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 (사진책도서관 2014.9.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한가위를 맞이했고, 우리 집은 시골을 지킨다. 양력으로는 퍽 이르다 할 한가위인 터라 아직 꽤 덥다. 아침 열 시가 지나가면 땀이 흐른다. 아이들과 도서관으로 가서 놀기로 한다. 오늘도 다른 날처럼 ‘책꽂이 곰팡이’를 닦는다. 그러나 조금만 닦는다. 날마다 곰팡이를 닦자니 다른 일을 아무것도 못 한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씩 곰팡이를 닦기로 하고, 여느 날에는 책꽂이를 살피거나 뮤패드로 책이야기를 써 보기로 한다.


  도서관으로 들어서는 길목이 확 트였다. 우리가 빌려서 쓰는 폐교 건물을 건사하는 새로운 분이 풀을 죄 베어 주신 듯하다. 우리가 도서관으로 삼는 폐교 건물은 다른 분이 먼저 빌리셨고, 우리는 그분들한테 다시 빌렸다. 우리는 건물 반칸만 쓰기로 했으니 다른 것은 손대지 못한다. 풀이 쑥쑥 잘 자라도 길만 낫으로 조금 벨 뿐, 더 건드릴 수 없다. 전기를 못 쓰건 물을 못 쓰건 우리가 아랑곳할 수 없는 노릇이다.


  도서관으로 들어서는 풀숲길이 넓게 트이니, 큰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꽃이 모두 사라졌잖아.” 하고 말한다. 괜찮아. 이 길에만 꽃이 없을 뿐, 옆에 있는 너른 풀숲에는 고들빼기꽃이며 돌콩꽃이며 가득하단다.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려 하던 사광이풀도 모두 베여서 사라지니 아쉽기는 하지만, 사광이풀은 어디에서든 쉬 찾아볼 수 있겠지. 어제 도서관에 왔을 적에 사광이풀꽃 봉오리를 만지니 꽤 단단했다. 아주 작아 아기 손톱보다 더 작은 봉오리인데 얼마나 야무진지 모른다.


  도서관에 들어온 뒤 큰아이는 만화책부터 찾고, 작은아이는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쉬잖고 달리면서 논다.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도록 논다. 지난날을 돌이킨다. 일곱 살 큰아이가 서너 살 무렵일 적에도 요즈음 작은아이처럼 내내 뛰면서 놀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그야말로 기운차게 달리면서 놀았다. 놀이순이 큰아이는 어느새 책순이로 거듭난다. 이제 다리힘이 많이 붙은 작은아이는 한동안 놀이돌이로만 지낼 테지.


  두 아이가 서로 다르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이루어 앞으로 즐겁게 꾸리고 싶은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가. 풀과 나무로 숲을 이룬 도서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을 갖춘 도서관, 시골사람 스스로 삶을 짓는 보금자리와 함께 있는 도서관, 자동차 소리나 농약 냄새에서 홀가분한 도서관, 일하고 놀고 어울리고 춤추고 노래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당이 되는 도서관, 날마다 삶을 새롭게 배우면서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넋을 익힐 수 있는 도서관, 이런 도서관이겠지.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려야겠다. 우리 도서관이 나아갈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날마다 들여다보아야겠다. 곰팡이 걱정뿐 아니라 임대료 걱정이나 농약 걱정을 모두 씻어내는 아름다운 도서관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나와 곁님을 생각하며 이웃과 동무 모두를 생각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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