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말랑감 줍기
가을에 말랑감을 줍는다. 비바람이 몰아친 날이면 어김없이 툭툭 떨어진 말랑감을 줍는다. 이제 우리 집 뒤꼍 감나무 두 그루에 남은 감은 꼭 한 알. 안 떨어지면 까치밥이 되고, 떨어지면 우리 집 아이들이 먹는다. 우리 집 말랑감은 어른인 내 주먹보다 굵다. 이 말랑감이 감나무에서 떨어질 때면, 꽤 멀리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툭’이나 ‘텅’ 소리를 낸다. 흙바닥에 떨어지면 ‘툭’이고, 지붕에 떨어지면 ‘텅’이다. 풋감이 떨어질 때이든 잘 익은 말랑감이 떨어질 때이든 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모른다. 게다가, 비가 온 날 떨어진 말랑감을 주울 적에는 감알빛과 감잎빛이 대단히 곱다. 어떤 그림쟁이도 이와 같은 빛깔로 그림을 그리지 못했으리라 느낀다. 어떤 사진쟁이도 이와 같은 빛결을 담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감알만 주우려고 뒤꼍에 갔는데, 도무지 그냥 주울 수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사진기를 챙긴다. 감알을 줍기 앞서 흙바닥에 감잎이랑 어우러진 감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입으로 먹는다’에 앞서 ‘눈으로 먹는다’를 떠올린다. ‘눈으로 먹는다’에 앞서 ‘마음으로 먹는다’를 그린다. 예부터 사람들은 입으로 먹기 앞서 눈으로 먹고, 눈으로 먹기 앞서 마음으로 먹었구나 싶다. 그리고, 마음으로 먹기 앞서 ‘생각으로 먹는다’를 누렸을 테지. 가을에 주렁주렁 맺히는 감을 생각하면서 날마다 즐겁게 살았으리라 느낀다.
즐겁게 말랑감을 주워 칼로 석석 썰어 아이들한테 건넨 뒤 생각에 잠긴다. 시골마을 우리 집뿐 아니라, 도시에 있는 모든 이웃들도 집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를 누릴 수 있어서, 손수 감알을 줍거나 따고, 두 손으로 감나무를 살그마니 쓰다듬으면서 아름답게 하루를 빚는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고. 4347.10.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