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을 살다 -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6
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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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2



바보는 굶겨야 얼을 차린다

― 밀양을 살다

 밀양구술프로젝트 엮음

 오월의봄 펴냄, 2014.4.21.



  전남 고흥군과 해남군은 군청과 군수가 앞장서서 핵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했다가 주민들이 거세게 손사래쳐서 이를 막은 적이 있습니다(1989, 2010∼2011). 그러나 고흥군과 해남군은 군청과 군수가 다시 앞장서서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했어요(2011∼2012). ‘핵’이 아닌 ‘화력(석탄)’이니 괜찮다고 하는 허울을 뒤집어씌웠지요. 그러나 시골사람도 바보가 아닌 터라, 이런 터무니없는 공사계획을 긴 싸움 끝에 물리쳤습니다. 아주 마땅한 일이지만, 커다란 발전소를 시골마을 끝자락 바닷가에 짓는다고 한다면, 우람한 송전탑을 도시까지 수없이 박아야 합니다. 발전소가 들어서는 바닷마을만 무너지지 않아요. 발전소 언저리 바다만 망가지지 않습니다. 송전탑을 박아야 하는 들과 숲이 모조리 망가지거나 무너집니다.


  지난 2012년에 고흥에서 외롭게 ‘화력발전소 반대 싸움’을 할 적에 밀양에서 여러 이웃이 고흥에 찾아와 주었습니다. 중앙언론은 해남과 고흥과 같은 시골마을 이야기는 취재를 하지도 않고 기사로 쓰지도 않습니다. 밀양 송전탑 이야기는 워낙 크게 불거져서 ‘희망버스’가 달려가기도 하지만, 참말 외지고 동떨어진 시골에서 아무리 그악한 일이 터져도, 기자나 작가나 운동가나 활동가나 시민단체가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누구보다도 밀양에서 찾아온 이웃이 크게 힘이 되었습니다. 숫자로 치면 ‘두어 사람’이지만, 밀양에서 송전탑 때문에 아픈 이웃 두어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발전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대목에서 적잖은 시골사람들 눈을 틔워 주었습니다.



.. “자식 보내 놓고 밤에 잠도 못 자고. 그땐 백마부대, 매화부대 마이 죽었어. 월남 가 갖고. 그리 보내 놓고 울기도 마이 울고. 밥도 마이 굶고. 그래서 일을 마이 했다 카이. 잠이 안 와 갖고 베를 짰다 카이. 명주, 삼베 잣는다고 그거 짤라ㅏ카믄 밤새도록 짜야 된다. 울어 가며 노래 부르고.” … “참, 나는 이곳이 너무 좋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 벌어져도 내는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잎이 돋아나고 그 예쁘게 단풍 물드는 산이 철탑으로 장식이 되잖아예. 그 철탑이 보고 싶어서 산을 쳐다보겠습니까?” ..  (25, 250쪽)



  발전소를 시골에 지으려고 하는 까닭을 사람들이 잘 알아야 합니다. 왜 발전소를 시골에 지으려고 할까요? 게다가 시골에서도 아주 외진 시골에 지으려고 할까요?


  오직 한 가지 때문입니다. 발전소는 아주 위험하고 무서운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발전소가 터지는 일이 생겨도 시골에서 ‘최소 인명 피해’가 나도록 할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흥 바깥나로섬에 ‘우주선 발사 기지’를 지은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핵발전소나 핵폐기물처리장이 ‘안전’하다면 도시에 지을 노릇입니다. 도시 한복판에 지어야지요. 그래야 송전탑을 안 놓습니다. 도시에서 쓸 전기 때문에 시골에 발전소를 지어서 송전탑을 끝없이 온갖 시골마을마다 수없이 때려박는 짓은 돈도 자원도 모두 헤프게 쓰는 일이 될 뿐 아니라, 이 나라를 아주 망가뜨리는 바보짓입니다.


  여기에서 더 헤아릴 대목은, 깨끗하고 조용한 시골에 발전소 같은 위해시설을 지으면,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과 열매와 남새는 ‘아주 마땅히 망가집’니다. 도시사람은 밥을 어떻게 먹겠습니까? 모두 시골에서 나는 먹을거리로 밥을 지어서 먹지요. 그러면, 시골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깨끗해야겠지요? 안 깨끗한 시골에서 안 깨끗하게 거둔 곡식과 열매와 남새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겠어요? 아니, 먹을 수조차 없겠지요.


  시골은 언제나 깨끗하게 지키고 돌보아야 합니다. 시골에는 아무런 위해시설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발전소뿐 아니라 공장도 시골에 지으면 안 됩니다.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나 호텔도 시골에 지으면 안 됩니다. 시골은 깨끗한 삶터가 되도록 지키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골과 도시가 함께 즐겁게 잘 살 수 있습니다.



.. “언제 누가 살아도 여긴 물 좋고 공기 좋고, 손주들 와서 살고 누가 와도 다 잘살 낀데. 자꾸 밑으로 내려오믄 이제 못 산다. 송전탑 저거 보통 것도 아니고 76만 5000볼트 디게 센 게 와가, 저 청도 가서 갈라진다 카이. 밑에 산소도 파내라고 지랄병 하는데 우야겠노.” … “도시 가면 오히려 재밌는 게 없어. 여기 오면 무진장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나를 기쁘게 하고 좋게 해. 자연 사랑해 봐.” … “이 사람들이 10월 달부터 돈을 가지고 꼬시는 기라. 11월 말까지 안 받으면 안 된다, 12월 말까지 안 받으면 마을 공동기금으로 들어간다 카민서. 이런 식으로 보상금 받기 싫다는데도 집집이 다니면서 전화를, 홍보팀에서 계속 전화를 해 가지고 보상금 받아라, 안 받으면 마을 공동기금으로 들어가면 영영 못 받는다 ……” ..  (35, 106, 264쪽)



  밀양 이웃은 고흥에 와서 ‘발전소를 바깥나로섬 끝에 지은 뒤 송전탑을 어디로 어떻게 잇겠느냐?’ 하는 생각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고흥에 있는 시민모임은 ‘송전탑 예상 배치 그림’을 큼직하게 그려서 고흥 읍내에 걸었습니다. 커다란 걸개그림을 본 고흥 여러 면과 읍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고흥 ‘귀퉁이’에 발전소를 짓는 일은 ‘귀퉁이로 끝’이 날 일이 아니었지요. 외통수 반도 모양으로 생긴 고흥에서는 모든 읍과 면이 송전탑으로 피해를 보아야 하는 일이었지요.


  밀양 이웃은 고흥에 화력발전소가 못 들어오게 막는 일에 크게 이바지를 했습니다. 고흥사람도 밀양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고흥 이웃이 밀양에 얼마나 이바지를 했는지 잘 모릅니다. 이바지가 될 수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고흥에서는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것 참 무시무시한 일이로구나!’ 하고 느끼거나 깨달았는데, 밀양에서는 ‘고흥·해남 핵발전소·화력발전소 계획’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라고 느끼거나 깨닫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은 시골마을 분들은 잘 느끼시더라도 밀양 시내에서는 얼마나 느낄는지, 살갗으로 느끼거나 ‘우리 모두한테 닥친 일’이라고 뼈저리게 느낄는지 궁금합니다.


  밀양뿐 아니지요. 청도에서도 똑같습니다. 밀양과 청도뿐일까요. 커다란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부터 송전탑을 줄줄이 놓는데, 왜 자꾸 커다란 발전소를 새로 지으면서 우람한 송전탑을 줄줄이 박아야 할까요? 왜 작은 발전소로 바꾸지 않으며, 왜 집과 마을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서 쓰는 틀로는 안 바꾸려고 할까요?



.. “경찰 가시나들, 저 더러분 놈의 가시나들 때문에 사람이 몇이 다쳤는 줄 아나. 제방 젙에 앉았다고 나이 많은 사람들 밀어내고 안고 나와서 아무 데나 놔버리니까 허리 다친 사람 있제.” … “소 한 마리 30만 원씩 주면 해롭기 때문에 그렇게 주는 거 아이겠습니꺼. 가처분신청 받아 가지고 법원에 갔는데 마지막에 할 말 있으면 하라 카대. 그래 내가 ‘여게 한전 놈들도 있지마는 생각해 보시소. 소 한 마리 30만 원 주면 사람 한 마리는 얼마 주는교?’ 물으니 대답도 안 합디다.” … “경찰들은 웃긴 게 우리가 경찰 코만 건드려도 그게 폭행죄더만요. 조깨만 차 옆에 얼쩡거려도 공무집행방해고. 그러니 우리가 무슨 수로 경찰을 이기겠습니까. 석 달째 경찰들은 오미가미 탱자탱자 놀면서 월급 다 받아 처먹고.” ..  (37, 147, 291쪽)



  밀양구술프로젝트에서 엮은 《밀양을 살다》(오월의봄,2014)를 읽었습니다. 시골마을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나려고 한다면 ‘구술프로젝트’ 같은, 아무래도 시골하고 너무 동떨어진 이름이 아닌, 시골스러우면서 살가운 이름을 지어서 쓰면 좋을 텐데, 도시에서 시골을 찾는 이들 마음자리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밀양을 살다》를 읽으면, 밀양에서 나고 자랐거나 밀양으로 시집·장가를 들거나 밀양이 좋아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논 한 마지기를 어떻게 일구었고, 밭 한 뙈기를 어떻게 가꾸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집 한 채는 그냥 집 한 채가 아닙니다. 집 한 채는 깊은 사랑이요 너른 꿈입니다. 집 한 채는 강제수용이나 보상금이나 부동산이 아닙니다. 집 한 채는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깃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입니다.



.. “사람이 다 울력으로 삽니더. 울력으로예. 참말로 정답게 잘 지내는 동넵니더, 여가.” … “내가 엄청 큰 공부를 했더라구. 농촌 사람들한테 … 내가 왜 청와대에 들락거리는 사람들만이 신사라고 했을까? 그게 아니었네. 그 사람들하고 이 사람들(시골사람)하고 바뀌어야 하네.” … “옛날에도 내가 정치는 쇼인 건 알았거든예. 근데 이걸 하면서 완전히 쇼인 걸 제대로 알았어예. 그니깐 정부에서도 너거는 뒤지 봐라, 뭐 이런 거 같아예.”..  (85, 99, 300쪽)



  나라에서 올바른 일을 한다면 강제수용을 할 턱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아름다운 일을 한다면 경찰과 군대와 전경 따위를 끌어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강제수용을 하고 강제집행을 하며 강제공사를 벌인다면, 나라에서 하는 일은 하나도 안 올바를 뿐 아니라,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올바르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아도 밀어붙이기 일쑤입니다. 언제나 말하지요. ‘국익’을 생각한다고.


  핵발전소가 국익일까요? 전쟁과 군대가 국익일까요? 새마을운동과 경제발전이 국익일까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국익일까요? 고속도로와 골프장이 국익일까요? 농약과 비료가 국익일까요? 입시지옥과 학력차별이 국익일까요? 시골에는 늙은이만 남도록 모든 어린이와 젊은이를 도시로 보내도록 하는 사회 얼거리가 국익일까요?



.. “경찰들이 할머니들한테 너무 심하게 하는 거예요, 여경들이. 저그 엄마 즈그 아빠도 그렇게 못하는데 완전 손을 꼬집는 게 멍이 시퍼럴 정도로 팔을 비틀거나 온몸을 다 비트는 거예요. 완전 꼼짝달싹도 못하게. 그거 보고 나서 내가 막 여경한테 얘길 했거든요. ‘너희 할머니들한테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냐. 너희도 그렇게 한번 당해 보면, 안 겪어 봐서 모르지, 이때까지 여기서 농사짓고 산 할머니들인데 저희 집 앞에 탑이 들어오면 좋겠냐. 그렇게 싫다는 송전탑 왜 세우냐, 너희 머리 꼭대기에 세워라.’ 듣는 척도 안 하고 입 꼭 다물고 있는 거예요, 여경들은. ‘한번 봐라, 니가 했는 짓 한번 봐라. 할머니 손 이런 식으로 멍 시퍼렇게 하면 되겠느냐.’ 도로가에서 꼼짝달싹도 못하게 다 막고 있는 거예요. 도로에 전부 다 할머니들이 벼농사 해 갖고 나락을 다 널어놨거든요. 경찰들이 밝을라고 하는 거예요. ‘느그 밟지 마라. 이때까지 할머니들이 고생해 가지고 농사지어 놓은 것을 너희가 왜 망칠라 하느냐. 밟지 마라, 다리 안 치우냐!’” ..  (314쪽)



  가을입니다. 가을걷이를 아직 하지도 않았으나 한가위가 지나갑니다. 이제 곧 가을걷이를 합니다. 나는 조그맣게 꿈을 꿉니다. 가을걷이를 앞둔 올가을에 꿈을 꿉니다. 밀양 이웃을 헤아려서, 이 나라 시골사람이 서로 이웃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이 나라 모든 시골마을에서 올가을에는 ‘가을걷이만 마치’되, 나락을 농협에 팔지 않기를 꿈꿉니다. 이 나라 모든 시골에서 모든 농사꾼이 ‘농협 수매 거부’를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도 엉터리이니, 이런 엉터리 협정 때문에라도 ‘농협 수매 거부’를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우리 이웃 밀양 할매와 할배와 아지매와 아재가 활짝 웃을 수 있도록 ‘우악스러운 송전탑 공사 그만둬!’ 하고 함께 외칠 수 있게끔, 모든 시골에서 나락 한 톨조차 ‘농협 수매 거부’를 해서, 청와대와 국회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과 대구를 비롯한 모든 도시에서 ‘한국 쌀’은 못 먹게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경제발전과 무역이 그렇게 대단하니, 대통령을 비롯해 장관이건 공무원이건 누구이건, 다 ‘미국 쌀’이나 ‘중국 쌀’이나 ‘베트남 쌀’이나 ‘캐나다 쌀’을 먹으라고 하지요. 경찰과 전경도 모두 ‘한국 쌀’은 입에 대지 말고 수입 쌀만 먹으라고 하지요.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군홧발로 짓밟고 온갖 주먹다짐과 거친 말을 일삼는 경찰과 전경한테는 배추 한 쪼가리조차 중국에서 사다가 먹으라고 하지요. 나락뿐 아니라, 배추도 무도 양파도 마늘도 파도 모두 ‘농협 수매 거부’를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딸기도 수박도 참외도 능금도 배도 포도도 몽땅 ‘농협 수매 거부’를 할 수 있기를 꿈꾸어요.


  몽땅 나라밖에서 사다 먹으라고 해요. 그렇게 이웃을 짓밟고 깔보려고 한다면, 이 나라 시골에서 나는 곡식과 열매와 남새는 아예 손도 못 대게 할 수 있기를 꿈꾸어요. 바보들은 며칠 굶겨야, 아니 석 달쯤 굶겨야 비로소 번쩍 얼을 차리리라 생각합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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