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다와 서글프다가 어떻게 다르며
구슬프다는 또 어떻게 다른가를
오늘날 얼마나 잘 가려서 쓸 수 있을까요?
또 슬프다는 어떠한 느낌인지 얼마나 헤아릴까요?
한국말을 슬기롭게 생각하면서 쓰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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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다·섧다·슬프다·구슬프다·서글프다
→ 마음이 아플 때에 ‘슬프다’고 합니다. ‘슬프다’고 할 적에는 마음이 아프면서 눈물이 날 듯한 느낌입니다. ‘서럽다’고 할 적에는 뜻하지 않게 생긴 일 때문에 울고 싶도록 마음이 아픈데, 나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가리킬 때에 씁니다. 이래서는 안 되지만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든지, 작은 힘으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느낄 만큼 커다란 아픔, 갑자기 들이닥쳐서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아픔을 가리키는 자리에 ‘서럽다’를 써요. 뜻하지 않게 생긴 일을 나 스스로 어떻게든 바꾸거나 고치거나 바로잡을 수 있다고 느낄 적에는 ‘슬프다’를 씁니다. ‘구슬프다’는 노래나 울음이나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플 때에 쓰는 낱말입니다. ‘서글프다’는 마음이 텅 빈 듯한 느낌, 그러니까 허전하다는 느낌이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할 때에 씁니다. 안타깝거나 딱하다 싶은 일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안 좋을 때에도 ‘서글프다’를 씁니다. 이를테면, 들짐승이 길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모습을 본다든지, 사람들이 괴롭혀서 고달픈 짐승을 본다든지, 이럴 적에 ‘서글프다’를 씁니다.
서럽다
: 뜻하지 않게 생긴 안타깝거나 힘든 일 때문에 울고 싶도록 마음이 아프다
- 전쟁 때문에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 새해를 맞이하지만 고향 나라에 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서러워 보인다
- 이웃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사회에서 쓸쓸하며 서러운 사람들이 생긴다
-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서럽게 우셨어요
섧다
= 서럽다
- 오늘까지만 섧게 울고, 이튿날부터 다시 일어설 테야
- 알에서 깨자마자 농약 때문에 몽땅 죽고 만 올챙이들은 몹시 섧겠지
슬프다
1. 답답한 일·뒤집어쓴 일을 겪거나 불쌍한 일을 보니, 마음이 아프면서 눈물이 날 듯하다
-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이 겪은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잠이 안 오더라
-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바느질을 못하니 슬프구나
- 꾸중을 듣고 슬픈 나머지 눈물을 똑똑 흘린다
2. 어떤 일이 바람직하지 않아 안타깝거나 마음이 아프다
- 숲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어른들 때문에 슬퍼요
- 평화를 바라지 않고 전쟁무기를 자꾸 만드는 어른들을 보면 슬퍼요
- 지구별이 무너지는데에도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으니 슬퍼요
구슬프다
: 노래·울음·소리가 쓸쓸하면서 마음을 아프게 하다
- 오늘 밤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어쩐지 구슬프구나
- 어머니가 할머니를 그리며 피리를 부는 소리는 참 구슬픕니다
- 오늘 따라 힘든 일이 많은 탓인지 달빛에 어리는 개구리 소리조차 구슬프다
서글프다
1. 마음이 텅 빈 듯하면서 아프다
- 오갈 데 없는 나그네는 서글프다면서, 어머니는 꼭 밥 한 그릇 차려 주신다
- 우리가 한가위에 찾아와서 한참 놀다가 돌아가면 할머니는 왠지 서글프시대요
2. 어떤 일이 안타깝고 딱해서 마음이 안 좋다
- 멧골에서 불을 피우다가 숲을 태우는 일이 생기면 몹시 서글퍼요
- 자동차에 치여 죽은 들짐승을 볼 때면 늘 서글프다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