼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 거야. 마치, 내가 이 섬에서 겉도는 것처럼.” (99쪽)

- “어때? 마음에 들어? 그 차림.” “놀라서 고추가 쪼그라든 것 같아. 하지만, 나에게는 역시 안경과 이 섬이 제격인 것 같아.” (105쪽)

- “그거 입고 내 몫까지 잘 살아. 익숙해지면 아마 도쿄 생활이 엄청 즐거울 거야. ……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 수 없는 걸까?∥ (106∼107쪽)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요? 오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 새 길을 걷는 우리는 어떤 발자취를 우리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물려줄까요?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녁 삶을 아름답게 누렸을까요? 내가 낳은 아이들은 내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어느 자리에나 그예 물음표입니다. 그러나, 즐겁게 물음표를 찍습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가 걷는 길을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바라볼는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즐겁게 가꿀 적에 나는 웃고 노래합니다. 웃고 노래하는 내 삶이면, 내 어버이와 내 아이들 모두 즐겁게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 ‘맞아. ‘나’는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의 나로 있고 싶어.’ (111쪽)

- “헤헤, 아주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나 덜렁이거든.” “힘들었겠다. 그러면.” “음, 좀 불편하긴 해. 어른들은 배려해 주지만, 아이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거든. 오늘 사촌오빠네 집에 묵기로 했는데, 그 오빠는 처음 만난 날 내 손목을 보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어. 그 다음부터는 나도 만나기 좀 거북하더라. 이번에도 그 오빠 만날 걸 생각하니 너무 우울해서, 여기 온 건 좋은데 마음이 울적해서 산책 중이었어.” (151∼152쪽)



  밥을 짓습니다. 나도 먹고 아이들도 먹습니다. 밥을 차립니다. 내 어버이도 먹고 나도 먹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가 차린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차리는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서로 즐겁게 어우러집니다. 함께 기쁘게 웃습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내 가슴에 조그맣게 씨앗으로 심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한테서 물려받는 사랑을 저희 가슴에 자그맣게 씨앗으로 심어요.


  씨앗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씨앗입니다. 아이와 어버이는 사랑이라는 끈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이어받는 사랑을 가슴에 곱게 씨앗으로 심어서 천천히 자라 어른이 됩니다. 철이 들고 생각을 깨쳐 슬기롭게 삶을 짓고 싶은 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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