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취재를 손사래칠 수 있기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참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튼다. ‘숨은가수찾기’가 흐르기에 한번 보기로 한다. 구경꾼 자리에 앉은 이 가운데 연예인 같지 않아 보이는 아저씨가 한 사람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이는 누구인가? 나중에 보니, 연예인 사이에 낀 아저씨는 ‘진중권’이라 한다. 아, 진중권이라고 하는 사람은 ㅈㅈㄷ 방송국 가운데 하나에 아무렇지 않게 나올 수 있는 그릇이로구나. 그나저나, 이녁은 이런 풀그림에 나올 만큼 할 일이 없나. 이러한 풀그림에 나오기를 바라거나 꿈꾸었기에 나오는 셈일까.


  모든 텔레비전 풀그림이 엉터리라거나 바보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텔레비전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 나는 텔레비전을 곁에 둘 마음이 없다. 나는 신문조차 안 읽는다. 2011년에 고흥으로 삶터를 옮긴 뒤 처음 서너 달은 면사무소에 보름에 한 차례쯤 가서 전라도 쪽 시골신문을 들추기도 했지만, 이제 면사무소에 가는 일도 없고, 전라도 시골신문조차 살피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만 다룬다. 그런데, 이런 소비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조차 ‘다 다른 모든 사람’을 ‘다 같은 울타리’에 가두려는 얼거리이다. 마치 학교에서 모든 아이한테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규율로 가두며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외워서 똑같은 시험점수를 받도록 닦달하는 모양새라고 할까. 다 다른 생각을 막고, 다 다른 삶을 거스르려는 방송 풀그림이라고 느낀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방송취재를 손사래칠 수 있어야 하는구나 싶다. 방송취재를 꼭 해야 한다면, 제대로 된 피디와 방송작가를 만나서 제대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지 싶다. 사람들을 생각없는 모습으로 내몰려고 하는 얼거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우리 이웃과 동무가 삶을 참다이 들여다보도록 손을 내밀 수 있어야지 싶다.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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