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65) 아래 1


이젠 물어야 한다. 이른바 ‘민족’의 이름 하에 덮어 둔 한국 대중문화 ‘업자’들의 ‘무능’과 ‘배신’에 대해 물어야 한다

《김규항-B급 좌파》(야간비행,2001) 38쪽


 민족의 이름 하에

→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 겨레라는 이름에

→ 겨레라는 허울을 씌워

→ 겨레라는 허울로

 …



  “(무엇) 하의 (무엇)”이라는 말투를 쓰는 이들이 차츰 늘어납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썼으나, 여럿으로 늘고, 더 늘더니, 이제는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민족의 이름 하에 (x)

 민족의 이름 아래 (x)

 민족의 이름 밑에 (x)


  한자 ‘下’를 그대로 쓰거나 한글로 ‘하’로 바꾸어서 쓰는 말투는 가장 고리타분합니다. 일본사람이 일본말에 아주 즐겨쓰는 말투입니다. 이런 말투는 일제강점기에 거의 쏟아지듯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일제강점기 지식인과 작가는 이러한 일본 말투를 생각없이 썼고, 퍼뜨렸으며, 가르치거나 읽혔습니다. 해방 뒤에도 이러한 일본 말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투를 올바로 깨달은 지식인과 작가가 드물었습니다. 신문에는 으레 이러한 말투가 쓰였고, 교과서와 여느 문학책에까지 이러한 말투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말투가 아주 익숙하다 할 만합니다. 그래서, 뜻있다 싶은 지식인과 작가도 이러한 일본 말투를 스스로 씻지 못합니다.


  잘못되거나 그릇된 말투를 쓰는 사람 하나하나가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본 말투를 쓰는 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러한 말투대로 말을 듣고 책을 읽었어요. 이들이 어른이 되는 동안 한국말을 올바로 알려주거나 가르친 이웃이나 둘레 어른이 없었어요.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니 배울 길이 없고, 한국말을 올바로 다룬 책도 드문 탓에 어른이 된 뒤에라도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돌아보면서 새롭게 배울 길마저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한자 ‘下’를 찾아보면 뒷가지로 다루어 줍니다. 한국말이 아닌 한자인데 한국말사전에 이 낱말이 올림말로 나옵니다. 보기글로 “식민지하”와 “원칙하”와 “지도하”와 “지배하”가 나옵니다. 이런 보기글은 “식민지에서”와 “원칙에서”와 “지도에서”나 “지배에서”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뒤 흐름과 자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고쳐써야 합니다. 한국말사전부터 바로잡고, 우리들도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익힐 노릇입니다. 4336.12.30.불/4347.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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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물어야 한다. 이른바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둔 ‘무능’과 ‘배신’을 한국 대중문화 ‘업자’한테 물어야 한다


‘민족(民族)’이나 ‘무능(無能)’이나 ‘배신(背信)’ 같은 낱말은 ‘겨레’나 ‘재주 없음’이나 ‘등돌림·저버림’으로 손볼 만하지만, 보기글에서는 애써 따옴표를 쳐서 이야기를 하는 만큼, 손보지 않고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 “-에 대(對)해”는 “-을/를”로 손봅니다.



 -하(下) :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것과 관련된 조건이나 환경’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식민지하 / 원칙하 / 지도하 / 지배하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90) 아래 2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자유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자유가 억제되고 있습니다

《아룬다티 로이/정병선 옮김-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가이드》(시울,2005) 24쪽


 자유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 자유를 지킨다는 구실로

→ 자유를 지킨다는 허울로

→ 자유를 지킨다는 핑계로

→ 자유를 지킨다고 내걸며

→ 자유를 지킨다는 그럴듯한 말로

 …



  한자말 ‘미명(美名)’은 “그럴듯하게 내세운 이름”을 가리킵니다. 이 한자말과 한자 ‘下’가 만납니다. 이 보기글을 잘못 바로잡으면 “그럴듯한 이름 아래”로 손볼 텐데, ‘下’를 ‘아래’로 손본다고 해서 이 보기글이 바르게 서지 않습니다. 말투가 한국 말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듯한 이름으로 자유가 억눌립니다”로 손본 뒤, “그럴듯한 구실로”라든지 “그럴듯하게 붙인 핑계로”라든지 “그럴듯하게 씌운 허울로”처럼 뜻과 느낌을 살리면서 한국 말투다운 모습이 되도록 더 손봅니다.


  “a cup of coffe”를 “한 잔의 커피”로 적는다고 해서 한국 말투가 되지 않습니다. “한 잔의 커피”가 아닌 “커피 한 잔”일 때에 비로소 한국말이요 한국 말투입니다. 껍데기만 한글인 말이 아니라, 알맹이가 알뜰히 한국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에서 참다운 속내·속살·줄거리를 슬기롭게 읽으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길을 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9.1.22.해/4347.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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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온 나라에 두루, 자유를 지킨다는 구실로 자유가 억눌립니다


“전(全) 세계적(世界的)으로”는 “온 세계에”나 “온누리에”나 “온 나라에”나 “지구별에 두루”로 손봅니다. ‘보호(保護)한다’는 ‘지킨다’나 ‘돌본다’로 손질하고, ‘미명(美名)’은 ‘허울’이나 ‘핑계’나 ‘구실’로 손질하며, “억제(抑制)되고 있습니다”는 “억눌립니다”나 “짓눌립니다”나 “짓밟힙니다”로 손질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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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804) 아래 11 : 개발독재 아래


우리 나라는 그동안의 개발독재 아래 문화가 온통 정치·경제 논리에 종속되었다

《최원식-황해에 부는 바람》(다인아트,2000) 112쪽


 개발독재 아래

→ 개발독재 때문에

→ 개발독재에 짓눌리며

→ 개발독재에 시달리며

 …



  개발독재가 문화를 정치나 경제에 얽매이게 했다는 이야기이니, “개발독재 때문에” 그리 된 셈입니다. 무엇 때문에 어느 한 가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면 ‘이끌린다’거나 ‘끄달린다’고 나타낼 수 있어요. 이 자리에서는 ‘독재’를 말합니다. 독재는 남을 업신여기거나 괴롭혀요. 이리하여 ‘짓눌리다·짓밟히다·시달리다·들볶이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1.2.24.해/4347.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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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그동안 개발독재 때문에 문화가 온통 정치·경제에 끌려다녔다


‘그동안의’에서는 토씨 ‘-의’를 덜어냅니다. ‘종속(從屬)되었다’는 ‘얽매였다’나 ‘끄달렸다’나 ‘끌려다녔다’로 고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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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86) 아래 12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여러 정보기관들이 교내에 상주하다시피 해서 교수휴게실의 담화도 자유스럽지 못했다

《강만길-역사가의 시간》(창비,2010) 186쪽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 박정희 정권에서는

→ 박정희 정권 때에는

→ 박정희가 다스릴 때에는

 …



  “정권 下”이든 “정권 하”이든 “정권 아래”이든 모두 똑같은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한국말 ‘아래’를 이렇게 쓰지는 않습니다. “정권에서는”으로 적거나 “정권 때에는”으로 적거나 “다스릴 때에는”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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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에서는 여러 정보기관들이 학교에 늘 머물다시피 해서 교수쉼터에서도 홀가분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교내(校內)에 상주(常住)하다시피”는 “학교에 늘 머물다시피”나 “학교에 눌러앉다시피”로 손보고, “교수휴게실(-休憩室)의 담화(談話)도 자유(自由)스럽지”는 “교수쉼터에서도 홀가분하게 얘기하지”나 “교수쉼터에서조차 마음껏 말하지”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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