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거닐다 -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88



즐기는 사진과 즐거운 사진

― 가만히 거닐다

 전소연 글·사진

 북노마드 펴냄, 2009.1.10.



  전소연 님이 일본 어느 한 곳을 찬찬히 거닐듯이 돌아다닌 발자국을 담은 이야기책 《가만히 거닐다》(북노마드,2009)를 오랜만에 읽습니다. 이 책을 언제 장만해서 책꽂이에 꽂았는지 가물가물합니다. 한참 지난 일 같은데, 아마 몇 해쯤 묵었을는지 모릅니다.


  애써 장만한 책을 왜 몇 해 묵혔을까요. 책이름처럼 ‘가만히 거니’는 마음 그대로 가만히 읽을 생각이었을까요.


  전소연 님은 “어쩌면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은 운명과도 같다. 시기적절하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곳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스미게 되면 그곳에 가야 하는 운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2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을 적에도 으레 이와 같이 된다고 느낍니다. 꼭 알맞다 싶은 때에 그 책이 나한테 옵니다. 어느 책 하나를 만날 때에는 그 책이 내 마음에 스며들 만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에는 그 사람이 내 사랑으로 다가올 만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어느 한 곳을 아침 낮 저녁 밤 새벽에 걸쳐 찬찬히 거니는 전소연 님은 “풍경을 흑백과 컬러로 담고 싶어서 두 개의 카메라를 선택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한 취재 여행의 경우는 모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갖고 있는 카메라 전부를 가져가기도 한다(35쪽).”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기를 쓰는데, 사진기마다 빛결과 빛느낌이 다릅니다. 모든 사진기가 똑같은 빛결과 빛느낌이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기계만 쓰면 됩니다. 그러나, 사진기 만드는 회사가 여럿이고, 같은 회사라도 기종마다 빛결과 빛느낌이 참말 달라요.


  화소수 때문에 결과 느낌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기계를 만든 사람들 마음에 따라 결과 느낌이 달라져요. 그리고, 기계를 장만해서 손에 쥐는 사람들 삶에 따라 결과 느낌이 달라집니다.





  똑같은 장비라 하더라도, 도시와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다른 결과 느낌을 보여줍니다. 어린이와 어른은 서로 다른 결과 느낌을 보여줍니다. 멧골과 바닷가에서 저마다 다른 결과 느낌을 보여줍니다. 40층 아파트와 5층 아파트는 서로 다른 결과 느낌을 보여줍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하고 자가용을 달릴 적에 저마다 다른 결과 느낌을 보여줍니다.


  생각해 보면, 똑같은 연필을 놓고도 사람들은 다 달리 글을 씁니다. 연필 하나를 놓고 누군가는 글을 쓴다면 누군가는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무언가 남기고 싶어 찍는 사람이 있고, 즐거워서 찍는 사람이 있으며, 사진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할 생각으로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여행을 할까요. 여행을 하는 동안 무엇이 즐겁거나 재미있을까요. 전소연 님은 “이곳 일본에 와서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는 것이었다(75쪽).” 하고 말합니다. 여행을 하러 일본에 가서 거닐 적이 아닌, 여느 삶을 일구면서 한국에 있을 적에는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될까요. 한국에서도 살림살이는 적게 갖추어도 된다고 느낄까요. 그러면, 사진 여행을 한다고 할 적에는 사진기를 몇 대 갖추어야 할까요. 사진기마다 느낌이 다 다르기에 여러 가지 사진기를 고루 챙기면, 내 느낌을 더 잘 나타낼까요, 아니면 사진기 하나로도 내 느낌을 다 달리 나타내는 길을 열 수 있을까요.


  가만히 거닐 적에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신나게 달리면서 찍을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는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있으면서 사진을 찍을 테고요. 가만히 거닐 적에는 걸음걸이에 따라 차츰 새롭게 나타나는 흐름을 바라봅니다. 걸음걸이에 맞추어 이웃 살림살이를 바라보고, 걸음걸이에 따라 길과 집과 마을을 골고루 헤아립니다. 가만히 거닐 적에 ‘가만히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만나서, 이 모습을 찬찬히 사진으로 찍습니다. 바삐 달리는 사람은 바삐 달리는 사람들을 봅니다. 한 자리에 멈춘 사람은 나처럼 한 자리에 멈춘 다른 사람들을 봅니다. 가만히 거닐 적에는 ‘가만히 생각에 잠기고 가만히 사랑을 속삭이는 이웃’을 만납니다. 가만히 주고받는 이야기를 사진에 싣고, 가만히 키우는 꿈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그런데, “교토에서는 버스가 정차한 뒤에 급할 게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걸어나오는 승객과 마지막 승객까지 기다려 주는 운전기사가 만드는 작용·반작용이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심지어는 내리면서 기계에 잔돈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편안하다 못해 답답하기까지 했다(145쪽).” 같은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아니, 갸우뚱할 일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지낼 적에 그예 빨리빨리 움직이는 삶에 몸을 맞추었으니,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하기까지’ 했다고 느낄 만합니다. 그러니까, 일본을 거닐어도 일본 결과 느낌을 헤아리기보다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전소연 님 삶자락에 따라 바라본다고 할까요.


  어쩌면 너무 마땅할는지 모릅니다. 사진은 내가 찍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는 대로 찍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167쪽).”와 같은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진을 한 장 찰칵 찍을 적에 너와 내가 이야기 첫머리를 연다고 말하는데, 내가 너를 ‘답답하기까지’ 했다고 느낀다면, 서로 어떤 이야기를 여는 셈일까요. 그저 내 삶대로만 너를 바라보면서, 네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려는 몸짓은 없는 노릇 아닐는지요.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짧은 대화가 오고 갔고, 그 잠깐 사이에 주문은 종료되었다. 할아버지는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시는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따끈한 우동 한 그릇을 말아 주셨다(219쪽).”와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일본 할아버지가 왜 웃었는지 전소연 님은 모릅니다. 다만 ‘외국사람과 얘기를 나누어서 흐뭇하다’고 느꼈을는지 모른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소연 님이 찍는 사진은 언제나 전소연 님이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움직이고, 스스로 즐기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진입니다.


  사진 한 장을 놓고, 좋음과 나쁨으로 가를 수 없습니다.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은 없습니다. 즐기는 사진이 있고 즐거운 사진이 있습니다. 즐기는 사진이란, 나 혼자 즐기는 사진입니다. 즐거운 사진이란 너와 내가 한집 사람이 되거나 한마을 이웃이 되어 나누는 사진입니다. 그래요, 《가만히 거닐다》라는 사진책은 스스로 삶을 즐기고 싶은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내 이야기’를 드러내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4347.9.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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