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346) 장長- 1


장시간에 걸친 시민대책위 마라톤 회의 결과 조정안의 수용은 기각되었습니다

《지율-초록의 공명》(삼인,2005) 54쪽


 장시간에 걸친 회의 결과

→ 길게 나눈 모임 끝에

→ 오랫동안 주고받은 이야기 끝에

→ 오랫동안 얘기한 끝에

→ 길디긴(기나긴) 이야기 끝에

 …



  “장시간에 걸친”을 앞에 쓰면서 “마라톤 회의”라는 말을 뒤에 붙이는군요. 힘주어 말하는 셈이라 할 수 있지만, 둘 가운데 하나는 덜어내면 좋겠습니다. 겹말이니까요.


  ‘긴’이나 ‘오랜’을 뜻한다는 앞가지 ‘長-’이라고 합니다. 한자말은 이 ‘長-’을 붙이면 넉넉히 새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말은 ‘긴-’이나 ‘오랜-’ 들을 붙여서 새말을 지을 수 있어요.


 장거리 → 긴거리 . 먼거리

 장기간 → 오랫동안 . 오래

 장모음 → 긴홀소리

 장시일 → 오랫동안 . 오래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면, 한국말 앞가지는 거의 안 싣습니다. 아예 안 받아들인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 지율 스님 목소리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듯이, 한국사람 말씀씀이를 한국에 있는 국어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멀리 있으니 ‘먼거리’잖아요? 그렇지만 한국말사전에는 ‘먼거리’라는 낱말이 없습니다. ‘먼’이라는 낱말조차 아예 사전에 안 실립니다. ‘먼산’과 ‘먼산바라기’와 ‘먼하늘’과 ‘먼나라’와 ‘먼곳’ 들로 얼마든지 살려쓸 수 있지만, 한국말사전 틀거리에서 꽉 막힙니다. ‘먼거리’와 맞서는 ‘짧은거리’도 이와 같아요. ‘장모음’과 ‘단모음’은 한국말사전에 오르지만, ‘긴홀소리’와 ‘짧은홀소리’는 푸대접을 받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말사전에서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러하고 언론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집에서, 또 마을에서, 또 동무들 사이에서는 어떠한가요. 4338.12.21.물/4347.10.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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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시민대책모임에서 얘기를 한 끝에 조정안은 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회의의 결과”라 하지 않고 “회의 결과”로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만, “회의(會議) 결과(結果)”는 “이야기한 끝에”로 손볼 수 있습니다. “조정안(調停案)의 수용(受容)은 기각(棄却)되었습니다”는 “조정안은 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나 “조정안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나 “조정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로 손봅니다.



장(長)- : ‘긴’ 또는 ‘오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 장거리 / 장기간 / 장모음 / 장시간 / 장시일 / 장파장

장시간(長時間) : 오랜 시간

   - 장시간에 걸쳐 토의하다 / 넷은 승방(僧房)에 앉아 장시간 얘기를 나누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84) 장長- 2


물론 철학자니 사회학자니 하는 사람들 특유의 알맹이 없는 장광설에 질린 다음에는 두 번 다시 그런 식의 이른바

《북새통》 67호(2008.4.) 28쪽


 알맹이 없는 장광설

→ 알맹이 없는 긴 이야기

→ 알맹이 없이 늘어지는 이야기

→ 알맹이 없이 너절한 이야기

→ 알맹이 없이 따분한 이야기

 …



  한자말 ‘장광설’ 짜임새를 살피니, “길고(長) + 넓은(廣) + 혀/말(舌)”입니다. 길고 넓은 혀나 말, 이 말뜻을 그대로 새긴다면, 길거나 넓은 이야기입니다. 길거나 넓은 이야기라고 해서 따분하라는 법이 없고 지겨우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장광설’은 썩 반갑지 않게 늘어지는 말을 가리키는 자리에 쓰곤 합니다.


 재미없다 . 지겹다 . 따분하다 . 짜증나다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야기라면 “재미없는 이야기야” 하고 말할 때가 가장 잘 어울리리라 생각합니다. 지겹다고 느끼는 이야기라면 “지겨운 이야기네” 하고 말할 때가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재미도 없는데 자꾸 길게 이어지기만 한다면 “너절한 이야기”라 하거나 “따분한 이야기”라 하면 되고요. 4341.4.11.쇠/4347.10.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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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철학자니 사회학자니 하는 사람들답게 알맹이 없는 너절한 말에 질린 다음에는 두 번 다시 그러한, 이른바


‘물론(勿論)’은 ‘다만’이나 ‘말할 것도 없이’나 ‘그렇지만’이나 ‘뭐’로 다듬습니다. “사람들 특유(特有)의 알맹이 없는”은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알맹이 없는”이나 “사람들이 늘 보여주는 알맹이 없는”으로 손질하고, “그런 식(式)의”는 “그런”이나 “그러한”이나 “그 따위”로 손질합니다.



장광설(長廣舌)

1. 길고도 세차게 잘하는 말솜씨

2.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

   - 장광설을 늘어놓다 / 끝도 맺음도 없는 지겨운 장광설을 들어 주어야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9) 장長- 3


대합실 장의자에 걸터앉아 심야버스를 기다린다

《류인서-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비,2005) 24쪽


 대합실 장의자에 걸터앉아

→ 맞이방 긴걸상에 걽앉아

→ 맞이방에 있는 길쭉한 걸상에 걸터앉아

 …



  한국말사전을 보니 ‘장의자’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긴의자’나 ‘긴걸상’이라는 낱말은 안 나옵니다. 게다가 ‘긴걸상’은 북녘말이라고 나오기까지 합니다.


  한국말은 ‘걸상’입니다. ‘의자’는 한자말입니다. 한국말 ‘걸상’을 놓고 길거나 짧은 크기나 길이를 살펴 ‘긴걸상’이라 적을 만합니다. 영어로는 ‘벤치(bench)’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 한국말사전을 더 살피니 ‘벤치’라는 영어까지 싣습니다. 사람들이 이 영어를 자주 쓰니까 한국말사전에 실었을까요? 올바르지 않게 쓰는 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흔히 쓰면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할까요?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한국사람이 슬기롭게 살펴서 배우도록 돕는 책입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걸상’을 말하고 ‘긴걸상’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7.10.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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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이방 긴걸상에 걸터앉아 밤버스를 기다린다


‘대합실(待合室)’은 ‘맞이방’으로 고쳐서 쓰기로 한 낱말입니다. ‘대합실’은 한국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우리가 함께 고치기로 한 낱말은 꼭 고쳐서 쓰기를 바랍니다. ‘심야(深夜)버스’는 ‘밤버스’로 손봅니다.



장의자(長椅子) :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게 가로로 길게 만든 의자

   - 초라한 응접탁자 앞에 장의자가 있고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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