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로 쓰는가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부터 어른이 함께 읽는 문학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일 텐데,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다’는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어른도 함께 읽는 글이지만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하는 줄 살피면서 글을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문학은 거의 모두 어른이 쓰는 글이기 때문이에요.


  어린이문학을 쓰려는 어른은 ‘어른으로서 아는 말’로 글을 써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 눈높이로 글을 써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을 쓸 적에는 ‘낱말 숫자를 500에 맞추’거나 ‘낱말 숫자를 2000에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낱말 숫자를 100에 맞추’어서 쓰기도 해야 합니다. 두어 살 아이가 읽을 그림책이라면 낱말 숫자를 100에 맞춥니다. 서너 살 아이가 읽을 그림책이라면 낱말 숫자를 200∼300에 맞춥니다. 너덧 살 아이가 읽을 그림책이라면 낱말 숫자를 500에 맞춥니다. 여덟 살 아이가 읽을 그림책이라면 낱말 숫자를 800∼1000에 맞추고, 열 살 아이가 읽을 동시집이나 동화책이라면 낱말 숫자를 1500∼2000에 맞춥니다.


  ‘낱말 숫자’란 무엇인가 하면, 이 낱말 테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틀입니다. 아이한테 ‘새로운 말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으로 아무 낱말이나 어린이문학에 써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받아들이거나 알아듣기 어려운 낱말을 넣어서 쓰는 글은 ‘배울 만한 글’이 되지 않습니다. 두 살 아이한테 부엌칼을 건네어 도마질을 시키는 꼴입니다. 네 살 아이도 낫질을 할 수 있지만, 아직 이릅니다. 낫질은 여덟아홉 살 즈음에 시켜도 됩니다.


  슬기롭게 글을 쓸 수 있다면, 낱말 숫자 500으로도 열여섯 살 푸름이가 읽을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낱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을 쓰는 어른이라면, ‘더 많은 낱말’이 아닌 ‘삶을 밝히는 바탕이 되는 낱말’을 제대로 살펴서 써야 합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말을 더 많이 더 빨리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낱말 하나마다 깊고 너른 사랑과 꿈을 헤아리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는 나이와 머리와 넋에 맞추어 ‘낱말 숫자’를 천천히 늘립니다. 여덟 살을 지나 열 살 언저리부터 ‘낱말 숫자’를 제법 크게 늘릴 수 있고, 아이가 열두 살에 이르러 열세 살로 넘어갈 무렵에는 2500∼5000 낱말까지 쓸 수 있기도 합니다.


  너덧 살 아이가 읽을 그림책에 낱말 숫자를 500으로 맞춘다면, 이 낱말틀에 어떤 낱말이 들어갈까요? 슬기롭게 살피고 아름답게 돌아보며 사랑스레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낱말틀 500에는 ‘필요·시작·통하다·감사·행복·미소·바이바이·상상’ 같은 낱말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런 낱말은 왜 못 들어갈까요? 이런 낱말이 못 들어간다면, 우리 어른들은 어떤 낱말로 이야기를 풀고 실마리를 엮어야 할까요?


  어떤 낱말을 추슬러서 어린이문학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와 어른이 함께 나눌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결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삶이 달라지는 흐름에 따라 꿈과 사랑이 달라집니다. 4347.10.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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