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36. 한 조각씩 맞춘다



  1947년에 나온 《조선말 큰 사전》(한글학회 펴냄) 1권을 살피면, ‘꿋꿋하다’를 “세차고 굽힐 수 없이 단단하다”로 풀이합니다. 1999년에 나온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연구원 펴냄) 1권을 살피면, ‘꿋꿋하다’ 말풀이를 세 가지 싣습니다. 맨 처음 뜻에서 “사람 마음이 단단하다”를 가리키는 뜻이 새로 생깁니다.


  생각해 보면, 먼 옛날에도 “나뭇가지가 꿋꿋하다”뿐 아니라 “저 사람은 꿋꿋하다”처럼 썼으리라 생각해요. 낱말책에 이러한 말풀이가 실린 때가 얼마 안 되었을 뿐입니다.


  한국말 ‘꿋꿋하다’는 사람들이 꾸준하게 쓰면서 쓰임새가 늘어납니다. 한국말이든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모두 매한가지예요. 사람들이 꾸준하게 쓰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사진’이라 말하지 않고 자꾸 ‘포토’라는 영어를 쓰면 이 영어가 퍼집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스스로 ‘사진가’나 ‘사진 작가’나 ‘사진쟁이’나 ‘사진 즐김이’와 같은 말을 안 쓰고 ‘포토그래퍼’라든지 ‘아티스트’ 같은 말을 쓰면, 이런 영어가 뿌리를 내립니다.


  어떤 사진기를 쓸 적에 사진이 잘 나올까요? 값지거나 값비싼 사진기를 쓸 적에 사진이 잘 나올까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값지거나 값비싼 사진기가 있으면 ‘사진을 잘 찍으리라’ 하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들도록 사진을 찍으려면 값지거나 값비싼 사진기가 아니라, ‘내 손에 익은 사진기’가 있어야 합니다.


  값지거나 값비싼 자전거를 몰아도 잘 달릴 수 있어요. 그런데, 내 몸에 익은 자전거를 몰 때에 내 몸이 느긋하면서 즐겁고, 이러한 기운을 듬뿍 누리면서 잘 달립니다. 그러니까, 값지거나 값비싼 장비를 갖추었어도 스스로 손과 몸과 눈과 마음에 익히지 않았을 때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대수롭지 않거나 비싸지 않은 가볍고 값싸며 작은 장비만 있더라도, 스스로 손과 몸과 눈과 마음에 익히면 언제나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모든 것을 이룹니다.


  똑딱이 사진기나 1회용 필름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습니다. 손전화 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찍기란 내 마음에 담을 이야기를 찍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화소수나 해상도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흑백필름을 써야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몇 천만 원이나 몇 억쯤 되는 장비를 갖추어야 패션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이 스스로 곧게 설 적에 사진이 됩니다. 사진을 바라보는 눈길이 꿋꿋하면서 싱그럽고, 튼튼하면서 고울 적에 사진을 이룹니다. 한 조각씩 천천히 맞춥니다. 하루하루 차근차근 사진을 갈고닦습니다. 시나브로 사진이 옹글게 피어납니다. 4347.8.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