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宮 23
박소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75



집을 찾는 길

― 궁宮 23

 박소희 글·그림

 서울문화사 펴냄, 2010.7.30.



- “그, 그런 게 어딨어요. 요즘 세상에. 나더러 수절하고 살라구요? 나, 나도 할 거예요, 결혼. 자긴 상궁 주제에 결혼할 거면서! (107쪽)

-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 인력 때문에 너와 나는 부딪혀 망가져버리고 말았겠지. 차라리 궤도를 이탈해 멀리 달아나자고. 그러면 조금은 덜 괴로울 것 같아, 라고. 너를 부서뜨리지 않기 위해. 내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 (137쪽)



  박소희 님 만화책 《궁宮》(서울문화사,2010) 스물셋째 권을 읽는다. 곰곰이 읽은 뒤 다시 읽어 본다. 이야기가 흐르는 무대는 ‘입헌군주제’이지만, 줄거리가 흐르는 자리는 ‘젊은 사내와 가시내’ 틈바구니이다.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대통령은 어떤 자리인가. 사람 사이에 계급이나 신분이란 무엇인가. 젊은 사내와 가시내는 사랑을 어떻게 나누는가. 서로 아끼거나 좋아하거나 기대거나 돕거나 보살피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처음 태어나서 스물 살이 될 무렵까지 이 나라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궁궐에 있든 도시 여느 아파트에 있든, 이 나라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교과서 지식이 아닌 사랑을 살가이 배우거나 마주하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 궁궐 밖으로 홀가분하게 나다니지 못하는 아이는 삶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여느 제도권 사회와 학교에 길들다가 고등학생 나이에 궁궐에 들어가서 지내는 아이한테 사랑이나 삶이나 사람이란 무엇일까.


  ‘임금 자리 물려받기’를 놓고 젊은 사내가 옥신각신할 수 있다. ‘임금이 되려는 꿈’을 품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엮어서 보여주려는 뜻은 무엇일까 살짝 궁금하다. 임금 자리에 서면 나라를 아름답게 다스릴 수 있을까? 사랑다툼을 벌여 어느 한 사람을 혼자 차지할 수 있으면 기쁘게 웃을 수 있을까? 왜 사내와 가시내는 살을 섞어야 할까? 두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을 섞을 때에 서로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줄거리가 빠르게 흐르지만, 삶을 드러내거나 사랑을 밝히거나 사람을 보여주는 실마리는 좀 가볍거나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듯하다.


  ‘궁宮’은 ‘궁궐’을 가리키기도 할 테지만, ‘집’도 가리킨다. 임금이라는 사람이 깃드는 곳이든 임금 아닌 사람이 깃드는 곳이든 모두 ‘집’이다. 집으로 가는 길이란 보금자리로 가는 길이다. 어느 곳에 깃들든 모두 같다. 임금‘님’이 되지 않고 ‘수수한 사람’이 되더라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꿈을 키울 수 있다.


  “상궁 주제에 결혼할 거면서”라는 말마디가 오래도록 안 잊힌다. 그래, 그렇구나.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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