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A 마나가 - comics artists' creative time
MANAGA 편집부 지음 / 거북이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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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08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

― MANAGA 1

 거북이북스 엮고 펴냄, 2014.10.15.



  생각을 꽃피울 수 있는 사람이 글을 씁니다. 생각을 꽃피우면서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림을 그립니다. 생각을 꽃피우면서 춤출 수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생각을 꽃피우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만화를 그립니다.


  새로 짓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새로 지을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한겨레는 ‘짓다’라는 낱말을 빌어 ‘밥을 짓다·옷을 짓다·집을 짓다’처럼 이야기했어요.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크게 다루거나 여길 ‘밥·옷·집’은 ‘지어야’ 누립니다.


  그리고, 예부터 한겨레는 밥과 옷과 집뿐 아니라, ‘이야기를 지으’면서 서로서로 주고받습니다. 어버이아 아이한테 이야기를 지어서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새로 지은 이야기’를 물려받습니다.



.. 내 그림체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굉장히 허술하다. 그렇지만 그림체를 바꾸거나 작화의 밀도를 높일 생각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제일 적합하기 때문이다 ..  (주호민/21쪽)





  한겨레는 먼먼 옛날부터 ‘노래를 짓’습니다. 밥과 옷과 집에다가 이야기뿐 아니라, 노래를 지어서 부릅니다. 노래를 지어서 부르니, 춤도 지어서 추지요. 이뿐이 아닙니다. 한겨레는 웃음을 짓고 눈물을 짓습니다. 때로는 한숨을 지으며, 때로는 꿈을 짓습니다.


  언제나 짓습니다. 밥을 짓는 한편, 몸이 아플 적에는 약을 지어요. 그러니까, 한겨레는 ‘삶짓기’를 했다고 할 만합니다. 삶을 지어서 생각을 짓고, 생각을 지어서 사랑을 짓습니다.


  다만, 한겨레한테는 따로 글이 없었어요.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 나오기는 했으나, 훈민정음은 권력자와 지식인이 조금 건드리는 글일 뿐, 여느 사람한테는 너무 동떨어진 자리에 있었어요. 개화기를 지나고 일제강점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 밝은’ 이들이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꾸었어요. 한글로 바꾼 뒤부터, 이제 이 나라에는 ‘글짓기’가 새로 태어납니다.



.. 나이 먹고 눈이 어두워지니까, 그림이 안 되더라. ‘잘 그릴 나이에 왜 저렇게 그리나’ 하고 선배들에게 불평했던 나였는데. 만화는 눈과 손이야. 노안이 온 지금은 팔로 그려. 아직 몸으로 그리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  (백성민/74쪽)




  글짓기는 억지로 짓는 글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삶을 짓고 밥을 짓듯이, 이야기를 짓고 노래를 짓듯이, 아름다운 사랑을 짓는 글이 바로 ‘글짓기’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만화는 무엇일까요? 만화는 어떻게 한다고 해야 알맞을까요?


  글과 그림처럼, 이야기와 노래처럼, 사진과 만화도 즐겁게 ‘짓는다’고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엮어서 이야기를 펼치는 삶노래라 할 테니까요.




.. 어느 날 제 일기를 우연히 본 최호철 교수님이 ‘앙꼬, 너 자체가 바로 만화다’라고 하셨어요. 전 일기를 그리고 썼을 뿐인데, 최호철 교수님이 그렇게 얘기해 주시니까 좋았어요. 그 칭찬이 없었다면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만화는, 완성한 뒤에 느끼는 성취감이 정말 커요 ..  (앙꼬/100쪽)



  《MANAGA》(거북이북스 펴냄,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MANAGA》는 ‘만화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책이름을 알파벳으로 적은 뜻은, 이 만화잡지를 한국에서만 읽힐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라밖으로 한국만화를 알리려는 뜻입니다. 그래서 《MANAGA》는 한글과 영어 두 가지 글로 적습니다.



.. 몽골의 그 시절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의 목표가 아니었던, 웅혼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시대였으니까. 작은 이익에 목숨을 거는 요즘과는 달랐던 그 시대를 그리고 싶었다 ..  (장태산/152쪽)





  한국에서는 어떤 만화가 태어날까요? 한국만화는 일본만화를 흉내내는 만화일까요?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이들은 일본 만화영화 밑그림을 그리는 일꾼 노릇일까요?


  만화잡지 《MANAGA》는 한국에서 즐겁고 씩씩하게 만화를 그려서 이야기를 꽃피우려는 사람들을 하나씩 보여줍니다. 도란도란 말을 섞고, 한국 만화가 작품 가운데 몇 점을 살며시 얹습니다.



..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낮에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졸면서 만화를 그리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거의 누워서 그림을 그렸다. 삐딱하게 누워서 그림을 그리니까 턱이 그렇게 삐딱하게 빠진 거다. 누워서 그리니 뭔가 불균형한 게 당연한 거지 ..  (박소희/195쪽)



  만화가는 만화를 왜 그릴까요? 만화를 그리고 싶으니 그리겠지요. 만화가는 만화를 그리면서 무엇이 즐거울까요? 처음과 끝을 맺은 이야기가 즐거웁겠지요.


  만화가 한 사람이 빚는 이야기는 만화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입니다. 만화가 한 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만화가 한 사람이 부대낀 이웃들과 누린 사랑입니다.


  혼자 살면서 사회와 부딪힌 만화가는 이녁대로 이 이야기를 만화로 담습니다. 아이를 낳고 복닥인 만화가는 이녁대로 이 이야기를 만화로 담습니다. 회사를 다니든 여행을 다니든, 이녁은 이녁대로 이 이야기를 만화로 담습니다. 도시에서 살면 도시 이야기를 다루고, 시골에서 살면 시골 이야기를 다룹니다.





.. 여행 중에 생각이 참 많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신기한 걸 많이 보니까. 결국 다시 드는 생각은 ‘이야기 만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만화를 그려야죠. 죽여주는 걸로 ..  (김정기/220쪽)



  그러고 보니, 만화잡지 《MANAGA》를 보면서 아주 궁금한 한국 만화가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아이 낳고 흙 만지는 즐거움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면서 만화 그리기를 살짝 뒷전으로 미루기도 한 박연 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앞으로 《MANAGA》에서는 시골 아지매 만화가인 박연 님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만화가 이야기를 올망졸망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첫 걸음을 내딛은 만큼, 앞으로도 힘차고 씩씩하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내딛을 수 있기를 빕니다. 멋들어진 작품이나 그럴듯한 그림이 아닌, 아름다운 삶과 따사로운 사랑이 감도는 만화와 삶과 넋과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잡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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