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상업화’?



  ‘홀로코스트 상업화’를 말하는 사람이 있어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살피니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얕은 생각으로 ‘홀로코스트 상업화’를 들먹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평화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홀로코스트 상업화’를 말할밖에 없다.


  ‘홀로코스트’란 무엇인가? 몇 사람이 죽었는가? ‘유대인이 겪은 아픔’만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문학이나 영화일까? 아니다. 전쟁 때문에 겪은 끔찍한 아픔을 들려주려는 문학이고 영화이다. 제국주의와 파시즘과 전쟁선동과 국가주의 따위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이웃을 짓밟거나 죽였다. 이 때문에 수백만에 이르는 목숨이 사라졌고, 수천만에 이르는 ‘생채기 입은 이웃’이 생겼다.


  죽은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 이야기가 모두 문학이나 영화로 나오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앞으로도 ‘홀로코스트’와 얽힌 문학이나 영화는 더 나온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겪은 숱한 아픔과 생채기를 놓고 꾸준하게 문학이나 영화가 나온다. 미국과 한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끔찍한 짓을 놓고 문학이나 영화가 틈틈이 나온다. 오늘날 중국이 티벳에서 저지르는 끔찍한 짓을 놓고 책과 다큐사진이 꾸준히 나온다. 새마을운동과 유신독재를 앞세워 한국 사회를 끔찍하게 짓밟은 박정희를 나무라는 문학과 영화가 꾸준히 나온다. 이명박이 저지른 잘잘못과 세월호 사고를 놓고 여러 가지 문학과 책이 꾸준히 나온다. 이러한 문학이나 영화는 어느 한 가지도 ‘상업주의’가 아니다. 아프기 때문에 ‘말을 털어놓’는다. 슬프기 때문에 ‘눈물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죽은 사람을 앞에 놓고서 ‘상업화’를 들먹이는 지식인은 어떤 마음일까. 이녁한테는 ‘죽은 이웃’이 없을까. 먼 나라에서 아프거나 슬픈 이웃은 아랑곳할 까닭이 없는 셈일까.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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