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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인 지구 정복
존 카펜터 감독, 로디 파이퍼 외 출연 / 클레버컴퍼니 / 2011년 8월
평점 :
화성인 지구 정복
They Live, 1988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They Live)〉을 보면서 문득 한 가지 영화가 떠오른다. 바로 〈록키 호러 픽쳐 쇼(Rocky Horror Picture Show)〉이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1975년에 나왔고, 〈화성인 지구 정복〉은 1988년에 나온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이 지구별에서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산업과 스포츠와 영화와 방송과 신문과 출판 따위를 모두 거느리면서 주무르는 ‘록펠러·JP모건’ 속내를 곳곳에 짙게 깔면서 넌지시 보여준다. 여느 사람들이 으레 아는 대로 흘러가는 사회나 역사가 아니라, 누군가 억지로 꾸미거나 만드는 틀대로 사람들이 바보스레 휩쓸리거나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이를 알아보자면 그만큼 공부를 해야 알아본다. 공부를 하지 않고 영화만 본다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채 ‘컬트’라느니 ‘뮤지컬’이라느니 하는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화성인’을 빗대어 말한다. 그러나, 지구별을 뒤에 숨어서 움직이는 이들이 ‘화성인’인지 ‘외계인’인지 영화에서 제대로 다루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어느 별 사람’이 지구사람을 뒤에서 노예로 부리는지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영화에 붙인 이름처럼 “그들은 살고(깬 사람 They Live)”이고, “우리는 잠들었다(We Sleep)”는 이야기를 밝힌다. “They Live We Sleep”이라는 이야기는 아주 살짝 담벼락에 적은 글을 비추면서 지나가는데, 살짝 스치듯이 지나가는 모습처럼, 우리는 우리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참답게 느끼려 하지 않는다. 우리 삶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 바꾸려 하지 않는다. 돈을 더 벌려 하고, 자리를 더 지키려 한다. 왜 그럴까? 왜 바꾸지 못할까? 우리는 노예로 아주 기나긴 나날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노예인 줄 모르는’ 채 길들었기 때문이다. 노예인 줄 모르는 채 길든 탓에, 노예에서 풀려나더라도 무엇을 스스로 새로 빚을 줄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에 나오는 검은이 ‘프랭크’는 하얀이 ‘나다’한테 너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넌지시 한 마디를 하고 아주 빠르게 다음 대목으로 지나간다. 참말 이 대목처럼 우리는 제 길을 찾으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아주 살짝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제 길을 찾기보다는 쳇바퀴를 도는 노예 부속품으로 지내는 데에 익숙하다. 회사원이 되는 데에 익숙하고, 학생이 되는 데에 익숙하다. 나이를 먹으면 웃사람이 되어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데에 익숙하고, 교사가 되어 가르치는 데에 익숙하다. 다만, 이것과 저것을 하지만, ‘삶을 스스로 새로 짓지’는 못한다.
그나저나, 한국에서는 왜 영화이름을 ‘화성인 지구 정복’으로 붙였을까? 왜 이런 뚱딴지 같은 이름을 붙였는가? “그들은 살아서 우리를 다스린다”는 이야기를 알지 못하도록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아리송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어둡고 갑갑하니까, 이런 이름을 붙일밖에 없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이 영화를 ‘비급 판타지나 에스에프 영화’로 갈래를 넣을 테지. 차라리 “록키 호러 픽쳐 쇼”처럼 영어 이름을 그대로 쓸 노릇이다. 1975년에 나온 영화가 이름에서 알려주듯, 우리는 ‘픽쳐 쇼’에 휘둘리는 바보 노예 부속품으로 살면서도 이를 하나도 안 깨닫는다. 4347.8.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