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도화면에 있는 도화고등학교 책 동아리 청소년한테 들려줄 이야기로 쓴 글입니다. 시골 청소년들이 기운을 내면서 즐겁게 삶을 짓는 길을 익힐 수 있기를 빕니다.

..

ㅅ 책꿈 키우기
47.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하고 스스로 묻기 앞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생각해 봅니다. ‘어떤 밥을 먹어야 하나?’와 ‘어떤 꿈을 꾸어야 하나?’와 ‘어떤 사랑을 해야 하나?’를 스스로 물어 봅니다. 이런 물음에 스스로 대꾸를 할 수 있을 때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같은 물음을 풀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재미없게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재미있게 살아야 할까요? 재미있게 살아야겠지요. 안 즐겁게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즐겁게 살아야 할까요? 즐겁게 살아야겠지요. 사랑 없이 따분히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사랑스럽게 웃으며 살아야 할까요? 사랑스럽게 웃으며 살아야겠지요.

  맛없는 밥을 먹어야 할까요, 아니면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할까요? 맛있는 밥을 먹어야겠지요. 몸에 나쁜 밥을 먹어야 할까요, 아니면 몸에 좋은 밥을 먹어야 할까요? 몸에 좋은 밥을 먹어야겠지요.

  옷을 놓고 한번 생각해 봅니다. 비싼 옷을 입어야 할까요, 값싼 옷을 입어야 할까요? 이렇게 묻는다면 대꾸할 말을 섣불리 못 찾으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 때에는 옷값이 대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옷’과 ‘나쁜 옷’이라고 할 적에도 헷갈리지요. 무엇이 좋은 옷이고 무엇이 나쁜 옷인지 어떻게 가르겠어요. 옷을 입을 때에는,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습니다. 입어서 아늑하거나 즐거운 옷을 입습니다. 값이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아요.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착한 사랑을 해야겠지요. 따스하면서 아늑한 사랑을 해야겠지요. 넉넉하면서 참다운 사랑을 해야겠지요. 꿈도 사랑과 같습니다. 삶도 사랑과 같습니다. 누구나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착한 길로 나아갈 때에 활짝 웃으면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오자와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가운데 《은빛 숟가락》이 있습니다. 2014년 8월까지 한국에서는 6권이 나왔고, 일본에서는 10권까지 나왔습니다. 책이름이 ‘은빛 숟가락’인데, 은수저라면 은빛이 돌 테고, 은으로 만든 수저가 아니어도, 은수저를 선물하는 마음이라면 은빛이 됩니다. 아끼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담는 은빛이라고 할 만합니다. 튼튼하게 자라고 씩씩하게 크라는 마음을 물려주려는 은빛이라고 할 만해요.

  《은빛 숟가락》 1권 96쪽에서 “아마, 동생들의 ‘맛있는 표정’에 빠져든 것이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겠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어머니와 동생 둘이 있는 주인공 사내는 고등학생입니다. 고등학생 가운데 수험생인 3학년입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만 큰병을 앓고 병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수험생인 고등학교 3학년 사내 아이가 집일을 도맡고 동생들 밥차림도 도맡습니다. 이때 이 사내 아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해요. 무엇을 차리든 동생들은 늘 맛있게 먹습니다. 어머니가 마련한 ‘손으로 쓴 요리 공책’을 옆에 놓고 밥을 차리기는 했지만, 동생들은 다 같이 모여 앉아서 먹는 밥을 아주 즐거워 해요. 그러면,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으로서 동생들 밥차림을 도맡을 만한 ‘한국 사회 푸름이’는 있을까 궁금합니다. 골을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고 즐겁게 집일을 하면서 밥을 차릴 ‘한국 사회 남자 고등학생’은 몇이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2권 123∼124쪽에서는 “맛있는 이유는 알고 있어. 리츠 형 자리에 리츠 형이 앉아 있고, 엄마 자리에 엄마가 앉아서 가족이 다 함께 먹기 때문이야.”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렇지요. 라면 한 그릇을 먹더라도 함께 마주보고 앉아서 먹을 때에 맛있습니다. 빵 한 조각도 서로 나누어서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먹을 때에 맛있습니다. 비싼 밥을 먹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밥을 먹으면 돼요. 이름난 밥집에 찾아가서 사다 먹어야 맛있지 않아요.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으면 맛있지요. 이때에는 즐거운 느낌에다가 따스한 기운이 감돌아요.

  3권 123쪽에서 “응, 그리고 바질도 키워. 작은 화분이지만 매일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쑥쑥 자라. 근데 요즘 푸른 차조기잎만 벌레가 먹네. 우리 집 벌레는 일식(일본 요리)을 좋아하나 봐.”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집에서 손수 밥을 짓는 사람은 조그맣게 텃밭을 가꾸고 싶습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쓰는 푸성귀도 나쁘지 않지만, 작은 꽃그릇에 키워서 그때그때 따서 쓰는 푸성귀야말로 가장 싱싱하고 싱그러우면서 맛난 줄 알거든요.

  4권 157쪽에서 “나중에 리츠는, 그때까지 여러 번 밥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으면서, 같이 밥을 먹는 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밖에서 다 같이 먹는 밥은 대부분 맛있지만, 거기서 가지런히 손을 모아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한 유코를 보고 가슴 설레었다고 말했다.”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한 마디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잘 먹었습니다’ 한 마디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새롭게 되새깁니다. 밥을 차린 사람 가슴속으로 따뜻한 무엇이 타고 오릅니다. 밥을 차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봅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고 보살피려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갑니다. 맛있는 떡은 서로 먹으라고 건네려는 마음으로 함께 살지요.

  5권 24∼25쪽에서 “그때는 가다랑어포밥 만드는 법도 몰라서 그 애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지. 그로부터 항상 난 그 애가 했던 그 말에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밥 한 그릇으로 마음을 달랩니다. 밥 한 그릇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밥 한 그릇에서 꿈이 자라고, 밥 한 그릇으로 어깨동무를 해요.

  그나저나, 나는 아름다운 만화책에서 읽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찬찬히 옮겨적습니다. 아름다운 책이면 모두 아름다운 책입니다. 만화책이라서 덜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글만 있는 인문책이기에 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빚거나 사진을 찍거나, 이야기를 엮는 사람들 마음속에 따스한 숨결이 흐를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책이 태어날 수 있어요. 따사로운 숨결로 즐겁게 빚은 이야기가 감도는 만화책이니, 이 만화책을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언제나 싱그럽게 즐겁습니다.

  6권 154쪽에서 “도어체인 사이로 겨우 들여다본 실내는 정리돼 있어 청결해 보였다. 하지만 루카의 머리는 멋대로 자라 있었고, 옷은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그래도, 딱 하나뿐인 아이스크림을 나눠 주려 한 동생을, 난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은 6권째에 아주 큰 고빗사위가 흐릅니다. 주인공인 사내 아이한테 ‘키운 어머니’와 ‘낳은 어머니’가 따로 있다고 해요. 주인공인 사내 아이는 그동안 ‘키운 어머니’가 ‘한 분뿐인 어머니’로만 알았지만, ‘낳은 어머니’가 있는 줄 나중에 알았고, 저를 낳은 어머니가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인지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낳은 어머니’를 찾아갔더니, 이분은 집에 없고 다섯 살짜리 아이가 집을 지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는 더벅머리에 큼지막한 옷을 입었고, 어머니가 밥을 챙겨 주지 않아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로 하루치 끼니를 때운다고 해요. ‘낳은 어머니’를 만나러 갔던 주인공 사내는 ‘틀림없이 친동생’이로구나 싶은 다섯 살짜리 아이를 바라보다가 눈물을 짓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눈물을 씻어요. 가방에 있던 도시락을 건넵니다. 그러고는, 이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도시락을 새롭게 싸서 ‘낳은 어머니’가 아닌 ‘낳은 어머니가 낳은 동생’을 보러 찾아갑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나는 늘 생각합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은 굳이 안 합니다. 내가 품는 생각은 늘 한 가지입니다. 내 오늘 하루를 사랑스럽게 누리면서 아름다운 삶으로 가꾸자,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읽으려 하는 책은 오늘 하루를 사랑스럽게 누리는 길에 동무가 되는 책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스스로 가꾸는 길에 이웃이 되는 책을 살핍니다. 만화책 《은빛 숟가락》을 찬찬히 되읽으면서 삶과 사랑과 꿈과 사람을 새롭게 헤아려 봅니다. 4347.9.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