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창비시선 32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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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0



시와 콩밥

― 밥값

 정호승 글

 창비 펴냄, 2010.11.5.



  콩을 심어서 콩을 얻기도 하고, 콩을 심지 않으면서 콩을 얻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오늘날 심어서 거두는 콩은 들콩이나 돌콩을 갈무리해서 알이 더 굵도록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알갱이가 맺는 들콩이나 돌콩을 훑어도 꽤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들콩이나 돌콩은 퍽 작습니다. 그렇지만 자그마한 콩알에는 모든 것이 다 들었습니다. 안 들은 것이 없습니다. 크기만 작을 뿐입니다. 크기를 키운 오늘날 콩에도 이것저것 들었을 테지요. 그런데 오늘날 콩은 비료와 농약을 먹어요. 새와 멧돼지가 파먹으려 한다면서 시골에서는 고단하다고도 말합니다.


  새와 멧돼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깊은 두멧자락까지 고속도로와 기찻길을 낸다면서 구멍을 뻥뻥 뚫을 뿐 아니라, 골프장을 짓느니 발전소와 송전탑을 때려박느니 하면서 마구 들쑤셔요. 새와 멧돼지가 누릴 밥이 거의 사라집니다.



.. 진달래 핀 / 어느 봄날에 / 돌멩이 하나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  (부활)



  새와 멧돼지 때문에 못살겠다 싶으면 새와 멧돼지를 모조리 잡아서 죽여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새와 멧돼지 따위는, 노루와 고라니 따위는, 멧토끼와 들쥐 따위는 몽땅 잡아서 죽여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새가 사라진 지구별’이 어떤 모습이 될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은 새가 사라진 지구별’이 어떻게 될는지 하나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가을날 참새가 벼알을 쪼아먹는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가을에 참새는 벼알을 좀 쪼아야 합니다. 겨울에도 참새는 사람이 밥을 좀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자그마한 참새가 봄부터 가을까지 애벌레와 나비와 나방을 엄청나게 잡아먹었거든요. 사람이 농약과 살충제로는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수많은 애벌레와 날벌레를 참새와 박새와 콩새 같은 자그마한 새들이 아주 많이 잡아먹었어요.



.. 거울을 보다가 가끔 / 내 얼굴이 악마의 얼굴이 아닌가 / 한참 들여다볼 때가 있다 ..  (거울)



  노루와 고라니와 멧토끼와 들쥐는 무엇을 할까요? 이들은 풀을 뜯습니다. 나뭇잎을 갉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저곳 길을 내거나 건물을 세우거나 집을 짓거나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세운다면서 숲과 들을 갈아엎거나 짓밟습니다. 이리하여 ‘풀을 먹는 숲짐승’은 풀을 얻기 자꾸 힘들고 맙니다. 사람들은 농약을 뿌린다든지 ‘풀 베는 기계를 기름으로 돌리’면서 고달픈 짓을 하는데, 숲짐승은 이 풀을 감쪽같이 먹어치워요.


  지난날에는 집집마다 소나 돼지나 닭을 키우면서 풀을 먹였습니다. 고작 쉰 해 사이에 사람들은 소나 돼지나 닭을 공장에서 키워서 가게에서 사다 먹는 얼거리가 되었습니다만, 예부터 어느 시골에서나 둘레에 흔하게 돋는 풀을 함부로 안 베었어요. 사람이 나물이나 약으로 쓸 때에 베고, 짐승한테 먹이로 주려고 할 때에만 베었습니다.


  숲짐승은 ‘먹을 풀’이 사라지니 논으로 밭으로 달려서 이런 푸성귀와 저런 남새를 파먹거나 갉아먹을밖에 없습니다.



.. 자살하지 마라 / 별들은 울지 않는다 ..  (별들은 울지 않는다)



  정호승 님이 쓴 《밥값》(창비,2010)이라는 시집을 읽습니다. 밥값, 그래요, 밥값입니다. 정호승 님이 바라보는 밥값이란 무엇일까요. 정호승 님은 어떤 밥값을 하면서 삶을 가꿀까요. 이 나라와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땀방울로 밥값을 하는가요. 어린이와 어른한테 사랑과 꿈을 심는 일을 하면서 밥값을 하는가요.



..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처럼 산다 /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  (폐사지처럼 산다)



  옛 절터에서 쓰러진 탑을 세우는 일을 한다는 정호승 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아직 ‘참된 길로 가는 탑’을 세운 적이 없다지만, 옛 절터에서 쓰러진 탑을 세운다고 하는군요.


  정호승 님으로서는 그 길이 이녁한테 가장 알맞겠다 싶어서 그 길을 가는구나 싶습니다. 그러한 일이 바로 이녁한테 밥값이 되리라 여기면서 그 길을 가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쓰러진 탑이라면 그대로 두기를 바라요. 쓰러진 탑이란 돌덩이예요. 돌덩이는 처음부터 숲에 있던 돌이에요. 옛 절터는 숲으로 돌아가도록 놓아 주셔요. 쓰러진 탑은 숲에 있던 수많은 돌로 돌아가도록 놓아 주셔요.


  숲에서 씨앗을 주우셔요. 들콩을 줍고 돌콩을 주우셔요. 사람이 안 심었어도 언제나 사람과 모든 숲짐승한테 밥이 되는 들콩과 돌콩을 주우셔요. 사람이 심지 않아도 씩씩하게 돋으면서 열매를 베풀 뿐 아니라, 농약과 비료 때문에 죽어 버린 흙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들콩과 돌콩을 주우셔요.



.. 희디흰 눈길 위로 / 누가 걸어간 / 발자국이 보인다 ..  (눈길)



  우리 함께 ‘들콩밥’ 한 그릇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서로 ‘돌콩밥’을 한솥 가득 지어 이웃과 동무를 불러 밥잔치를 할 수 있기를바랍니다.


  시는 억지로 쓰려고 해서 쓸 수 없습니다. 시는 문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는 우리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노래하면 저절로 흐릅니다. 시는 문학이 아닌 삶이기 때문입니다.


  시를 써서 문학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를 읽어 문화를 누릴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밝히려고 시를 씁니다. 삶을 사랑하려고 시를 읽습니다.


  멧토끼 발자국을 따라 우리도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길에 자동차 바퀴 자국을 남기지 말고, 우리 두 발로 걷는 자국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쓰러진 탑’도 ‘참된 길을 여는 탑’도 안 세워도 됩니다. 삶을 누리면 되고, 삶을 지으면 되며, 삶을 가꾸면 됩니다. 이 눈길을 함께 걸어갈 아이들을 그리면서,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조그마한 보금자리와 마을을 닦도록 손길 살그마니 보태면 됩니다. 그게 밥값이지요. 4347.10.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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