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커피 1
기선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74



맛있는 커피 한 잔

― 오늘의 커피 1

 기선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09.2.27.



  밥을 지으면서 으레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오늘도 내가 지은 이 밥이 참 맛있네.’ 내가 짓는 밥과 국이 참말 맛있구나 하고 느끼면서 내 어머니도 으레 이렇게 생각하셨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이렇게 느낄 겨를이 없이 날마다 살림을 꾸리느라 바쁘기만 하셨을는지 모르지만, 나 혼자 먹는 밥이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먹는 밥을 차릴 적에는 참말 늘 맛있게 지었으리라 느껴요. 밥을 먹어 주는 사람은 그냥 먹어 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입에 맞고 즐거우니까 ‘먹어 줄’ 테지요.



- ‘맛있다! 내가 뽑았지만 정말 맛있어!’ (11쪽)

- “사업은 아이템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야. 사람을 감동시키는 뭔가가 있어야 돼! 내 입맛에 맞는 커피도 제대로 못 타는 주제에 무슨.” “할아버지는 다방커피만 드시니까 그렇죠!” “어허! 지금 다방커피를 무시하는 거냐? 다방커피는 타는 사람의 손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이 연출되지.” (23쪽)



  맛있게 지은 밥을 함께 먹으면서 즐겁습니다. 맛있게 끓인 국을 후후 불면서 목구멍으로 넘기면 속이 시원하게 뚫립니다. 우리 시골집에서는 냇물을 마시기에 한결 맛있는 국일 수 있습니다. 수돗물이 아니고, 페트병에 갇힌 물이 아닙니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온 물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에는 어느 시골이든 다 맛있는 밥이요 국이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어디나 맑은 물이 흘렀거든요.


  고속도로가 늘고 자동차가 싱싱 달리면서 맑은 물이 사라집니다. 공장이 늘고 골프장이 뻗으면서 싱그러운 바람이 사라집니다. 맑은 물이 사라지니 수돗물을 씁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사라지니 에어컨을 켭니다. 예나 이제나 사람들은 밥과 국을 똑같이 먹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맛나거나 구수한 밥과 국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다닙니다만, 신문이나 방송에서 손꼽는 가게는 있더라도,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스스로 즐겁게 누리던 손맛과 입맛은 차츰 사라지거나 잊힙니다.





- “난지가 카페라떼를 처음 마셔 봐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런 게 어딨어요! 처음 맛없으면 끝까지 맛없는 거지!” “하하, 그냥 네 입맛에 카페라떼가 안 맞는 걸지도 모르잖아?” “과연 그럴까요? 우유거품이 좀더 부드럽고 가벼워지면 지금보다는 훨씬 맛있을 것 같은데.” (74쪽)

- “솔직히 손님한테만 하는 말인데, 이 카페 좀 웃기지 않아요? 커피라는 게 맛있으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따지고 까다롭게 구는지. 카페라떼건 카푸치노건 알 게 뭐예요? 커피랑 우유가 사이좋게 섞여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80∼81)



  기선 님 만화책 《오늘의 커피》(애니북스,2009) 첫째 권을 읽습니다. 커피집을 차려서 이끌기는 하지만, ‘커피 마시는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앳된 젊은이가 나옵니다. 변변한 살림집조차 없이 떠도는 삶이지만, ‘자판기 커피’를 사람들이 즐겁게 마시도록 이끄는 앳된 젊은이가 한 사람 더 나옵니다.


  외국까지 가서 커피를 배운 앳된 젊은 사내가 주인공 하나요, 한국에서 집 없이 떠돌며 자판기를 지키는 앳된 젊은 가시내가 주인공 둘입니다.


  스물을 조금 넘긴 앳된 두 젊은이는 ‘커피맛’을 얼마나 알까요. 앳된 두 젊은이는 언제부터 ‘커피맛’을 보았을까요. 나이가 어리기에 커피맛을 모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으니 커피맛을 잘 알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 삶으로 삼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받아들일 때에 밥맛이든 커피맛이든 국맛이든 물맛이든 알 수 있습니다. 시냇물 곁에 집이나 마을이 없으면 졸졸 흐르는 맑은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는 맛을 몰라요. 물과 바람이 맑은 곳에서 살지 않으면, 냇물이 수돗물하고 댈 수 없도록 얼마나 싱그러우면서 시원한가를 모릅니다.


  무지개를 본 적 없으면 무지개를 모르고, 미리내를 본 적 없으면 미리내를 모릅니다. 거꾸로, 아파트를 본 적 없으면 아파트를 모르며, 골프장을 본 적 없으면 골프장을 모르지요.





- ‘우리 카페, 저렇게 썰렁했었나? 내가 봐도 손님 안 오게 생겼잖아.’ (108쪽)

- “할머닌 절대 커피 만드는 건 손도 못 대게 하셨어. 아무리 바빠도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 손으로 해야 한다고 우기셨지. 그게 장사하는 사람의 책임감이라면서 말야. 시간이 없어서 손님을 돌려보내는 일이 있어도, 다방 문을 닫는 그날까지 모든 메뉴는 손수 만드셨어.” (162쪽)



  더 나은 삶은 없습니다. 스스로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꾸리는 삶입니다. 더 나은 커피집은 없습니다. 어떤 가게에서 일하든 스스로 즐겁게 커피 한 잔을 타서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돈을 잘 버는 가게여야 맛난 커피집이 아닙니다. 돈을 덜 번대서 맛난 커피집으로 이어가지 않습니다. 기계로 커피알을 갈든, 찻숟가락으로 커피가루를 녹이든, 알맞은 손길과 따스한 마음과 살가운 숨결이 있어야 할 뿐입니다.


  밥 한 그릇을 짓는 마음으로 커피 한 잔을 탑니다. 노래 한 가락을 부르는 마음으로 커피 한 잔을 탑니다. 서로서로 즐겁게 웃으며 속삭이는 이야기 한 마디처럼 커피 한 잔을 탑니다.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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