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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배 매기호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32
아이린 하스 글 그림, 이수명 옮김 / 비룡소 / 2004년 8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4
꿈꾸는 아이가 사랑스럽네
― 꿈의 배 매기호
아이린 하스 글·그림
이수명 옮김
비룡소 펴냄, 2004.8.20.
아이들이 새벽같이 잠에서 깹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일찌감치 하루를 엽니다. 왜냐하면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놀고 싶은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잡니다. 이와 달리 놀 겨를이 없거나 놀 길이 막힌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학교라는 곳이 있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닙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곳을 살피면, 참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늦습니다. 학교에 늦지 않더라도 빠듯하게 가곤 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거나 맞이하는 일이 재미없거나 괴롭거나 따분하거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놀듯이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들이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기쁘게 뛰놀면서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들이 맑은 눈망울로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시험성적이나 시험공부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아니 참다운 삶을 보여주고 나누면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뿐 아니라 모든 어른이 서로 사랑스레 어우러질 만하리라 느껴요.
.. 어느 날 밤, 마거릿 반스타블은 별에게 빌었어요. 북극성님, 바다의 별님, 내 이름을 딴 배를 갖고 싶어요 .. (3쪽)
아이들은 이튿날 새롭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오늘 하루 새롭게 놀 생각으로 번쩍 눈을 뜹니다. 놀 생각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늘 틀에 박힌 채 고달픈 일을 되풀이하면서 어깨가 무거워야 한다면, 아마 어떤 아이도 잠들기 싫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리라 생각해요. 어른들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아침이 새롭지 않고 늘 똑같은 일을 고달프게 되풀이해야 한다면, 돈을 버는 일이 지겹다면, 돈을 애써 벌어도 집삯과 빚과 이곳저곳에 들어가야 한다면, 일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일하는 보람이 없으면 아침마다 몸이 무거워요.
아이들은 꿈을 꾸면서 잠듭니다. 어른들은 어떻게 잠들까요? 어른들도 꿈을 꾸면서 잠들까요? 아니면, 꿈은 하나도 없이 마냥 힘들다 힘들어 힘들어 죽겠네 하는 소리만 읊다가 스르르 곯아떨어질까요?
.. 눈부신 아침이 오면, 마거릿은 갑판을 북북 문질러 닦고 항해할 준비를 하면서 오래된 뱃노래를 불렀어요 .. (9쪽)
아이린 하스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비룡소,2004)를 읽습니다. ‘매기호’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이 ‘마거릿’이 모는 배 이름입니다. 마거릿은 잠자리에 들기 앞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애타게 빌었어요. 마거릿은 잠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뭇별한테 기쁘게 바랐어요. 그러고는 꿈을 꾸지요. ‘내 배’를 몰아 거친 물결을 헤치면서 바다를 가로지르고 싶다는 꿈을 꾸어요.
자, 마거릿이라는 어린이 앞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앞으로 마거릿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마거릿은 어떤 이야기를 맞이할까요?
.. 매기호는 항해를 계속했어요. 산들바람은 상냥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웠지요. 제임스는 부드러운 벨벳 베개를 베고 낮잠을 잤고, 마거릿은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15쪽)
꿈을 꾸었기에 꿈을 이룹니다. 꿈을 생각하기에 꿈으로 나아갑니다. 아주 마땅해요. 꿈을 꾸지 않으면 꿈을 이루지 않아요. 이루고 싶은 꿈이 없는데 무엇을 이루겠어요? 생각한 꿈이 없는데 어디로 나아갈까요?
아이들은 즐겁게 놀 생각을 품으면서 밤에 잠듭니다. 그래서 새로운 아침에 새롭게 기운을 내면서 놀아요. 어른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른들도 꿈을 꿀 노릇입니다. 스스로 이루고 싶은 일을 꿈꾸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곱게 품어야 합니다.
생각을 지어야 꿈이 나타납니다. 생각을 지을 때에 꿈을 그립니다. 생각을 지어 꿈이 나타나도록 했으면, 이제부터 꿈을 누려야지요. 생각을 지어서 꿈을 그렸으면, 이제부터 꿈길로 나아가야지요.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마거릿은 바이올린으로 오래된 곡조를 연주했어요. 그리고 제임스를 요람에 누이고 부드럽게 흔들었지요. 또 제임스가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 주었고요 .. (27쪽)
그림책에 나오는 마거릿이라는 아이한테 ‘얘, 어서 방 좀 치워!’ 하고 윽박지른다면 아이는 고달픕니다. 그러나, 마거릿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배를 몰 수 있고, 제 이름을 딴 배를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면, 아무도 어떤 일을 안 시켰어도 스스로 청소를 합니다. ‘얘, 네 동생 좀 봐!’ 하고 다그치면 아이는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마거릿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배를 몰아 바다를 가로지르고픈 꿈을 키운다면, 함께 배를 타고 즐겁게 나들이를 하고픈 동무를 찾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누가 심부름으로 동생 보기를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즐겁고 사랑스레 동생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읽는데, 번역은 그리 살갑지 못하구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집 일곱 살 아이한테 그냥 건네려 했지만, 이곳저곳 손질할 대목이 많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그림책은 그야말로 어린이 눈높이대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가 처음으로 만날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문학에서 쓰는 낱말이나 말투를 섣불리 그림책에 넣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만나는 낱말과 말투로 생각을 지어요.
하루 동안 항해를 하고, 멋진 친구도 생기게 해 주세요
→ 하루 동안 바다를 가르고, 멋진 동무도 사귀게 해 주세요
태양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 해님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나무 가지 위에는 큰부리새가 앉아 있었지요
→ 나뭇가지에는 큰부리새가 앉았지요
아이들한테 ‘항해’라는 말을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까요? 어른이라면 이런 한자말을 써도 된다고 할 테지만,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쓰면, 뜻풀이를 다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나 동무는 ‘생기게’ 하지 않습니다. 친구나 동무는 ‘사귑’니다.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하늘에 걸린 따뜻한 별은 ‘해’나 ‘해님’입니다. 새는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나뭇가지 위’에 앉는 새는 없습니다.
그의 집은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있네
→ 그대 집은 넘실거리는 바다에 있네
낮에 사과나무 아래로 소풍 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 낮에 사과나무 그늘로 나들이 가서 도시락을 먹었어요
갯가재도 냄비 속에 넣었어요
→ 갯가재도 냄비에 넣었어요
이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위’나 ‘아래’나 ‘속’을 엉뚱하게 씁니다. 외국 말투를 섣불리 한국말로 옮깁니다. 바다 위쪽이라고 여겨 “바다 위에 있네”라 할 수 있겠으나, 배(집)는 “바다에 있다”고 말합니다. 바다 밑 어딘가를 가리킬 때에는 “바닷속에 있다”처럼 적습니다. 사과나무 아래에 소풍을 간다는 말은 어딘가 안 어울립니다. “나무 아래”란 어디일까요? 땅속일까요? 뿌리 밑일까요? “나무 그늘”이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국을 끓일 때에는 “냄비에 넣”습니다. “냄비 속”에 넣지 않아요. 냄비 속이란 어느 곳일까요?
마거릿은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마거릿은 제임스를 멋지게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제임스는 울기 시작했어요. 폭풍이 오고 있었던 거예요
→ 제임스는 울어요. 비바람이 와요
저녁 식사가 끝나고
→ 저녁이 끝나고 / 저녁을 다 먹고
토씨 ‘-의’를 얄궂게 붙여서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라 적었습니다만, 이런 말투도 그림책에 함부로 쓸 일이 아닙니다. 어른문학에서도 이런 말투는 손질해야 합니다. ‘시작’은 일본 한자말이기도 하지만, 거의 군말입니다. “울기 시작했어요”가 아니라 “울어요”로 적어야 합니다. “오고 있었던”은 영어 번역 말투이고, 뒤에 붙은 “거예요”는 군더더기입니다. ‘저녁’이라는 낱말은 때를 가리키면서 끼니를 가리킵니다. ‘식사’라 하는 한자말은 덜어냅니다.
오래된 곡조를 연주했어요
→ 오래된 노래를 켰어요
담요 안으로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 잠이 들었답니다
→ 담요를 덮고 몸을 구부리면서 잠이 들었답니다
마거릿이라는 아이는 바이올린을 켜서 동생을 재웁니다. 그러니, “바이올린을 켰어요”처럼 적으면 됩니다. 굳이 ‘연주’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담요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고 하는데, 담요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담요 안”이라는 자리도 없습니다. “담요를 덮고” 몸을 구부리면서 잠이 들었겠지요.
그림책 번역에 마음을 깊고 넓게 기울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그림책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외국 그림책이기에 한국 어린이한테도 널리 읽힐 만합니다만, 아름다운 그림책은 아름다운 말과 글과 이야기과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서 숨쉬도록 더욱 마음을 기울여서 가다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을 배우기도 하고, 아이들은 어버이가 건네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읽으면서 말을 익히기도 합니다. 그림책은 줄거리만 훌륭하거나 그림만 예쁘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림책에 넣는 말 한 마디까지 알뜰살뜰 여밀 줄 알아야 합니다.
꿈꾸는 아이가 사랑스럽듯이, 꿈꾸는 어른이 사랑스럽습니다. 꿈을 살가이 담은 그림책이 아름답고, 꿈을 맑으면서 밝은 말과 글로 엮어서 보여주는 그림책이 아름답습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