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부름말



  일곱 살 큰아이가 이제는 으레 ‘어머니’라고만 말한다. 네 살 작은아이도 누나처럼 으레 ‘어머니’라고만 말한다. 일곱 살 큰아이는 저 스스로 “나도 이제 ‘어머니’라고만 할래.” 하면서도 곧잘 ‘엄마’라는 말을 섞더니, 요즈막에는 ‘어머니’라는 말만 하는구나 싶다.


  큰아이한테 틈틈이 말하기도 했지만, ‘엄마’라는 낱말은 ‘아기 말’이다. ‘어른 말’도 ‘아이 말’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낱말을 잘못 쓰거나 잘못 말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따라서 써야 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옳게 쓰는 말이라면 우리도 즐겁게 옳게 쓰면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까지 우리가 따라서 써야 할 일이란 없다.


  살면서 늘 느끼는데, 잘못된 것이 뿌리를 내리는 때가 더러 있으나, 잘못된 것은 언젠가 뽑힌다. 백 해나 오백 해가 흐른 뒤에라도 뽑히고야 만다. 잘못된 것은 천 해나 만 해가 흐른 뒤에라도 뽑힌다. 뽑힐밖에 없다. 잘못되었으니까.


  옳은 길은 늘 옳다. 옳은 길이 짓밟히건 가려지건 대수롭지 않다. 옳은 길은 앞으로 언제가 되든 열린다. 다시 말하자면, 참은 언제나 참이고, 거짓은 언제나 거짓이다. 좋고 나쁨이 아닌, 참과 거짓이다. 이리하여, 옳은 길을 생각하며 참된 넋으로 가다듬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늘 옳은 길을 걸으면서 참된 넋을 북돋울 수 있다.


  나는 곁님을 ‘어머니’라 부르고, 곁님은 나를 ‘아버지’라 부른다. 어느 날 돌아보니 우리는 서로 이렇게 부르면서 지낸다. 문득 헤아리니, 아이들은 늘 어버이 말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배우는 터라,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해야 하기도 하다. 그래야, 두 아이는 어린 나이에 헷갈리지 않고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면서 익힌다.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느 만 한 나이가 되면, 곁님과 나는 서로 다른 부름말로 가리킬 수 있겠지.


  아이들은 나와 곁님이 서로 ‘아버지·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늘 듣기 때문에 이런 말씨에 익숙하다. ‘엄마·아빠’ 같은 소리를 갓난쟁이 적에 쓰기는 했으나, 나와 곁님이 ‘아기 말’은 아이들이 갓난쟁이에서 벗어난 뒤부터 집에서 한 번도 안 썼으니, 아이들은 차츰 나이가 들면서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깨닫는다. 아이들 이불자락을 여미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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