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사계 - 자급자족의 즐거움
김소연 지음 / 모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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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65



시골에서 일하고 노는 예쁜 삶

― 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

 김소연 글·사진

 모요사 펴냄, 2014.9.22.



  도시에 사는 이웃이 나더러 묻습니다. 왜 시골에 가서 사느냐고, 도시에 있으면 일거리도 많을 뿐 아니라, 이름을 날릴 자리도 많을 텐데, 하면서.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야기합니다. ‘별을 보고 싶어서요.’


  시골에서 만나는 이웃이 나한테 묻습니다. 왜 시골에 왔느냐고, 다들 도시로 가는 판에 거꾸로 시골에 오는 까닭이 무어냐, 하면서.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긴 뒤 이야기합니다. ‘맑은 바람을 쐬고 싱그러운 물을 마시고 싶어서요.’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이웃들이 더 묻지 않으나, 나는 굳이 덧붙여서 한 마디를 합니다. ‘시골에서 살면 멧새와 풀벌레와 나무가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즐거워서 날마다 웃을 수 있어요.’



.. 두려움보다 즐거움이 더 컸던 것은 만드는 일 자체가 가져다준 기쁨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구든 필요한 물건이든 손수 땀 흘려 만들면서 목수는 만족했다 … 빈집에 들어가 쐐기 모양을 배웠다는 대목에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시골마을이라면 어디나 외딴 곳의 빈집 한두 채는 있게 마련인데, 그런 곳에 들어가 요행히 부패를 면한 나무 등걸을 주워 오거나 부서진 옛날 살림살이를 쳐다보는 것이 목수의 낙이었다 ..  (28, 34쪽)



  우리 보금자리는 퍽 조그맣습니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꽤 작습니다. 우리는 아직 땅을 넉넉히 누리지 못합니다. 앞으로 돈을 푼푼이 모아서 집을 손질하고 땅도 장만할 생각입니다.


  요즈음 시골로 삶터를 옮기는 분들은 으레 땅이며 집을 넉넉히 장만하지만, 우리는 집만 가까스로 장만해서 들어왔습니다. 돈이 없이 어떻게 시골로 가서 사느냐 하고 걱정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은데, 돈이 있건 없건 사람들은 스스로 살고 싶은 데에서 살기 마련입니다. 도시에 그대로 눌러앉아서 지내는 사람들이 ‘돈이 있어’서 도시에서 살지 않습니다. 그저 도시에서 살 길을 찾으려고 하니까 도시에서 살 뿐입니다.


  살 길은 어디에서건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맨손과 빈주먹으로도 얼마든지 살 길을 찾을 수 있어요. 부탄이나 네팔에 가더라도 살 길을 찾을 수 있어요. 어느 나라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시골에서 안 사는 까닭은, 시골에 살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시골에서 안 살지 않아요. 돈이 있어도 시골에서 안 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초·중·고등학교 교육이 오로지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돈을 벌어 살림 꾸리는 이야기’에 얽매이고, 대학교는 죄다 도시에 있을 뿐 아니라, 대학 교육도 그저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기’만 보여줍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든 시골에서 나고 자라든,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모든 아이들이 ‘도시바라기’가 되고 맙니다.



.. 재봉틀을 쓰면 바늘담이 탄탄하고 속도가 붙어서 좋고, 손바느질은 바늘땀의 모양이 정감 있고 직접 손을 놀리는 재미가 있어 좋았다. “만들 수 있는 물건을 굳이 돈 주고 살 필요 없잖아.” … 우리 딸도 저렇게 자라날까? 쪼개진 나무껍질만 봐도 참나무, 밤나무 구분할 줄 아는 사람 … 바느질의 즐거움은 바늘에서 오는 게 아니라 바늘을 쥔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게 분명했다 ..  (83, 91, 93쪽)



  시골살이는 시골살이입니다. 시골살이는 ‘전원생활’이 아닙니다. 시골살이는 시골살이일 뿐, ‘귀촌’도 ‘귀농’도 아닙니다.


  《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모요사 펴냄,2014)이라는 책을 쓴 김소연 님은 충청남도 서천에서 보금자리를 가꾼다고 합니다. 《수작사계》 끝자락을 보면, 김소연 님이 시골에서 사는 뜻을 “서해 우리의 집.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우리가 일구고 싶은 것은 부나 성공 같은 것이 아니다. 고향이다(327쪽).” 하고 밝힙니다.


  옳고 맞는 말씀입니다. 시골에 뿌리를 내리면서 사는 사람은 누구나 ‘내 집을 고향으로 삼’습니다. ‘스스로 고향이 되’려고 시골에서 삽니다.


  사내 쪽 집안이 시골이라서 시골에서 살지 않고, 가시내 쪽 집안이 시골이라서 시골에서 살지 않습니다. 굳이 사내 쪽 집안과 가까운 시골에 살아야 하지 않고, 애써 가시내 쪽 집안과 가까운 시골에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한집을 이루는 한솥밥지기가 즐겁게 살림을 꾸려서 보금자리를 이룰 만한 시골에서 살면 됩니다. 즐겁게 노래하고, 기쁘게 춤추면서, 아름답게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곳이 ‘집’이며 ‘보금자리’이자 ‘고향’입니다.



.. 자그마한 맨발, 동그란 배가 톡 튀어나온 내복 바람.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주저없이 토마토 밭으로 향한 아이는 커다란 찰토마토 하나를 뚝 따 쪽쪽 빨고 우적우적 씹는다 … 읍의 살림은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읍은 내가 생각했던 시골과 달랐다. 무엇보다 새소리, 그 소리가 없었다 …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쓸 만한 가구가 아니었다. 가슴을 울리는 가구였다 ..  (144, 174, 202쪽)



  우리 집에서 돋는 풀은 바로 나한테 피와 살이 되는 밥입니다. 우리 집에서 자라는 나무는 바로 나한테 숨결과 목숨이 되는 밥입니다.


  예부터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가 아기한테 맞추어 나무를 심고 별자리를 살핍니다. 아기는 나무와 함께 자라고, 아기를 낳은 어버이한테 맞추어 심은 나무는 벌써 우람하게 자랐을 테니, 아기는 ‘어머니 나무’나 ‘아버지 나무’를 타고 놀다가, 제법 나이를 먹으면 ‘내 나무’를 어루만지면서 놀아요.


  아이는 자라고 자라 어른이 되는데, 어른이 된 아이는 ‘먼먼 할아버지 나무’를 베어서 집을 짓습니다. ‘삼백 살 먹은 할아버지 나무’나 ‘오백 살 먹은 할머니 나무’가 바로 ‘새롭게 어른이 된 아이’가 베어서 집을 짓는 기둥으로 삼는 나무입니다.


  고향이라는 곳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 보금자리라는 데는 바로 이런 데입니다. 내 숨결을 느끼고, 내 어버이 사랑을 헤아리며, 내 삶을 가꿀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집이에요.



.. 아무것도 없는 맹물(감물)만 핥아 먹고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햇빛은 조금씩 더 진한 색으로 천을 물들였다. 가만히 손을 대 보면 햇빛에 구워진 천이 따뜻했다 … 완성된 옷에 목수가 원한 것이 하나 있었다. “잘 보이는 곳에 꽃수를 놔 줘.” … 밭에서 솜이 난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자연이라는 사실이 나는 여전히 놀랍다 … 가구는 숲에서 시작되므로 그 안에 반드시 숲의 흔적을 담고 있다 ..  (239, 250, 305, 318쪽)



  《수작사계》를 쓴 김소연 님은 “자급자족의 즐거움”을 조그마한 책에서 네 갈래로 나누어 들려줍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맞추어 누리는 삶을 조곤조곤 보여줍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시골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요. 시골살이는 봄살이 여름살이 가을살이 겨울살이, 이렇게 네 갈래로 나눕니다. 시골사람이라면 봄맞이 여름맞이 가을맞이 겨울맞이, 이렇게 네 철을 듬뿍 누립니다.


  철을 익히고자 시골에서 삽니다. 철이 들면서 시골에서 자랍니다. 철을 알면서 시골사람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삶을 손으로 스스로 돌봅니다. 먹으면서 사랑하고, 입으면서 꿈꾸며, 집에서 잠이 들면서 즐거운 노래가 흐릅니다. 꿈나라를 누리는 우리 집 둘레에서 봄에도 가을에도 멧새와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바람이 휙 불어 나뭇가지를 흔들면, 나뭇잎이 파르르 떨면서 재미난 노래잔치가 됩니다.


  전기가 있어야 살지 않습니다. 인터넷이 되어야 살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몰아야 살지 않습니다. 은행이나 극장이나 학교가 있어야 살지 않아요. 관공서나 쇼핑센터가 있어야 살지 않지요.


  숲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들이 있고 냇물이 흘러야 살 수 있어요. 골짜기가 깊고 앞뒤로 멧자락이 이어져야 삶을 꾸립니다. 냇물은 바다로 닿고, 바다는 드넓게 펼쳐집니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나고 자라야 슬기롭습니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살림을 스스로 지어서 누려야 슬기롭습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은 호미와 낫을 쓸 뿐,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이루는 사람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면서 두레와 품앗이를 나누니, 인문책을 안 읽어도 평화와 민주와 자유와 평등을 삶으로 즐깁니다. 진보정치가 있어야 평화나 민주나 자유나 평등이 퍼지지 않아요. 숲을 품고 들을 안으며 멧골과 바다를 어루만질 때에 아름다운 마을이 태어납니다.


  물질문명만 가득하면서 매캐한 도시에 숲이 퍼질 수 있기를 빕니다. 고속도로를 걷어치우고 숲을 되살릴 수 있기를 빕니다. 학교마다 강당이나 체육관은 없애도 되니, 숲을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회의사당도 법원도 병원도 모두 숲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작사계》에도 나오지만, 아이들은 들과 숲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가장 맛있고 즐거우면서 재미나게 먹습니다. 숲을 먹는 아이들은 숲을 지키면서 숲마음이 되어요. 4347.10.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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