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에누리가 책마을 망가뜨린다



  2014년 11월에 새로운 도서정가제대로 책을 다루어야 한단다. 이를 앞두고 여러 ‘대형 인터넷책방’에서 출판사와 손을 잡고 ‘반값 에누리 책’을 선보일 뿐 아니라 ‘1000원 책’이나 ‘2000원 책’까지 선보인다. 그런데, 이런 책이 ‘헌책’이 아닌 ‘새책’이다. 사람들이 즐겁게 사서 읽은 뒤 내놓은 헌책이 아니라, 아직 아무 손길도 받은 적 없는 새책을, 책방에 들여놓는 때부터 반값으로 에누리를 하거나 ‘1000원 균일가’라느니 ‘2000원 균일가’로 밀어넣기를 하는 셈이다.


  조금이라도 생각해 볼 노릇이다. 책을 이렇게 팔아서 종이값이라도 건질 만할까? 책을 이렇게 팔면 작가나 번역가나 화가한테 글삯(인세)을 줄 수 있을까? 1만 원짜리 책이라면 글삯이 10퍼센트인데, 이런 책을 ‘1000원 균일가’로 팔면 종이값은커녕 글삯조차 줄 수 없다. 이게 무슨 책장사인가?


  책이 도무지 안 팔리는 나머지, 맞돈을 조금이라도 만져야 하기에 반값으로 에누리를 해서 책을 밀어야 할는지 모른다. 다문 ‘1000원 균일가’나 ‘2000원 균일가’로 마구마구 집어넣어야 출판사가 문을 안 닫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물어 볼 노릇이다. 이렇게 후려치기를 해서 파는 책은 ‘독자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 책일까? 제값대로 팔지 못하는 책이라면, 처음부터 ‘독자가 읽을 값어치가 없는 책’은 아닐까? 독자가 사랑할 책이라면, 반값으로 에누리를 할 때에 장만할 책이 아니라, 제값을 모두 치르면서 뿌듯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는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대형 인터넷책방이 출판사에 ‘반값 에누리’를 하자고 먼저 말했을는지, 아니면 대형 출판사가 대형 인터넷책방에 ‘반값 에누리’를 하자고 먼저 말했을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뚜렷하다. 두 곳에서 서로 한마음이 되어 하는 일이다. 책 하나를 반값 후려치기를 하거나 1000원이나 2000원에 밀어붙이기로 팔아치우려는 짓은, 작가와 독자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짓이다.


  이런 일이 있을 적에 독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출판사와 책방이 힘들어 보이니 이럴 때에 책을 더 사야 하는가? 이런 일이 없도록 반값 에누리 따위를 하기 앞서 즐겁게 책을 사서 읽을 노릇일까?


  한 가지 덧붙인다. 반값 에누리 따위가 갑자기 판을 치는데, 이러거나 말거나 반값 에누리는 아예 안 쳐다보는 출판사도 제법 많다. 모든 출판사가 모든 책을 반값 에누리로 밀어넣지 않는다. 그런데, 반값 에누리 따위가 워낙 판치다 보니, 제값을 제대로 받으면서 독자를 만나려고 하는 책들은 ‘독자가 알아보기 쉽지 않’다.


  어떤 책을 읽어서 스스로 어떤 삶을 가꾸려 하는가는 언제나 독자 몫이다. 이 책을 읽어도 좋고 저 책을 읽어도 좋다. 꼭 제값 치르는 책만 읽어야 마음을 살찌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반값 에누리 책을 사들여서 읽는다 하더라도 마음을 살찌울 수 있지는 않다. 책을 왜 읽는가? 값이 싸니까? 값이 안 싸면 책을 읽을 뜻이 없을까? 우리는 ‘책’을 읽는가, ‘값’을 읽는가?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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