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커피 3
기선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83



즐겁게 커피 한 잔

― 오늘의 커피 3

 기선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13.12.6.



  즐겁게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밥상 가득 무엇을 차렸더라도 즐겁게 먹지 않을 적에는 맛이 나지 않습니다. 밥상에 간장이랑 국이랑 밥만 있어도, 서로 하하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밥이 맛있어요. 밥맛이란 즐거움이고, 이야기이며, 사랑스러운 기운입니다.


  커피 한 잔이 맛있다면, 커피를 잘 내리니 맛있기도 할 테지만, 즐겁게 타서 즐겁게 마실 수 있기에 맛있다고 느낍니다. 원두를 그 자리에서 바로 갈아서 마셔야 가장 맛있는 커피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에서 뽑든, 설탕과 프림과 커피가루가 섞인 봉지를 뜯어서 뜨거운 물만 부어서 마시든, 마음을 즐겁게 가누면서 이웃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라면 언제나 맛있는 커피가 되지 싶어요.



- “손님들이 좋아하고, 나도 만족하면 된 거잖아요. 그 이상으로 잘할 필요 있나?” “굳이 따지자면, 그럴 필요는 없지. 지금의 너는 커피숍 직원으로서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 이상의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널 비난할 이유 같은 건 없다구.” (89쪽)

- ‘형이 커피 사업에 손을 댄다. 안 어울려. 카페는 그저 음료를 파는 데서 그쳐서는 안 돼. 커피만이 주는 온기, 편안한 느낌. 이것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아.’ (117∼118쪽)




  기선 님이 그린 만화책 《오늘의 커피》(애니북스)는 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누리도록 돕는 커피 한 잔을 이야기하는 만화책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아주 많은 만큼, 이 만화책으로 새롭거나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기선 님다운 맛깔스러움과 아기자기한 그림결은 재미를 한결 북돋웁니다.


  다만, 이야기 흐름이 너무 빠르고, 무엇보다 ‘즐거운 커피 한 잔이란 무엇일까’ 하는 대목을 더 짚지 못했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오늘의 커피》는 1권과 2권이 2009년에 나왔으나 3권은 2013년에 나왔습니다. 게다가 2013년에 나온 3권이 마지막입니다. 오랫동안 끊어진 이야기를 힘내어 마무리짓기는 했지만, 차근차근 흐를 이야기를 서둘러 끝냈구나 싶어요.


  작은 커피집을 꾸리는 젊은 사장을 둘러싸는 이야기를 보면, 젊은 사장네 형이 뒤에서 검은 속셈을 피우는 대목이 있고, 젊은 사장과 커피집 일꾼 사이에 샘솟는 사랑이 있으며, 커피 솜씨 겨루는 대회가 또 있는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실타래로만 엮인 채 제대로 맺거나 풀리지 못합니다. 절집에 들어가 크게 깨달아 커피 끓이기를 새롭게 읽는다고 보여주는 대목조차 너무 짤막하게 너무 빠르게 깨달았다고 보여주고, 무엇보다도 너무 어린 나이에 갑자기 ‘커피 도인’이 된 젊은이 모습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이를테면, “어째서 사람들은 특별해지고 싶어하죠?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남들과 다른 것, 평소와 다른 걸 원하나요(162쪽)?” 하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렇게 물은 말에 이 만화책은 아무런 대꾸를 내놓지 못합니다.





- “뭐, 형에겐 돈 버는 게 삶의 의미라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지금 형이 구둣발로 들어와서 망쳐 놓으려는 게 어떤 건진 알고 있었으면 해서.” (155쪽)



  사람들은 왜 커피를 마실까요? 사람들은 왜 죽기살기로 남과 다른 것을 바랄까요?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 대목을 스쳐서 지나가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만화책 《오늘의 커피》는 이 대목 하나를 풀려고 여러 권에 걸쳐서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실마리를 풀지 않고 서둘러 ‘연재 끝!’ 하고 펜을 내려놓는다면, 두루뭉술한 작품이 하나 더 나올 뿐입니다.


  온누리에는 똑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참말 똑같은 사람이 없는데, 똑같을 수 있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다릅니다. 게다가, 꽃이나 나무도 모두 달라요. 숲이나 들에서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서 자라는 꽃과 나무는 모두 다릅니다. 민들레꽃이든 장미꽃이든 모두 모양새와 빛깔과 무늬와 크기가 다릅니다.


  다 다른 사람이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모두 똑같은 틀에 갇힙니다. 학교와 회사와 사회와 군대 어디에서나 ‘다 다른 사람’을 ‘다 같은 틀’에 끼워맞추려고 내몰아요. 다 다른 사람들은 늘 고단합니다. 다 같은 틀로 내몰리니 얼마나 고단할까요. 다 다른 사람이고 다 다른 삶인데, 다 같은 틀로 얽매이거나 옥죄이다 보니, 무엇 한 가지라도 ‘좀 다른 모습’을 찾아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옷차림이든 자가용이든 커피 한 잔이든, 어딘가 좀 달라야겠다고 용을 쓰지요.





- “사실 저는 눈앞에 나온 커피를 보기만 해도 이미 기분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기대감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169쪽)

- “뭐야, 생각보다 썰렁하잔아.” “무슨 소리야?” “난 네가 하도 칭찬하기에 뭔가 좀 굉장한 분위기일 줄 알았구만. 그냥 평범한 카페잖아.” (182쪽)



  차림새나 모양새를 다르게 꾸며서 보이려 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삶이란 겉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느긋하면서 너그럽게 다스리는 커피 한 잔이란 무엇이 될까요? 겉모습으로 커피를 끓일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끓일 노릇입니다. ‘텅 비우는 마음’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채우는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맛있는 커피가 됩니다. ‘오늘 즐겁게 마실 커피’가 될 때에, 비로소 우리 사회에서 매몰차게 내몰리면서 고단한 사람들이 ‘내 삶’과 ‘내 길’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즐겁고 씩씩하게 다시 기운을 내자고 여길 수 있습니다.


  만화책 《오늘의 커피》는 1권 처음을 열면서 ‘자판기 커피’ 이야기를 재미있게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1권 첫머리로 끝입니다. 2권이 지나고 3권이 되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끌어내지 못합니다. 대결 얼거리와 교훈 줄거리로 서둘로 끝막음을 하고 말았습니다.


  커피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면 그릴 이야기가 아주 많을 텐데, 왜 더 건드리지 못하고 끝냈는지 자못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어쩐지 싱거운 커피맛이 나는 커피 만화인 《오늘의 커피》로구나 싶습니다.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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