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주지 않는다 (사진책도서관 2014.9.1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을 꾸리면서 세운 잣대 가운데 하나는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주지 않겠다’이다. 인천에서도 시골에서도 이 마음은 같다. 인천에서 처음 도서관을 열었을 무렵에는, 사람들이 인천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면서 도서관으로 찾아왔다가, 다시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며 이녁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시골에서 도서관을 꾸리는 요즈음은, 사람들이 시골길을 천천히 거닐듯이 찾아와서, 다시금 시골길을 천천히 거닐듯이 이녁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책은 종이에도 있지만, 숲에도 있다. 책은 종이에도 있으면서, 마을에도 있다. 호젓한 골목동네에도 책이 살아서 숨쉰다. 조용한 시골마을에도 책이 살아서 움직인다.


  멧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어떤 조류도감에서도 다루지 못하는 이야기’를 누린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를 곁에서 쓰다듬으면서 ‘그 어떤 나무도감에서도 건드리지 못하는 이야기’를 맛본다.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나무도감을 읽어서 나무 한살이나 이름을 읽어야 나무를 잘 아는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교수한테서 강의를 들어야 나무를 잘 알 수 있는가? 스스로 나무씨를 받아서 흙에 심은 뒤 차근차근 돌보고 지켜볼 때에 나무를 잘 알 수 있는가?


  밀양 송전탑과 얽혀 밀양 시골마을 할매와 아지매 이야기를 ‘책으로 읽을’ 수도 있으나, 스스로 밀양에 찾아가서 할매와 아지매를 만나서 ‘몸으로 겪을’ 수 있다. 어느 쪽에 잘 아는 길인가?


  아름다운 바다를 노래하는 시를 읽어야 바다를 잘 아는가? 스스로 바다로 찾아가서 바닷바람을 쐬고 바닷내음을 마실 때에 바다를 잘 아는가? 푸른 숲이 우거진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아야 숲을 잘 아는가? 스스로 숲에 깃들어 하룻밤을 자든 며칠 동안 걸어다니든 할 때에 숲을 잘 아는가?


  종이에 앉힌 책은 지식이나 정보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책을 펼치면서 얻는 지식이나 정보는 저마다 가슴에 품은 꿈을 이루는 길에 설 때에 도움을 받는 길동무라고 할 수 있다. 종이꾸러미에서만 책을 읽지 않는다. 삶에서 책을 읽는다. 대담집이나 인터뷰집을 읽어야 책을 읽는가? 내 이웃이랑 동무하고 도란도란 주고받는 이야기도 책이다.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누리는 사랑이 바로 책이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집일이 바로 책이다.


  제발 책을 먼 데서 찾지 말라는 뜻도 있기에, 우리 도서관은 바깥으로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 종이에 깃든 슬기나 넋을 맛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오라. 이곳으로 오는 길에 둘레에 펼쳐진 시골마을과 숲을 보라. 책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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