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Deconstruction - Kim Atta
김아타 지음 / 학고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사진책이 아닌 '행위예술 도록'이지만, 이 책을 사진책으로 나누어 놓기에, '사진비평'으로 쓰기는 했지만, 사진과 예술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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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90



사진인가 예술인가

― 해체

 김아타 사진·글

 학고재 펴냄, 2008.3.20.



  김아타 님이 1990년대 첫머리에 벌인 여러 가지를 묶은 《해체》(학고재,2008)를 읽습니다. 이 책은 1990년대에 나오기 어려웠으리라 느낍니다. 그렇다고 2008년에 나오기도 만만하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2010년대에는? 2020년대나 2030년대에는 어떠할까요? 다른 나라라면 모르되,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다시 나오기 어렵겠구나 싶습니다.


  김아타 님은 커다란 사진기를 써서 ‘행위예술’을 합니다. 그뿐입니다. 행위예술입니다. 사진기를 써서 무엇인가 찍지만, 사진을 찍지는 않습니다. 행위예술을 ‘기록’합니다. 김아타 님이 보여주고 싶은 예술활동을 적어서 남들한테 보여주는 이음돌이 바로 사진기입니다.


  김아타 님은 ‘누드’가 아닌 ‘나체’를 찍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누드란 무엇이고 나체란 무엇일까요? 먼저, ‘누드(nude)’는 영어이고, “알몸”을 뜻합니다. ‘나체(裸體)’는 한자말이며, “알몸”을 뜻해요. 두 가지 낱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누구나 알 텐데, 두 낱말은 모두 한국말 ‘알몸’으로 고쳐서 쓰라고 풀이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적잖은 사람들은 ‘사진가’라는 말을 안 씁니다. 사진가 아닌 ‘포토그래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포토그래퍼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포토’를 ‘메이킹’합니다.


  김아타 님은 누드가 아닌 나체를 찍는다고 하지만, 외국말을 놓고 장난을 해 본들, 바탕은 달라지지 않아요. 말장난으로 이녁 예술활동을 덮어씌우려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최광호 님처럼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게, 한국에서는 한국말로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김아타 님은 미국에서 어떤 영어로 이녁 예술활동을 말하겠어요? 미국에서 미국사람한테 ‘나체’라는 한자말로 말을 할까요?


  최광호 님은 ‘벗긴 몸’이 아닌 ‘벗은 몸’을 이야기합니다. 가시내 옷을 벗겨서 ‘가시내 맨 살결을 찍는 사진을 예술’이라고 여기는 틀을 아주 가볍게 깹니다. 김아타 님도 깨고 싶은 틀이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그 틀을 깨면 돼요. 그 틀을 깨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면 돼요.


  《해체》를 보면, 책 뒤쪽에 “작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나는 데리다의 전유물이었던 해체를 가져왔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90년대 우리의 정서가 그 행위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 행위를 용서하지 않았고, 작업의 결과 또한 이해받지 못하였다. 그것은 아티스트에게 힘든 환경이었다. 하지만 작업과정은 축복 같은 처절함이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김아타 님이 보여주는 ‘해체’란 김아타 님 삶이나 넋이라기보다는 데리다라고 하는 사람 삶이거나 넋인 셈입니다. 아니, 데리다만 ‘해체’를 할 수 있지 않으니, 김아타 님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숨결로 이녁 나름대로 보여줄 수 있는 ‘해체’를 한 셈입니다.





  김아타 님은 언제나 이녁을 ‘아티스트’라고 밝힙니다. 한국에서 흔히 쓰는 ‘예술가’라는 말을 안 씁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많이 움직이다 보니 영어가 익숙할 테니 ‘아티스트’라고 할는지 모르는데, 1990년대 첫머리부터 이렇게 외국 이론과 외국말로 이녁 작품인 행위예술을 보여주려 하니, 여러모로 벽에 부딪히는구나 싶습니다. 틀을 깨려고 행위예술을 하지만 오히려 틀에 갇힌다고 할까요. 틀을 부수려고 행위예술을 했지만 외려 스스로 새로운 틀을 만든 셈이라고 할까요.


  김아타 님은 2014년에 《장미의 열반》이라는 산문책을 선보입니다. 이 산문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뉴욕 세계사진센터 아시아 작가 최초 개인전, 세계적 사진 전문 출판사 애퍼처에서 한국인 최초 사진집 출간, 런던 파이돈 프레스사 선정 세계 100대 사진가, 1억 원에 빌 게이츠 구매 등 아티스트 김아타란 이름을 장식할 화려한 수식어는 무수히 많다’와 같은 이야기를 보도자료로 적어서 띄웁니다. 김아타 님 해적이를 보면 ‘2008년 조선일보 주최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미술작가 10인’에 선정되었다’와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김아타 님은 참으로 ‘아티스트’이거나 ‘예술가’이거나 ‘미술작가’입니다. 김아타 님이 손에 사진기를 쥐었어도 ‘사진가’는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여러 매체나 기관에서 김아타 님한테 사진상을 건네기도 했습니다만, 사진상을 받을 수도 있을 테지만, 김아타 님이 하는 일을 ‘사진’이 아닙니다. 뭐랄까, 김아타 님이 즐기는 영어로 말하자면, ‘포토 아트’입니다. 백남준 님이 ‘비디오 아트’를 했다면, 김아타 님은 ‘포토 아트’를 한다고 할 만합니다.




  김아타 님은 《해체》라는 책 끝자락에 “바다가 깊어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보다 깊지는 않다. 그날도 나는 정신을 풀었다. 작은 바람이 뭍의 살을 발라내는 것을 보았다.” 하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바다도 깊고 우리 마음도 깊습니다. 삶도 깊고 예술도 깊습니다. 깊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바다뿐 아니라 흙 알갱이 하나도 깊습니다. 나뭇잎도 깊습니다. 아이들 눈망울도 깊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바라보면서 느낄 수 있으면, 어디에서나 깊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조록 김아타 님은 이녁 ‘포토 아트’를 슬기롭게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김아타 님이 하는 행위예술은 ‘사진’이 아닌 ‘포토 아트’인 만큼, 사진비평을 하는 이들은 이녁 행위예술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비평을 하기를 바랍니다. 《해체》는 사진책이 아닙니다. 사진으로 엮었지만 ‘행위예술 도록’입니다. 백남준 님이 보여준 비디오 아트를 사진으로 남겨서 묶으면 ‘비디오 아트 도록’이라 하지 ‘사진책’이라 하지 않습니다.


  꽤 예전에, 사진을 놓고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말다툼이 많았다고 하는데,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예술은 언제나 예술입니다. 사진을 예술로 여기지 않는대서 서운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언제나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술은 언제나 예술이기 때문에, 예술을 하면서 예술활동을 ‘사진찍기’인 듯이 말하거나 다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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