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히 읽다 보면
들뜨거나 바쁘면 어떤 일을 해도 손에 제대로 안 잡힌다. 들뜨거나 바쁜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면, 책에 깃든 숨결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려야 하고, 들뜨거나 바쁜 마음을 조용히 다스려야 한다.
들떠 움직이는 사람은 생각을 슬기롭게 못 짓기 일쑤이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은 생각을 사랑스레 못 가꾸기 마련이다. 차분한 마음이 되고 차분한 몸가짐이 될 때에, 비로소 생각도 사랑도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다.
천천히 쌀을 씻는다. 천천히 비질을 한다. 천천히 걸레질을 하고, 천천히 빨래를 복복 비벼서 헹군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들으며, 천천히 웃음을 짓는다.
어떤 것이든 내 삶자리에서 차근차근 갈무리할 때에는 으레 마음이 천천히 차분해지지 싶다. 이때에는 내 마음에 새로운 힘이 붙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씩씩하게 맞이할 수 있구나 싶다. 그러니까, 차분히 가라앉힌 마음으로 책 한 권 손에 쥘 때에 빛을 먹고 숨결을 먹으며 이야기를 먹는다. 차분히 다스린 마음자리에 슬기로운 생각과 사랑스러운 꿈을 씨앗 한 톨로 심으면서 빙그레 웃음이 솟으면서 살며시 노래가 흐른다.
차분히 읽다 보면 모두 이루어진다. 차분히 살다 보면 모두 이룬다. 차분히 걷다 보면 아름다운 바람을 쐰다. 차분히 일하다 보면 시나브로 씩씩하게 한길을 걷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4347.9.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