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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 7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3
우리 마을을 지키는 힘
― 우리 마을 이야기 7
오제 아키라 글·그림
이기진 옮김
길찾기 펴냄, 2012.5.31.
얼핏 잠이 들려고 하다가 찍찍 하고 제법 크게 우짖는 새소리를 듣고 번쩍 눈을 뜹니다. 아, 새로구나, 새가 한 마리 나무에 앉아서 놀다가 가는구나. 이 새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나무에 앉았을까요. 이 새는 어떤 먹이를 찾아 우리 집 둘레 나무에 앉았을까요.
나무 한 그루는 천천히 자랍니다. 새가 앉았다가 가는 나무 한 그루는 천천히 자랍니다. 새 한 마리가 앉을 만한 나무라 한다면, 새 한 마리가 어른으로 큰 뒤 새끼를 낳아 새로서는 기나긴 삶을 모두 누리고 흙으로 돌아갈 만한 나날을 살았지 싶어요. 새 한 마리는 나무 한 그루가 갓 싹이 돋고 줄기가 오를 즈음부터 지켜보았을 테고, 흙을 돌아갈 무렵 나무 한 그루가 우람히 자란 모습을 보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을는지 모릅니다.
새는 나무를 바라보며, 이만큼 잘 컸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나무는 새를 바라보며, 네 새끼들이 내 가지에 앉아서 쉬겠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우람하게 선 나무에 처음으로 새가 찾아와서 내려앉을 때부터 새와 나무 사이에 이야기 하나 태어납니다.
- 정부는 강제수용이라는 공권력을 들이밀었지만, 땅굴로 기어들어 가고 요새의 울타리에 쇠사슬로 몸을 묶어서 저항하는 반대동맹 사람들에게 그 어떤 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공단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듯이 우왕좌왕 요새 주변의 나무들을 베어 가져가거나 경호원들이 소년행동대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했고, 이른 아침에 출동한 불도저 앞에서 농성 하던 학생들을 기동대가 급습해 200명 넘는 부상자와 14명의 체포자를 내기도 했다. (5∼6쪽)
- “실컷 상대방을 두들겨패 놓고 이제 와서 뭔 놈의 대화여. 우리 농사꾼들이 그렇게 물렁하지는 않다 이거여.” “자자, 그래도 이삼 일은 애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잖여. 밭일도 어느 정도 돌보고 요새도 보강하자구.” (10쪽)
나무가 있는 곳에서 사람이 살아갑니다. 나무가 없는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갈는지 모릅니다만, 사람은 으레 나무가 있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가꾸려 합니다. 섬에서든 뭍에서든, 이 나라에서든 저 나라에서든, 나무가 있을 때에 비로소 집이 섭니다. 그리고, 집이 한 채 선 뒤에 다른 집이 두 채 석 채 찬찬히 섭니다. 다른 집이 하나둘 새롭게 서면 어느새 마을이 섭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마을입니다. 한집 사람으로 지내는 마을입니다. 한마음이 되고 한몸이 되는 마을입니다. 기쁠 때에 함께 웃는 마을입니다. 슬플 때에 함께 우는 마을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즐거운 마을입니다. 같이 도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을입니다.
이곳에 마을 하나가 서듯이 저곳에 마을 하나가 섭니다. 곳곳에 마을이 섭니다. 마을은 서로 가까운 자리에 서기도 하지만, 꽤 떨어진 자리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마을은 없기 때문에,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다만, 말이 아주 다르지는 않아요. 웬만큼 다릅니다. 이럭저럭 다르지요. 마을과 마을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스스로 제 마을에서 쓰는 말로 이야기를 해요.
내 마을에서 쓰는 말이기에 더 낫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이웃에서 지내는 마을더러 우리 마을에서 쓰는 말로 바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웃에 있는 마을도 우리 마을더러 우리 마을 말을 버리고는 저희 마을 말을 쓰라 할 수 없습니다. 다 다른 마을은 저마다 다른 마을빛을 건사하면서 마을살이를 이룹니다. 다 다른 마을은 서로서로 아름답게 살림을 꾸립니다.
- “선생님! 그렇게 걱정이라면 같이 싸워 주세요!” “요새에 들어가서 함께 싸워요! 다칠 염려는 없어요. 우리가 지켜 줄 테니까!” 30분도 안 돼서 선생들은 도망치듯 돌아갔다. 주위에서 비웃음이 일었다. 선생들은 말로만 우리를 이해하고 동정했을 뿐, 결국 우리를 저버렸다. 아니, 우리가 선생들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12∼13쪽)
- “와타세 군. 그런 거 없어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네. 젊은이들은 생각이 너무 과격해서 탈이란 말여.” “하지만 구와타 아저씨. 불도저로부터 어떻게 요새를 지킨단 말이에요?” “이 싸움은 무저항의 저항으로 간다. 그것이 동맹의 기본 방침이여. 놈들은 지금까지 요새 근처에도 못 왔어. 화염병 같은 걸 던져 봐라. 놈들한테 얼씨구나 공격의 구실을 주는 겨.” “구실이 있든 없든 곧 공격해 올 거란 건 불을 보듯 뻔해요. 그때 허둥대 봤자 이미 늦습니다.” “화염병이 날아다니게 되면 그건 진짜 전쟁이여. 우린 마지막까지 농민다운 싸움을 한다.” (16∼17쪽)
집이 있고 마을이 있은 뒤에 고을이 있습니다. 비슷한 마을이 곳곳에 모여 고을을 이룹니다. 고을로 아우르는 마을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어깨를 겯을 만큼 살갑거나 가까운 삶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터에 맞추어 저마다 다르게 삶을 가꿉니다.
고을이 있으면, 고을을 지나 고장이 있습니다. 고장과 고장은 사뭇 다르다고 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경상도와 강원도는 사뭇 다르고, 충청도와 전라도는 사뭇 다릅니다. 꽤 높다란 멧줄기가 고장과 고장을 가릅니다. 퍽 깊고 넓은 냇물이 고장과 고장을 갈라요.
우리 마을과 우리 고을로도 넉넉하면서 즐겁기에 굳이 이웃 고장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웃에서도 괜히 우리 고장으로 넘어오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제자리를 지킵니다. 서로서로 제길을 걷습니다.
바다가 너른 고장이라서 숲이 너른 고장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멧골이 깊은 고장이라서 들이 넓은 고장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어느 고장이든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겨울이 더 춥든 여름이 더 덥든, 고장마다 사랑스러운 삶이요 나날입니다. 굳이 여러 고장을 하나로 뭉뚱그려야 하지 않아요.
- “사실, 놈들은 그와 다를 바 없는 거대한 폭력을 앞세워 공항 건설을 추진해 왔다. 그것에 비하면 화염병 정도는 새발의 피지.” “음. 어떤 폭력적인 방법이라도 쓰고 싶을 만큼 열 받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하고 있는 나쁜 짓과 우리들의 폭력을 비교하면 우리 쪽이 훨씬 덜 하다고,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사람을 해치는 일을 정당화하는 것이 말이에요. 뭐랄까,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 같아서, 왠지 버거운 일 같아서.” (19∼20쪽)
- 기동대는 어른들의 머리를 방패로 계속해서 찍어 내리고, 아이들을 움켜쥐고 끄집어 내팽개쳤다. 제2요새는 지옥 그 자체였다. (40쪽)
- “잘 알겄다! 아주 잘 알겄어! 이거이 네놈들의 수법인 게여! 우릴 죽여도 상관없다는 것이여! 네놈들은! 오냐, 그렇다면 이쪽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여! 평생 기억해 주마! 오늘 일은!” (42쪽)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사람은 ‘내 집’에서 모든 삶을 이룹니다. 맨 먼저 밥을 짓습니다. 남한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밥을 지어서 이룹니다. 다음으로 옷을 짓습니다. 남한테서 얻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옷을 지어서 이룹니다. 그리고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지을 적에는 이웃 손길을 받을 수 있으나, 혼자서도 너끈히 집을 짓습니다. 다만, 혼자 집을 지을 때에는 퍽 오래 걸리지요. 그러나,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할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이루는 삶이니, 집을 천천히 지으면서 즐겁습니다. 조금씩 마무리를 짓는 집 모양을 살피면서 기쁩니다.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사람이 ‘내 집’을 이루는 결대로 하나씩 모여 이루는 마을입니다. 그러니, 한 집만 있어도 이 한 집은 스스로 삶을 이룰 뿐 아니라, 스스로 삶을 이루는 집들이 모인 마을이니, 마을은 언제나 스스로 삶을 이루어요.
모자랄 일이 없고 아쉬울 일이 없습니다. 집집마다 오순도순 지냅니다. 집집마다 사랑스러우면서 따사로운 노래가 흐릅니다. 노래가 흐르고 이야기가 태어나는 집이 모인 마을이니, 마을살이란 ‘온누리’라고 할 만합니다. 모든 것을 가장 넉넉하고 즐겁게 이룬 삶이니, 언제나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그러니까, ‘집’이라고 할 적에는, 스스로 모든 삶을 이루는 살림을 가꾼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찬 사람이 제금을 나서 지내는 터가 집이 아닙니다. 아파트 한 채나 다세대주택 한 자리가 집이 아닙니다. 모든 삶을 이룰 수 있는 데가 집입니다. 커다란 장비를 써서 수만이나 수십만 채 집을 똑같이 찍어내듯이 만들어야 집이 아닙니다. 집은 나라에서 지어서 줄 수 없습니다. 집은 장사꾼이 지어서 팔 수 없습니다. 나라가 짓거나 장사꾼이 파는 것은 언제나 ‘부동산’이나 ‘재산’입니다.
-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는 거냐? 아무리 공단이라도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던 게냐. 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라는 게냐.” (46쪽)
- “이놈들아! 사람이 올라가 있는 나무를 베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그러는 게여! 기동대! 네놈들이 그러고도 경찰이여! 어째서 저놈들을 살인죄로 체포하지 않는 거여!” (59쪽)
- 제1차 대집행에 성공한 적들은 앞으로 제2, 제3의 강제수용을 진행시킬 것이다. 거기에 우리 집이 있고 우리 밭이 있고 우리 마을이 있다. 부상자 1400명. 체포자 400명. 이 나라가 우리들의 땅을 빼앗아 간다는 건, 바로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74∼75쪽)
- “저주받을 게여, 반드시. 이 산리즈카를 지옥으로 만들었으니. 아무리, 콘크리트로 땅을 덮어 버린다 해도, 사람의 원한까지 묻어 버릴 수는 없는겨. 우리가 자자손손 이 한을 대물림할 테니께.” (76쪽)
오제 아키라 님이 빚은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일곱째 권을 읽었습니다. 첫째 권부터 일곱째 권까지 천천히 읽었습니다. 일본 산리즈카 시골마을 사람들이 일본 정부가 밀어붙이려 하던 나리타공항 때문에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으며 힘들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슬픔과 고단함이 듬뿍 묻어나는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저 산리즈카 사람들처럼 공권력 때문에 두들겨맞지 않으니, 그럭저럭 지낼 만할까요? 그렇지만, 우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은 군수와 군청 공무원이 포스코와 손을 맞잡고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이태 앞서 이 싸움을 끝냈습니다만, 아직 불씨는 있어요. 게다가 고흥군 군수와 공무원은 다도해 국립공원 바닷가와 맞닿은 숲을 광주시 교육청에 강제수용을 해서 팔았어요. 그러고는 갑작스레 청소년수련원 공사를 밀어붙였지요. 아름드리 숲을 하루아침에 밀어 없앴습니다. 국립공원이던 곳을 조용히 풀더니 하루아침에 강제수용으로 팔았을 뿐 아니라, 숲도 바다도 몽땅 어지럽힙니다. 아름다운 바다라고 해서 해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전남 고흥 발포 바닷가를 찾아왔으나, 이제 아무도 발포 바닷가에 가지 않습니다. 청소년수련원 건물을 와장창 지으면서 숲과 바다를 모조리 어지럽히니, 사람들 발길이 뚝 끊어져요. 다른 고장 사람들뿐 아니라, 고흥사람인 나조차도 아이들하고 발포 바닷가에 안 갑니다. 무시무시한 짐차가 수없이 오가는 길이 안 좋기도 하고, 바닷물이 공사장 때문에 더러워져요. 이런 곳에 갈 까닭은 없습니다.
일본 산리즈카에서 일본 정부가 ‘덜 민주스럽게’ 몰아붙였으면, 나리타공항은 짠하고 금세 태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영종도와 용유도에서처럼 한국 정부가 ‘우악스레 강제수용을 해서 밀어붙’이면, 척하고 공항 하나 쉬 들어섭니다.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얼마나 ‘인천공항 반대’를 외쳤을까요. 예쁜 갯벌을 없애고 예쁜 섬을 밀며 예쁜 소금밭을 망가뜨리면서 공항을 지었을 뿐 아니라, 용유와 영종에 깃든 시골집을 모조리 없애고 아파트로 바꿉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민주’가 있을는지 모르나, 한국에서는 민주가 제대로 힘을 내지 않습니다. 아니,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민주에 눈길을 둘 겨를이 없습니다. 모두들 제 코가 석 자입니다. 사람들은 제 코가 넉 자요 닷 자입니다.
- “농사꾼은 말이여, 마을이 있기 때문에 농사꾼인겨. 농사꾼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겨. 마을사람들이 죄다 조건파가 된 그때 이미 이와야마는 할배가 살아갈 수 없는 땅이 된 겨. 할배는 말이다, 마을이 짓밟힌 거에 대한 분노로 지금까지 버틴 게여. 공단에 땅을 팔건 안 팔건 상관없는 겨. 이미 처음부터 빼앗긴 거였어. 하나부터 열까지 말이여.” (115쪽)
- 11명의 학생들이 올라탄 요새의 철탑이 크레인에 끌려 넘어졌다. 거기에 비축해 두었던 화염병에 불이 붙어 몇 사람이 불길에 휩싸였다. 기동대가 환성을 질렀다. 전장이 광기에 휩싸이고, 전쟁은 끝이 났다. (158쪽)
- 기동대는 우리에게 있어서 마을을 위협하는 냉철한 폭력장치일 뿐이었다. 그들과 부딪히면 반드시 몇 사람인가는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상처입었다. 때문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와 같은 가족이 있다거나 다정하게 아이들과 함께 놀며 즐거운 휴일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은 채 산리즈카에 왔었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163쪽)
경상도 밀양에서 송전탑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보면, 한국에는 민주도 평화도 평등도 없는 모습을 잘 읽을 만합니다. 그런데, 밀양 송전탑에 앞서, ‘핵발전소’가 먼저입니다.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한국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신문·방송은 무엇을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글쟁이와 교사와 교수 같은 이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핵발전소를 처음 지을 적에 학교는 무엇을 했을까요.
모든 언론과 학교는 중앙정부 권력을 등에 업고 ‘핵발전소는 깨끗하고 안전하며 돈이 적게 드는 전기’라고 떠벌였습니다. 가장 비싸며 가장 무시무시하고 가장 끔찍한 전기인 줄 가르친 학교는 없었다고 느낍니다. 핵발전소가 어떤 곳인지 낱낱이 밝히거나 알린 신문이나 방송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커다란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박을 돈이라면, 집집마다 ‘자가 발전’을 하는 시설을 갖추고도 돈이 아주 많이 남습니다. 집집마다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서 쓰도록 시설을 갖추는 데에 들이는 돈은 아주 적습니다. 게다가 쓰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흙도 바람도 물도 더럽히지 않습니다. 공장이나 아파트나 큰 건물에서도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서 쓰도록 하면 됩니다. 못할 일이란 없습니다. 집집마다 만들어서 쓰는 전기가 남으면 이를 모아서 큰 건물이나 공장이나 아파트에 보낼 수 있어요. 이런 장치는 어렵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앙정부는 이런 일을 안 했고 아직도 안 하며 앞으로도 안 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전기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서 쓰면 ‘권력 통제’가 안 되어요. 커다란 발전소를 세워서 중앙정부가 ‘통제’를 해야 사람들을 마구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면 전기만 뚝 끊어도 돼요. 도시에서는 전기와 가스와 물을 뚝 끊으면 아마 도시사람 모두 며칠 만에 모조리 죽을 수 있어요.
- 할머니네 집은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없었다. 비겁한 눈속임으로 치러진 대집행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피붙이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고독한 할머니의 자그마한 논과 집을 국가가 무력으로 뿌리째 뽑아 앗아갔다. 아니, 빼앗긴 것은 그냥 논과 집이 아니다. 그곳은 할머니에게 있어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 작은 생명을 지켜 주는 단 하나의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피곤할 때는 해님에게 인사하고, 빨래해 널고 목욕하고, 술 두 잔 정도 하고 자면……. (176∼177쪽)
- ‘나는 이제 더 이상 싸울 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항을 분쇄할 때까지 온힘을 다해 주세요. 공항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쩌면 결혼을 해서 훌륭한 농사꾼이 되어 있었겠지요. 그러나 나는 심지가 약해서 이 싸움을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네요. 보다 인간답게 살아 보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정말로 국가권력이라는 것은 무섭네요. 살려고 발버둥치는 농사꾼의 생명을 빼앗고 때리고 짓밟으니까요.’ (194∼195쪽)
권력이 싫어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자급자족’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면서 삶을 가꾸는 일을 권력이 아주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을 줄 알면, 권력은 아무 힘을 못 써요.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권력도 힘을 못 씁니다.
사람들이 밥이며 옷이며 집을 ‘회사에서 번 돈을 써서 가게에서 사다 쓰도’록 사회 얼거리를 짜야, 비로소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행정과 과학을 비롯한 모든 권력이 힘을 얻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모시와 삼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지어 입는다면, 옷공장이나 옷회사는 모두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숲을 가꾸어 숲에서 나무를 몇 그루 얻은 뒤 집을 지으면, 건설회사와 자동차회사와 석유회사 모두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제 터를 집숲으로 가꾸어 밥을 손수 지어서 먹으면, 식품회사와 약품회사와 병원과 백화점뿐 아니라 모든 도시 얼거리가 무너집니다.
권력은 도시를 지키려고 사람들한테서 ‘자급자족’이라는 열쇠를 빼앗습니다. 권력은 도시를 키워 사람들을 바보나 노예나 부속품으로 만들려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도시에 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거나 전문직이 되거나 운동선수나 예술가 따위가 되어 돈을 버는 길’을 찾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밥·옷·집을 스스로 짓는 길을 안 가르칩니다.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은 밥이나 옷이나 집에 아이들이 눈길을 못 두도록 가로막습니다.
더 헤아려 본다면, 인문책도 사람들한테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떤 인문책도 사람들한테 밥을 스스로 짓고 옷을 스스로 지으며 집을 스스로 지으라고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떤 인문학자와 철학자와 교육자도 사람들한테 밥·옷·집을 스스로 가꾸어 누리면서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을 뿐더러, 말할 만한 슬기나 깜냥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는 인문책뿐 아니라 이웃나라에서 나오는 인문책도, 그저 지식조각입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조각을 채우도록 이끌 뿐입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지식조각만 가득 채워서 스스로 밥도 모르고 옷도 모르며 집도 모르게 내몹니다. 사람들이 그저 돈을 벌어 돈으로 밥과 옷과 집을 사서 쓰도록 이끌듯이, 모든 인문책은 사람들이 ‘자꾸 새로운 인문책을 사서 새로운 지식조각을 머릿속에 쑤셔넣도’록 살살 꼬드깁니다.
- “거기서는 화학비료도 농약도 쓰지 않고 훌륭한 수확을 거두고 있더라.” “그런 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신기한 게지. 아니, 신기할 것도 아니여. 나도 요 몇 년 논과 밭의 지력이 떨어진 원인이 뭔지 생각하고 있었다. 흙이 점점 모래처럼 되고 작물도 생생함을 잃고 있어. 농약을 써도 안 써도 해충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여. 이러다가 논밭이 못 쓰게 되고 먹고살 수 없게 되면 투쟁이고 뭐고 다 소용 없는 겨 …… 그게 말여, 미생물농법이라던가, 유기농법이라던가, 퇴비 만들기부터 시작하는 손이 많이 가는 농사여. 보람이 있을 겨. 잘 봐둬라, 뎃페이. 내가 모두에게 이 농법을 전파시킬랑께. 산리즈카에서 공항 이상으로 가치 있는 농업을 만드는 거여.” (214∼215쪽)
- 그 후에도 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형들이 긴 재판 끝에 혐의를 벗은 것은 그로부터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였다. 그리고 정부가 무력으로 반대파를 탄압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한 것은 21년 후인 1993년이었다. (226쪽)
우리 마을을 지키는 힘이란, 우리 집을 지키는 힘입니다. 우리 집을 지키는 힘이란 우리 삶을 스스로 지키는 힘입니다. 밥 한 술을 뜰 적에 남이 내 몫을 먹어 주지 못합니다. 내 몫을 남이 먹어서 배가 부르다 하면 그이가 배가 부르지 내가 배부르지 않아요. 옷 한 벌을 입을 적에 남이 내 몫을 입어 주지 못합니다. 내가 내 몸에 옷을 걸쳐야 따뜻합니다. 남이 내 옷을 그이 몸에 걸치면 그이가 따뜻하지, 내가 따뜻하지 않습니다.
마을을 지키려면, 먼저 내가 스스로 내 집을 가꾸는 슬기를 찾아야 합니다. 내가 오롯한 삶을 가꾸는 집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이곳에서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보금자리 하나’로 있을 때에, 내 이웃은 이웃 나름대로 저곳에서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요. 내가 있고 네가 있어서, 서로 이웃이 되어서, 천천히 마을로 거듭납니다.
마을이란 사랑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르면서 모두 새로운 사랑이 있을 적에, 이러한 사랑이 하나로 모여 마을이 됩니다. 마을이란 노래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르면서 언제나 새로운 노래가 흐를 적에, 이러한 노래가 하나로 모여 마을이 됩니다.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는 산리즈카라고 하는 아주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중앙정부 권력에 맞서면서 스스로 ‘집을 지키’고 ‘삶을 가꾸’며 ‘사랑을 노래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리타공항 반대 투쟁기’가 아닙니다. ‘시골에서 삶을 찾고 깨달아 스스로 사랑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입니다. 이 만화책을 읽는 분들이 마음을 따사롭게 덥히는 슬기를 얻을 수 있다면, 《아나스타시아》(블라지미르 메그레 씀) 여덟 권과 《람타 화이트북》(제이지 나이트 씀)을 나란히 읽으면서, 스스로 집숲을 가꾸는 길과 함께 마음길을 닦는 배움터로 찾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스스로 집을 이루어야 스스로 삶을 엽니다. 4347.8.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