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히로시마,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은 일본에서 1995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4년에 처음 옮겼다. 나는 이 그림책을 2004년에 처음 구경하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왜 되풀이해서는 안 될 끔찍한 일’인가를 제대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책 《히로시마》는 ‘핵무기’를 오직 ‘과학’으로만 바라본다. 그래서, 이러한 무기를 누가 만들었고 이러한 무기에 누가 죽었는지를 제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이 책은 한국말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로 뽑혀서 이러한 딱지를 아예 책겉에 인쇄를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그림책 ‘과학책’이다. 다만, 과학책이기는 한데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삶도 잊은 과학책이다. 핵무기를 그렸으나 사람을 그리지 않고, 핵무기 때문에 죽은 히로시마 사람들을 그렸으나 죽음과 생채기와 아픔이 어떠한가를 그리지 않았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히로시마는 오로지 ‘숫자’와 ‘통계’와 ‘해적이(연보)’이다. 무엇보다, 일본이 왜 전쟁을 일으켰고, 일본은 왜 핵무기를 맞았는지, 또 일본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같은 이야기를 한 마디로도 안 밝힌다. 히로시마는 참말 평화로운 작은 항구도시였을까? 아니다. 히로시마에 징용을 온 조선사람이 얼마나 많았는가. 나가사키도 이와 같다. 그러나 이 그림책에는 이런 이야기조차 한 줄로도 안 나온다. 그저 평화로운 마을에 갑자기 핵무기가 떨어졌다고만 나온다. 그러고는 죽음 같은 잿더미와 불길에 휩싸였다고 한다. ‘일본 군인’이 아닌 ‘일본 민간인’이 ‘식민지 백성’을 얼마나 짓밟고 괴롭혔는가 하는 이야기는 터럭만큼도 안 나온다. 그렇다고, 모든 일본사람이 전쟁부역자는 아니며, 모든 일본사람이 전쟁미치광이는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많은 일본사람은 전쟁부역을 했으며, 전쟁찬성 편에 섰으며, 조선사람 같은 식민지 백성을 짓밟거나 괴롭히는 짓을 일삼았다. 이러한 짓은 아직도 안 그친다. 일본 정부뿐 아니라 일본 여느 사람들 가운데 아주 많은 이들이 군국주의에 표를 준다(이에 못지않게 전쟁반대에 표를 주는 사람도 많지만 둘은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과학지식으로 핵무기를 다룬다는 그림책은 무엇을 말해야 할까? 이처럼 끔찍한 짓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데, 이 그림책에서 얄궂은 또 한 가지는 ‘되풀이해선 안 될’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누가’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인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본이 제국주의나 군국주의로 나아가지 않았어도 핵무기를 맞았을까? 일본사람 스스로 군국주의 정부를 반대하거나 뒤엎었다면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았을까?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데에서 그치지 않고 성노예를 부리거나 중국과 조선과 대만과 아시아에서 끔찍한 학살을 일삼았고, 미국으로도 전쟁을 뻗으면서 비로소 핵무기를 두 방 맞았다. 가해자이기에 피해자가 되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불러들인 아픔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불러들인 아픔을 제대로 뉘우치고 똑바로 바라보면서 올바로 깨닫지 않는다면, 끔찍한 일은 되풀이될밖에 없다. 일본은 오늘날 무엇을 하는가? 일본은 미국과 러시아 못지않게 전쟁무기 만드는 일에 돈을 퍼붓는다. 게다가 일본은 다른 나라에 군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니, 이런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도 어느 모로 본다면 ‘전쟁부역’과 ‘군국주의 미화’에 이바지하는 꼴이 된다. 마음도 생각도 사랑도 없이 오직 지식으로 과학을 다루려는 ‘핵무기’ 이야기인 《히로시마》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누구한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 그림책이 한국말로 나온 지 열 해가 되었어도 아직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4347.10.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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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 그림으로 보는 히로시마 이야기
나스 마사모토 지음, 니시무라 시게오 그림, 이용성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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