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카메라 - 카메라 우체부 김정화의 해피 프로젝트, 2014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
김정화 지음 / 샨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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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94



사진기 아닌 마음이 여행한다

― 여행하는 카메라

 김정화 글

 샨티 펴냄, 2014.9.25.



  사진기가 세 나라를 돕니다. 김정화 님은 디지털사진기를 여러 대 마련해서 맨 먼저 베트남에 찾아갑니다. 베트남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사진기를 건네어 스스로 제 삶을 사진으로 담도록 이끌고는, 이 사진기를 가지고 미얀마(또는 버마)로 넘어갑니다. 미얀마에서 비슷한 또래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사진기를 건네어 그 나라에서 그곳 아이들이 마주하는 이웃과 삶을 사진으로 담도록 이끕니다. 이런 뒤, 몽골로 넘어가서 몽골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누리는 삶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도록 이끕니다.


  세 나라를 돈 사진기에 깃든 이야기가 흐르는 《여행하는 카메라》(샨티,2014)를 읽습니다. 김정화 님은 ‘사진기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과 느낀 생각을 차근차근 적습니다. “카메라를 손에 쥐자 베트남 아이들이 제일 먼저, 제일 많이 찍은 사진은 다양한 각도의 ‘자아도취적’ 셀카였다(23쪽).” 하고 이야기하는데, 아이들은 ‘내 모습’이 여러모로 궁금했구나 싶습니다. 또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주고 싶은가 봅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만으로도 이야기를 건넵니다. 이런 각도에서 찍고 저런 각도에서 찍든 그렇지요. 나라와 겨레마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입니다. 생김새뿐 아니라 옷차림이 다릅니다. 옷차림뿐 아니라 머리카락 모양이 다릅니다. 이런 사진이 ‘자아도취적’ 사진이든 아니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웃나라 동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보다 ‘내 모습’이라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왜 그렇잖습니까. 편지로 사귀는 벗은 으레 ‘네 사진을 보내 주렴’ 하고 바랍니다. 얼굴 사진조차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바랍니다. 같은 사람 사진이지만 새롭게 찍어서 보내면 새삼스레 반갑습니다. 베트남 아이들이 ‘내 모습’을 수없이 찍었다면, 참으로 아이다운 마음이지 싶어요.


  그러니까,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을 생각하면 됩니다. 김정화 님은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냐 하는 질문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찍는 사람의 느낌이 전달되는 사진, 이야기가 상상되는 그런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34쪽).” 하고 말하는데, 베트남 아이들이 ‘내 모습’을 잔뜩 찍었어도, 이러한 사진에는 이러한 사진대로 이야기가 깃들기에, 이러한 사진을 받는 이웃 미얀마(또는 버마) 아이들은 이웃나라 동무들 살림살이와 하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여행하는 카메라》에 나오는 아이들 사진은 “자세히 보니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에서는 피사체의 표정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웠다(40쪽).”고 합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아이들은 어디에서 누구를 사진으로 찍었을까요? 아이들은 늘 함께 지내는 한집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고, 이웃집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가까이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더없이 자연스럽고 사랑스레 찍을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빼어난 사진가들이 베트남이나 미얀마(또는 버마)나 몽골로 찾아가서 다큐사진을 찍더라도 아이들 사진처럼 찍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빼어난 사진가는 ‘이웃이나 동무나 한집 사람’을 찍는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내 집 사람들이나 내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아주 자연스러우면서 사랑스럽겠지요. 누구나 스스로 가장 가깝고 살가운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면 아주 훌륭하도록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사진찍기는 ‘마음찍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올 찍는 일이 사진찍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는 ‘이야기찍기’요 ‘노래찍기’가 되기도 할 테지요. 내가 이웃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찍고, 내가 오늘 하루 새롭게 부르는 노래를 찍습니다.


  김정화 님은 세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지만, 아직 세 나라 삶을 읽지 못합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나눔은 일상이었다. 그래서 카메라도 나눠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내가 그런 말을 하니 혼란이 왔던 것이다(68쪽).”와 같은 일을 겪습니다. 그러나, 세 나라 삶을 아직 덜 읽었기에 잘못은 아닙니다. 아직 덜 읽었으니 세 나라 아이들은 저희 삶을 찬찬히 알려주거나 보여줍니다. 세 나라 삶을 읽는 몫은 오로지 김정화 님한테 있습니다. 미리 헤아리든, 그 나라에 가서 찬찬히 오래 머물면서 온몸으로 받아들이든, 스스로 익히고 살필 노릇입니다.


  세 나라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껴안는다면 한결 깊고 넓게 바라봅니다. 한국에서도 그래요. 밀양 송전탑 사람들을 이웃으로 마주하면서 밀양에서 석 달을 살거나 세 해를 살아 보셔요. 사흘만 머물거나 세 시간만 지내다가 떠나 보셔요. 석 달과 세 해와 사흘과 세 시간은 사뭇 다르겠지요. 얼마나 머물면서 함께 하거나 지켜보느냐에 따라 내가 보고 느끼면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만큼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달라질 테고, 그만큼 내가 읽어서 깨달을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요.


  김정화 님이 엮은 책은 《여행하는 카메라》입니다. 사진기 하나를 여러 나라로 실어 나르면서 여러 나라 아이들이 새롭게 만나도록 다리를 놓는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곰곰이 읽어 보면, 여러 나라 삶과 사람과 이야기를 아직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이웃을 새롭게 읽거나 제대로 마주하는 ‘이웃 만남’이 되리라 느낍니다. 이를테면 “믿기지가 않아서 정말 몽골 아이들은 네 나이에 빨래도 직접 하느냐고 물었더니 함에르덴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도리어 의아해 한다(128쪽).” 하고 읊는 대목이 있는데, 오늘날 몽골 아이들이나 베트남 아이들뿐 아니라, 얼마 앞서까지 한국 아이들도 열 살 언저리에 집일을 나누어 맡았습니다. 열 살 어린이도 풀을 뜯어서 소를 먹였고, 열 살 어린이도 빨래와 걸레질을 할 줄 알았습니다. 일본에서도 《오싱》이라는 작품이 아니어도 고작 일곱 살 어린이가 밥짓기를 할 줄 알았으며, 집일을 꽤 맡았으며, 동생도 돌보았습니다.


  열 살 어린이는 학교에 가서 학교 공부만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왜 학교 공부만 해야 하겠습니까. 아이들은 삶을 누려야 합니다. 학교에서 배울 것은 배우되, 집과 마을에서는 집살림과 마을살림을 함께 해야지요. 이것이 삶이니까요.


  김정화 님은 ‘여행하는 카메라’라는 일을 꾀하면서 《여행하는 카메라》라는 책도 내놓습니다만, 처음 품은 뜻은 “2차 때에 내가 하려는 사적인 실험 중의 하나가 사진 치료이다. 이런 질문들은 투사적 사진 치료의 기법이다(236쪽).” 하고 밝힙니다. 무엇을 치료하려고 ‘사진 치료’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달래거나 다독일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도 글로도 말로도 노래로도 춤으로도 밥 한 그릇으로도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달래거나 다독일 수 있어요.


  ‘투사적 사진 치료’처럼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그저 사진기 하나로 ‘사진놀이’를 할 뿐입니다. 애써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고 스스로 일하면서 삶을 가꿉니다. 삶을 가꾸면 ‘치료’는 저절로 어느새 이룹니다. 따로 ‘치료’를 생각할 일이란 없다고 느껴요. 그저 ‘놀이’로 누리고, ‘삶’으로 맞이하면 됩니다.


  베트남과 미얀마(또는 버마)와 몽골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김정화’라고 하는 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로 여겨서 받아들입니다. ‘김정화’라고 하는 사람이 저희를 돕는다든지 무엇인가 선물로 주려고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홀가분하게 놀러오기를 바랍니다. 그저 이웃과 동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웃과 동무가 되자면,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나 자동차가 있어야 이웃이나 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열어 사귀면 이웃이나 동무가 됩니다.


  아이들은 사진놀이를 만나면서 재미있게 놀고, 재미있게 놀면서 천천히 삶을 새롭게 눈뜹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진놀이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행하는 사진기’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여행하는 고무줄’이 되어도 됩니다. 나라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모양새가 살짝 다르지만 꽤 비슷합니다. 한국에서 날아온 고무줄을 베트남 아이들이 놀고, 미얀마(또는 버마) 아이들이 놀다가, 몽골 아이들이 놀 수 있게 이어도 재미있습니다. 여러 나라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나서 느낀 이야기를 글로 쓰도록 이끌 수 있어요.


  ‘여행하는 고무줄’나 ‘여행하는 소꿉’을 꾀한다면, 굳이 사람이 징검돌이 되어 나르지 않아도 됩니다. 편지봉투에 고무줄이나 소꿉을 넣어서 보내도 돼요. 돌고 돌고 또 돌면서 함께 나누는 삶을 생각하고, 지구별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사랑을 돌아봅니다.


  사진기 아닌 마음이 여행을 합니다. 사진기를 빌어 마음을 한결 넓게 열 수 있기도 하지만, 사진기 아닌 나무젓가락으로도, 고무줄로도, 돌멩이 하나로도, 소꿉으로도, 나무조각으로도, 그림 한 점이나 연필 한 자루로도 마음을 여는 나들이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행하는 사진기’에 한결같이 따순 사랑이 감돌기를 바랍니다. 4347.10.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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