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인터뷰
로렌스 R. 스펜서 엮음, 유리타 옮김 / 아이커넥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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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9



슬기롭게, 아름답게, 사랑스레

― 외계인 인터뷰

 로렌스 R. 스펜서 엮음

 유리타 옮김

 아이커넥 펴냄, 2013.10.31.



  1962년에 《조용한 봄》(Silent Spring, 침묵의 봄)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조용한 봄》이라는 책을 쓴 레이첼 카슨 님은 1958년 1월 12일에 〈보스턴 해럴드〉라는 신문에 난 글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쓰기로 다짐했고, 네 해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갈무리해서 책을 내놓습니다. 그러고는 1964년에 숨을 거둡니다.


  레이첼 카슨 님이 1962년에 《조용한 봄》을 내놓기 앞서 미국에 있는 수많은 ‘농약 회사’는 엄청난 돈과 힘을 들여 이 책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고, 글쓴이를 비아냥거리거나 깎아내리는 짓을 일삼았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이 책은 1962년부터 1964년 사이에 100만 권 즈음 팔렸다고 합니다. 시골을 농약으로 뒤덮을 뿐 아니라, 도시는 살충제로 뒤엎으려고 하는 물결이 드세었어도, 이런 물결을 아랑곳하지 않고 ‘참’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는 사람은 꽤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1974년, 1976년, 1991년, 2002년에 《조용한 봄》이 한국말로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국에서만큼 이 책이 읽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처럼 이 책을 읽고 생각을 깨뜨리거나 마음을 여는 사람이 좀처럼 늘지 않습니다. 농약과 살충제가 흙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낱낱이 밝힐 뿐 아니라, 농약과 살충제가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샅샅이 알려주는 책이 어엿하게 있으나, 이러한 책을 제대로 읽으면서 생각을 가꾸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시골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들과 숲에 농약을 뿌립니다. 도시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곳곳에 살충제를 뿌립니다. 시골에서 모깃불을 태우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와 똑같이 살충제를 뿌립니다.



.. 무지와 비밀 유지가 보호하는 것은 단 하나, 다른 사람들을 구속하는 권력으로 그들의 사적인 의도를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 나는 ‘내’가 내 몸이 아니라는, 단순하지만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모든 피라미드 문명은 무지와 두려움과 무력으로 인류의 노예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통제 방법으로 종교를 이용합니다 …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많은 자원을 낭비하며 그렇게 많은 쓸모없는 건조물들을 세웠을까요? 신비스러운 환영을 창조하기 위해서지요 ..  (42, 98, 152, 159쪽)



  한국에서는 1970년부터 새마을운동 물결이 쳤습니다. 독재권력을 앞세운 이들이 이 운동을 펼쳤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이름 그대로 새로운 마을을 만들겠다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마을은 어디에서도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독재정권이 만든 새로운 마을은 ‘어린이와 젊은이가 모두 빠져나간 시골’ 모습이 됩니다. 독재정권이 세운 새로운 마을은 ‘석면(함석, 슬레트) 지붕’과 ‘시멘트 고샅’과 ‘기름 먹는 농기계’가 어우러진 시골입니다.


  새마을운동이 밀어닥치기 앞서까지, 한국 시골에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밀어닥치면서 한국 시골에는 쓰레기가 엄청나게 생겼습니다. 첫째, 석면 지붕입니다. 둘째, 농약과 농약병입니다. 셋째, 비닐입니다. 넷째, 비료 푸대입니다. 다섯째, 농기계가 내뿜는 배기가스와 석유 찌꺼기입니다. 여섯째, 도시에서 흘러든 박카스 빈병과 텔레비전 따위입니다.


  그런데, 지난 2013년에 유네스코에서는 ‘새마을운동 기록물’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올렸다고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온갖 쓰레기를 불러들였고, 시골을 무너뜨렸으며, 독재정권을 버티는 밑힘이 된, 이런 무시무시한 짓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올렸습니다.


  아마, 세계기록이 될 만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빨리 어느 한 나라를 수렁에 빠뜨리는 짓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빠르게 어느 한 나라를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는 짓은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 우주에는 소리를 전달하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우주선 조종사는 그런 기관이 필요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몸에 소리를 담당하는 감각 기관이 없고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어 입도 없었습니다 … 에어럴은 몸을 살아서 기능하게 하는 그녀만의 ‘에너지’를 스스로 공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몸은 영적 존재인 그녀에 의해서만 살아 움직였습니다 … “우주에는 세균이 없다.” … “당신 우주선은 어떤 방식으로 비행하는가?” “‘마음(MIND)’으로 통제한다. ‘생각 명령’에 반응한다.” ..  (53, 54, 56, 57쪽)



  새마을운동을 앞세운 지난 독재정권은 군대힘을 곁들여 사람들 입과 귀와 눈과 코를 모조리 틀어막았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석면 지붕 철거’를 중앙정부에서 돈을 뒷받침해서 맡아 합니다. ‘석면 지붕’이 얼마나 나쁜 줄 이제서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석면 지붕 철거’를 해 준다고 하면서도 시골에 있는 늙은 할매와 할배한테 ‘석면’이라는 낱말은 안 쓰고 ‘슬레트’나 ‘함석’이라는 낱말만 쓸 뿐이며, 왜 이러한 지붕을 철거하는지 안 밝힙니다. 그리고, 지난날 새마을운동을 벌이면서 왜 이러한 지붕으로 바꾸라고 닦달하면서 괴롭혔는지 뉘우치지 않습니다. 죽은 독재자도 산 독재자도 이를 또렷이 밝히거나 뉘우친 일이 없습니다. 아주 ‘조용히’ 석면 지붕을 없앨 뿐입니다.


  그런데, 석면 지붕을 없앤다 하더라도, 이 지붕을 어떻게 없애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땅에 파묻는지 중국에 내다 파는지, 바다에 버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모든 일은 ‘조용히’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비닐쓰레기를 마을에서 태우지 말도록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때문에 길든 시골사람은 집집마다 따로 비닐을 태웁니다. 논둑이나 밭둑에서 비닐을 태웁니다. 군청에서 비닐쓰레기를 커다란 짐차에 가득 실어 가져가기도 하는데, 비닐쓰레기를 가져가서 어떻게 하는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 소각장에서 태우거나 쓰레기매립장에 파묻겠지요. 한국에서는 이런 일밖에 더 할 줄 모르니까요.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습니다. 한국에는 미국 군대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따릅니다. 베트남에 군대를 보내라 하면 굽신굽신 군대를 보냅니다. 소말리아나 동티모르에 군대를 보내라 하면 넙죽넙죽 군대를 보냅니다.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라 하면 바로바로 군대를 보냅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그렇게 눈길을 받은 《조용한 봄》이라는 책에 깃든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살피지 않습니다.



.. “당신들은 어떤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질서, 힘, 항상 미래, 통제, 성장.” … 외계인은 그들과 소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녀를 두려워하거나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그녀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한테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너무 배우고 싶었고, 그건 나를 설레게 했습니다 … 마침내 나는 외계인은 외관이 아니라 말하자면 ‘성격’에 의해 식별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당신이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면 왜 자신을 여성적으로 언급하는가?” “나는 창조주다, 어머니/근원이다.” … “다른 사람은 안 된다, 배워야 한다/알아야 한다/이해한다.” ..  (60, 66, 72, 75, 80쪽)



  생각해 보면, 《조용한 봄》이라는 책이 나오지 못하게 막으려 했던 미국 농약 회사와 재벌과 다국적기업과 중앙정부입니다. 그러니, 한국 중앙정부도 《조용한 봄》 같은 책이 널리 읽히기를 안 바라리라 느낍니다. 이런 책이 읽히더라도 ‘도시에 있는 지식인이 교양도서로 읽어서 지식으로 머릿속에 가두도록 이끌’ 뿐이리라 느낍니다.


  《조용한 봄》 같은 책을 읽고 나서, 파리약이나 모기약을 버리는 도시사람이나 지식인은 얼마나 될까요. 이런 책을 읽은 뒤, ‘농약을 쓴 먹을거리’는 안 사서 먹겠다고 외치는 도시사람이나 지식인은 얼마나 될까요. 이런 책을 읽고 나서, ‘조용한 시골’로 삶자리를 옮겨,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과 농기계가 아닌 내 손과 몸으로 흙을 살찌우고 숲을 가꾸면서 삶을 짓겠다고 씩씩하게 웃고 노래하는 도시사람이나 지식인은 몇이나 될까요.


  책은 광이 아닙니다. 책은 헛간이나 창고가 아닙니다. 책은 몸을 움직이도록 이끄는 힘입니다. 책은 우리 마음이 몸을 슬기롭게 움직이도록 기운을 북돋아 주는 길동무입니다.



.. 200년 전 미 합중국 헌법 제정자들이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이래 우리는 많은 영어 표현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 “에어럴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돈키호테》 《천일야화》라고 말하더군요.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쓴 작가들은 위대한 기술이나 권력보다 위대한 영혼과 상상력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 “나는 질문에 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내 임무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는 인류를 구성하고 있는 불멸의 영적 존재들의 안위에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당신에게 제공할 것이고, 그것은 지구 환경과 모든 무수한 생명체의 생존을 도와줄 것입니다. 모든 지각 있는 존재는 불멸의 영적 존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  (86, 97쪽)



  나는 시골에 살면서 늘 귀를 기울입니다. 내가 어떤 소리를 듣는지 귀를 기울입니다. 하루 내내 여러 가지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소리란 무엇일까요. 주파수일까요, 파동일까요. 또는 노래일까요, 가락일까요. 또는 이야기일까요, 빛일까요. 또는 삶일까요, 사랑일까요. 또는 아무것도 아닐까요. 또는 모든 것일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피면, 어느 시골을 가든 농약바람이 드세게 붑니다. 농약을 안 치는 시골을 찾아보려면 손가락을 꼽아야 합니다. 도시사람은 거의 모르고, 지식인은 아예 모릅니다. 시골마을에 보금자리를 두면서 지내는 도시사람이 없으니, 또 시골마을에 삶자리를 가꾸면서 대학교수를 하든 작가를 하든 기자를 하든 전문직을 하든, 이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들 모릅니다.


  겉으로 보기에 시골은 아주 평화로운 듯 여길 만합니다. 가을을 앞둔 팔월 끝자락 시골 들판을 보면 벼이삭이 알알이 맺히면서 볏포기가 살몃살몃 고개를 숙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시골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쥐가 죽은듯이 조용합니다.


  오늘날 한국 시골에는 개구리 노랫소리가 없습니다. 요즈음 한국 시골에는 풀벌레 노래잔치가 없습니다.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거의 몽땅 자취를 감추었을 뿐입니다. 농약바람을 안 맞은 곳에서 개구리 몇 마리와 풀벌레 몇 마리가 가까스로 살아남습니다. 농약바람을 맞았어도 씩씩하게 살아남는 녀석들이 더러 있습니다.


  농약이 훑고 지나간 들에는 새조차 없습니다. 참새도 왜가리도 제비도 없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제비 구경조차 아주 어렵습니다. 봄에 기껏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국에 왔어도, 봄을 지나 여름을 거쳐 가을 문턱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농약바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 일이 몹시 어렵습니다. 온 시골이 농약바람이니, 제비가 잡아먹을 벌레가 죄 사라집니다. 제비는 굶어서 죽거나 자동차에 치여서 죽거나 농약을 마시고 죽어야 합니다.



.. “역사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앞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시간은 공간에 있는 사물들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임의의 수단일 뿐입니다. 공간은 선형적인 것이 아닙니다. 공간은 사물을 볼 때의 이즈비의 관점에 의해 결정됩니다 … 에이럴은 이즈비들이 우주의 시작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들을 ‘불멸의 존재’라고 부르는 이유는 ‘영(spirit)’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죽을 수도 없지만 ‘무엇이고/무엇인가 될(is-will be)’ 것이라는 하나의 개인적으로 인식된 지각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사실상 물질은 퇴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파괴되지 않습니다. 물질은 형태를 바꿀 수는 있지만 절대로 파괴되지 않습니다 … 모든 형태와 실체는 결코 퇴화하지 않는 동일한 기본 물질로 이루어집니다 ..  (107, 108, 111쪽)



  새마을운동은 시골을 무너뜨리는 짓을 하면서, 이와 함께 도시를 일그러뜨리는 짓을 합니다. 시골은 시골대로 바보스러우면서 우악스러운 굴레에 갇히도록 내모는 새마을운동입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서로 다투고 짓밟으면서 돈에 사로잡힌 노예가 되도록 내모는 새마을운동입니다. 시골을 떠난 사람이 죄 도시로 갔으니, 도시에는 사람이 넘칩니다. 부속품이 되어 회사나 공장을 움직일 일꾼이 넘칩니다. 이러다 보니, 도시로 몰린 사람들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습니다. 실업자가 넘치고 비정규직이 그득하니까, 서로서로 이웃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두레나 품앗이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남을 밟고 올라서는 솜씨’를 갖추도록 학원과 학교에 집어넣어 들볶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사랑이나 꿈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숫자와 점수와 돈만 말합니다.


  아이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버이가 드뭅니다. 돈이나 권력을 써서 군대에서 빼내는 바보들 말고, 군대를 없애 이 나라에 평화가 찾아오도록 애쓰는 어버이가 드물다는 뜻입니다. 군대가 있으면 무엇을 할까요? 전쟁훈련을 하지요. 전쟁훈련을 하면 무엇을 할까요? 전쟁을 합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에요.


  오늘날 학교는 무엇을 하나요? 시험공부를 합니다. 시험공부를 하면 무엇을 할까요? 입시지옥에 스스로 갇히지요.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


  평화를 가꾸지 않는 나라이니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삶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이니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평화를 가꾸려면 군대와 경찰이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평화를 가꾸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이들이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평화를 가꾸려면 시장이나 군수 같은 이들도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이런 자리는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우리가 스스로 평화롭게 지낸다고 하면, 군대나 경찰이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자리가 있을 까닭이 있을까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두레와 품앗이를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삶을 가꾼다고 하면, 대학입시가 있을 까닭이 있을까요?



.. 삭제하는 기억은 한 몸이나 한 생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즈비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거의 무한에 가까운 과거의 축적된 경험 전부를 지우는 것입니다 … 그들은 마음을 잃은 로봇 같은 비존재가 되도록 제압당하는 겁니다 … 구 제국이 아주 오랫동안, 아마 수백만 년 이상 지구를 그들의 ‘감옥 행성’으로 사용해 왔다는 사실 … 각 이즈비는 자신이 지구에 존재할 특별한 목적을 지녔다는 말을 듣긴 하지만 감옥에 있어야 할 목적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 전자 그물망에 걸리면 이즈비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는지 기억해 낼 수 없기 때문에 아예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 개인은 불멸의 영적 존재가 아니라 그저 생물학적 육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강화시키는 데 사제나 간수들을 이용했습니다 … 자신이 한 창조와 자신의 생존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져야 할 의무에 대한 책임을 외부로 돌리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한, 그는 노예입니다 ..  (115, 116, 117, 130, 131쪽)



  로렌스 R. 스펜서 님이 엮고, 유리타 님이 한국말로 옮긴 《외계인 인터뷰》(아이커넥,2013)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외계인 인터뷰》를 한국말로 옮긴 유리타 님은 《람타 화이트 북》과 《람타,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를 한국말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이 책들은 모두 한 갈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이 무엇인가 하고 밝히려 합니다.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 어떤 권력이나 돈을 등에 업고 하는 일이 아니라 언제나 내가 스스로, 삶을 지어서 누릴 수 있는 사랑스러운 길을 밝히려 합니다.



.. 과학적 지식을 ‘기억해 낸’ 사람들은 그들이 지구에 보내지기 전에 이미 그 지식을 알고 있었습니다 … 지구 이즈비들이 지속적으로 서로를 아주 사악하고 부정적으로 상대함에 따라 인간 사회에서 이와 유사한 발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감옥 행성의 목적은 이즈비들을 영원히 지구에 가두기 위한 것입니다 …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이룩한 이러한 문명들은 그 문명들을 창조한 이즈비들이 특정 양식과 스타일에 익숙해지고 또 거기에 정체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 양식과 스타일을 계속 되풀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대부분의 행성은 대기의 화학적 구성이 식물과 다른 유기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그 생명체가 다시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는 지구에서처럼, 생명체를 ‘먹여 살릴’ 대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124, 125, 129쪽)



  우리는 어떻게 하루를 맞이할까요.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마다 어떻게 하루를 맞이할까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맞을까요. 대한민국은 얼마나 평화로운 나라인가요. 대한민국에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평화는 참말 어느 만큼 있다고 할 만할까요.


  이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스스로 삶을 지을 수 있을까요. 이 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친 젊은이는 스스로 삶을 짓거나 사랑을 지을 수 있을까요. 이 나라에서 대학교를 다닌 젊은이는 스스로 삶을 짓거나 사랑을 짓거나 꿈을 지을 수 있을까요.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스스로 하고픈 일을 찾아나서지 못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어마어마한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나 문화권력이나 군사권력이나 경찰권력 따위 때문에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듯이 두 손을 놓는 이 나라 사람들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읽으려고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는지요.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어떻게 길들이면서 어떤 쪽으로 내모는가를 제대로 읽으려고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는지요.



..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존재들은 자신이 이즈비라는 것을 모르고, 그런 영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다 … 덫은 이즈비들의 관심과 주의를 끌기 위해 전자파로 만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지구 이즈비들도 나치와 같은 구 제국의 비열한 증오로 인해 부실한 생물학적 육체 안에서 영원히 영성을 박탈당한 채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난해한 종교의례, 천체의 정렬, 비밀 의식, 거대한 기념탑, 놀라운 건축양식, 예술적으로 그려진 상형문자, 인간-동물 ‘신들’은 지구의 이즈비 감옥 인구가 풀 수 없는 비밀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비밀은 이즈비가 생포되어 기억 삭제 요법을 받고 그들 고향으로부터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지 못하도록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  (135, 136, 139, 151쪽)



  하느님은 예배당이나 성경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종교로 찾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 돕지 않는다면 나를 도울 사람은 없습니다. 언제나 한 걸음씩 길을 걷습니다. 내가 걷는 길은 내가 걸을 뿐, 다른 사람이 걸어 주지 않습니다. 더 빨리 걷는 길이나 더 느리게 걷는 길은 없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삶을 걸어갈 뿐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어떤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사랑이란 무엇이고, 꿈이란 무엇일까요. 돈이란 무엇이고, 집과 옷과 밥이란 무엇일까요.


  학교라는 것이 아예 없던 지난날에는, 어느 누구도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학교라는 곳이 아예 없던 지난날에는, 어느 누구나 스스로 집을 짓고 옷을 지으며 밥을 지으며 스스로 살림을 꾸렸습니다. 학교도 책도 없던 지난날에는, 사람들이 글 한 줄 몰랐으나, 모두 풀을 알고 벌레를 알며 하늘을 알고 물과 비와 바람을 다 알았습니다.


  학교와 책이 넘치는 오늘날에는 풀을 아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전문 학자도 풀을 제대로 모릅니다. ‘풀 박사’라 하는 사람조차 모르는 풀이 많습니다. 전문가 가운데 사슴 한 마리나 토끼 한 마리보다 풀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학교랑 책이랑 인터넷이랑 아무것도 없던 옛날에는 누구나 풀을 잘 알았고, 흙이나 물이나 바람이나 해나 바람이나 별을 모두 잘 알았어요. 다만, 임금님이라든지 지식인이나 권력자 자리에 있던 이들은 아무것도 몰랐지요.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날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아이들한테 삶을 물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른’이 되어 ‘아이’한테 물려준 삶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람’으로 살며 ‘사람인 아이’한테 이어준 사랑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 구 제국 정보원들은 국제적인 금융업자로서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은행들은 민간 선동가로서 은밀히 국가 간의 전쟁을 조장하고 전쟁 자금을 유통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전쟁은 수감자들 전체가 통제 가능한 일종의 내부 체제입니다. 이런 국제적 금융 업자들의 자금으로 발생되는 무자비한 대량 학살과 살육의 목적은 지구 이즈비들이 열린 소통으로 서로 나누고 협조하여 함께 번창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지구 감옥을 탈출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 지구 생명체에 관한 현재의 ‘진화’ 이론은 생물학적 종이 이렇게나 다종다양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연 도태에 의한 진화는 공상과학 소설입니다 … 그 이전에 제작된 어떤 생명체도 외부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동물들은 햇빛, 무기질, 식물성 물질만을 소비했지 음식으로 다른 동물을 먹는 일은 없었습니다 ..  (178∼179, 192, 195쪽)



  뭔가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은 가끔 툭 한 마디를 할 줄은 ‘압’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사람들은 ‘뇌’를 코딱지만큼만 쓴다는 대목을 압니다. 어쩌면, 코딱지만큼조차 안 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렇게 학교를 다니고 외국에도 배우러 다녀와도, 뇌를 고작 코딱지만큼 쓸 뿐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정작 뇌를 코딱지만큼 쓰기도 벅찹니다.


  아침마다 끔찍하거나 따분한 쳇바퀴 직업을 지키느라 지치는 요즈음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도시에 있더라도 도시를 아름다운 삶자리로 바꾸지 못하는 요즈음 사람들입니다.


  군대에서 사람을 때려죽이는 짓은 늘 일어납니다. 언론에 나오는 기사는 아주 조금밖에 안 됩니다. 얼마 앞서 한 사람이 맞아죽었다고 하는데, 군검찰이 하는 말을 들으면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맞아서 죽은 사람더러, 또 때리는 짓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더러, ‘왜 진작에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군검찰입니다. 처음부터 ‘신고 얼거리’가 제대로 잡힌 군대라면, 어처구니없이 얻어맞았을 적에 신고를 했을 텐데, 처음부터 ‘신고 얼거리’뿐 아니라 ‘삶 얼거리’가 올바로 선 군대라면, 누가 누구를 때리는 짓부터 생길 수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때리는 곳은 아무것도 바로서지 않은 곳입니다. 죽도록 늘 얻어맞는 아이가 신고를 해 본들 누가 들어 줄까요? 외려 더 얻어맞습니다. 게다가, 신고를 해 보았자 ‘네가 맞을 짓을 했으니 맞지. 더 맞아.’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군대 얼거리입니다.


  경상도 밀양에서 송전탑을 놓고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고압 송전탑이 얼마나 나쁜가 하는 자료는 진작에 다 알려졌습니다만, 이를 챙겨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고, 중앙정부와 한국전력이 하는 일은 ‘공사가 늦어져서 피해를 보는 돈이 얼마나 큰가’ 같은 거짓말을 언론에 퍼뜨리는 짓하고, 수많은 경찰과 전경(군대)을 끌어들여서 늙은 할매와 할배를 집어던지는 짓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데, 경찰과 군대를 들여 시골 할매를 집어던지는 짓을 여러 해 동안 하는 데에 들인 돈이라면, 이 돈으로 특고압 송전탑 말썽을 다 풀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아요. 슬기로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그리고, 슬기로운 일을 하지 않는 중앙정부 얼거리를 못 읽거나 안 읽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발전소는 그냥 지어야 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고, 송전탑도 그냥 박아야 하는 줄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회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길들여 놓은 대로 언론이 외치는 대로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 도메인 지배층은 살을 가진 몸을 입지 않는데, 그 이유는 ‘성의 탐미적 고통’의 전자 파동은 이즈비를 쇠약하게 만들고 중독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 그들이 자신들이 아는 모든 것을 잊게 만든 기억 삭제 요법을 받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이 영원히 배우고 연구했다면 또 어땠을까요 … 모든 것은 우주 공간에서 무게도 크기도 위치도 없는 생각, 즉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 지구가 과학기술에 의해 파멸되지 않을 것을 보장하기 위해 풀어야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이고 인도주의적 문제들입니다 … 모든 창조와 생명을 타오르게 하는 영적 불꽃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거나 누락시키는 수준에 머무는 한, 모든 과학은 여전히 무력하고 파괴적인 채로 남게 될 것입니다 … 과학자들은 관찰하는 척하지만, 그들은 보는 것만 보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  (197, 206, 208, 209쪽)



  새마을운동은 요즈음에도 시골에서 농약과 비닐과 농기계와 화학비료를 듬뿍듬뿍 쓰도록 내몹니다. 시골에서 기껏 ‘유기질(화학비료가 아닌 유기비료)’을 중앙정부에서 돈을 들여 싼값에 판다고 하더라도, ‘유기질’은 소똥과 돼지똥으로 만듭니다. 유기질을 만드는 소똥과 돼지똥은 화학사료를 먹은 소와 돼지가 누는 똥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화학비료로 만드나, 화학사료를 먹은 소와 돼지가 누는 똥으로 유기질을 만드나, 성분은 똑같습니다. 모양새와 이름만 다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나라에는 ‘유기농이 없다’는 뜻입니다. 도시에 있는 사람을 먹여살릴 만큼 ‘유기농업’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새마을운동이 불러들인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는 시멘트입니다. 이제 시골에서 맨흙을 밟을 만한 땅은 아주 드뭅니다. 외지고 깊은 숲길조차 시멘트를 붓습니다. 4대강사업을 빌미로 삼아, 아주 외지고 조용한 멧골짝까지 삽차로 파내어 냇바닥과 골짜기를 시멘트로 바꾸는 짓을 일삼습니다.


  석면은 이제 나쁜 줄 안다지만, 시멘트는 얼마나 나쁜 줄 깨닫지 않으려 합니다. 석유를 태우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나쁜 줄 알아서 ‘매연 적게 나는 휘발유’를 만든다고도 하지만, 매연이 적게 난다 한들 안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석유로 굴러가는 자동차만 끝없이 만듭니다. 집을 덥힐 적에도 석유를 쓰도록 억지스럽게 내몹니다. 장작을 태워 집을 덥히거나 밥을 끓일 수 있는 시골집은 거의 안 남았습니다.


  삶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삶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읽을 수 있겠습니까. 정치와 경제와 사회, 여기에 문화와 문학과 과학과 종교와 철학 따위가 삶을 얼마나 짓누르거나 해코지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 과학은 물질의 종교입니다. 과학은 물질을 숭배합니다. 과학의 패러다임에서는 창조된 것이 전부이고 창조주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종교는 창조주가 전부이고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요. 이 두 극단은 바로 감옥의 쇠창살입니다 … 구 제국 감옥 시스템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든 당신이 당신 자신의 혼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 지구와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들의 생존은 당신이 자신의 본질을 되찾고 무한의 세월 속에서 획득한 기술을 다시 기억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 당신이 어떤 것이든 상상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인지하고 마음대로 그것이 일어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리고 모든 게임의 결과를 항상 알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지루하지 않을까요 ..  (210, 211, 221쪽)



  《외계인 인터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어렵다고 여긴다면 가없이 어렵겠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를 굴레에 가두어 스스로를 노예로 바꾸면서 스스로를 바보스레 내모는 줄 느끼지 못할 때에는, 《외계인 인터뷰》가 다루는 이야기를 하나도 못 받아들이거나 조금도 못 알아들을밖에 없습니다.


  다국적기업이 아주 뛰어나기에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바보이기 때문에 속습니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문학과 과학과 철학과 종교 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매우 뛰어나기에 우리를 짓밟거나 괴롭히거나 속이거나 길들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노예나 부속품이 되려고 쳇바퀴를 돌기 때문에 바보스러운 삶을 되풀이하고야 맙니다.


  바라보아야 합니다.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몸을 바라보고, 내 몸을 움직이는 마음을 다스리는 내 넋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넋이 깃든 얼을 바라보고, 내 넋이 나아갈 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평화를 바라보는 사람만 평화로 나아갑니다. 사랑을 바라보는 사람만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전쟁을 바라보기에 자꾸 전쟁으로 갑니다. 차별과 불평등과 따돌림을 바라보니까 자꾸 차별과 불평등과 따돌림으로 갑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 꽃이 됩니다. 숲을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 숲이 됩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사람은 권력이 될까요? 네, 권력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을 뜨지 못한 노예나 부속품과 같기 때문에, 나보다 여린 이웃을 괴롭히는 권력이 되거나, 나와 함께 있는 동무를 짓밟는 바보스러운 권력이 됩니다.



..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세력에 대항해 우리 자신을 방어할 수는 없습니다 …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인간의 형체를 넘어서서 일어나야 합니다 … 감옥 관리자들은 지구 이즈비들의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활동들을 언제나 조장하고 선동할 것입니다. 그러니 수감자들끼리 싸우지 않게 할 이유가 있습니까 … 수감자들이 그들 스스로 감옥을 나갈 방법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 부처님의 실용적인 가르침과 방법은 사람들을 노예화하고 통제하여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사제들에 의해 기계적인 종교 의례들로 왜곡되어 버렸습니다 ..  (228, 231, 233, 265쪽)



  바라보았으면 느껴야지요. 바라보아 느꼈으면 생각해야지요. 무엇을 생각할까요? 내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걸어갈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걸어갈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삶을 사랑스레 가꾸어 날마다 새롭게 깨어나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숨결을 생각해야 합니다.


  뇌를 코딱지만큼만 쓰는 까닭은 스스로 뇌를 쓸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뇌를 활짝 열어서 쓰는 사람이 있다면, 이녁 스스로 뇌를 활짝 열어서 쓰려고 마음을 품은 뒤 꾸준히 마음을 기울이고 또 기울여서 뇌를 활짝 여는 길을 스스로 찾았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사진장비를 갖추었기에 아름답구나 싶은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장비는 값비싸더라도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구나 싶은 사진을 못 찍습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1만 원짜리 1회용사진기로도 아름답구나 싶은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값싼 사진기로든 값비싼 사진기로든 스스로 찍고 싶은 사진을 찍습니다. 이와 달리, 마음이 없는 사람은 값싼 사진기를 손에 쥐면 아예 사진 찍을 생각을 못 하고 맙니다.


  오늘날 시골은 참으로 조용합니다. 군사독재정권이 ‘지은’ 새마을운운동이 무서운 농약바람을 ‘지어’서 모든 소리를 잠재웠기 때문입니다. 다만, 죽지는 않았습니다. 잠들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아이들 울음소리나 웃음소리나 노랫소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농약을 뿌리는 기곗소리에다가 농기계가 움직이는 시끄러운 소리만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농약과 기계와 비닐과 항생제와 화학비료와 시멘트가 사라질 때에, 비로소 다시 시골에 아이들 소리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오늘날에는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아이들 소리가 없습니다. 도시는 아파트와 학교와 학원과 자가용과 아스팔트와 돈 때문에 아이들 소리가 없습니다. 거의 모든 시골 아이들을 빼앗은 도시인데, 막상 그 많은 사람이 몰렸어도 도시조차 무척 조용해요. 사람다운 소리가 없기 때문에 도시는 조용합니다. 시골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조용합니다.


  지구별에 사랑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외계인 인터뷰》를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나 스스로 사랑으로 거듭나기를 꿈꾸면서 《외계인 인터뷰》를 새롭게 다시 읽습니다. 이 책은 ‘지식책’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 한 가지를 더 머릿속에 넣으려 할 마음이라면 굳이 손에 들지 않아도 됩니다. 이 책은 ‘이야기책’이니, 이야기를 가만히 귀여겨들으면서 스스로 삶을 새롭게 짓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 비로소 손에 들 수 있기를 빕니다.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깨어나서 사랑스레 삶을 짓는 이웃들이 차츰 늘어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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