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경제신문'에 싣는 '책 이야기'입니다. 경제신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써서 실을 수 있으니 무척 재미있고 뜻있다고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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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아름답게 살고 싶어



  일본 영화 〈별이 된 소년(星になった少年)〉은 지난 2005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디브이디가 나오지 않았으나, 이 영화로 만든 이야기는 《아기 코끼리 란디와 별이 된 소년》(페이지,2006)이라는 책으로 한국말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1992년에 스무 살 나이로 ‘별이 된’ 아이 이야기를 다루는데, 책과 영화에 나오는 이 아이는 중학교를 다니면서 동무한테서 따돌림을 받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교사한테서 놀림을 받습니다. ‘별이 된’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거나 살피는 동무라든지 이웃이 거의 없었어요.


  ‘별이 된’ 아이는 중학교를 다니다가 태국으로 홀로 떠납니다. 코끼리 조련사가 될 뜻으로 혼자서 씩씩하게 ‘태국 코끼리 학교’를 다닙니다. 그러고는 태국사람이 아닌 외국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코끼리 조련사가 됩니다. 그런데, 일본으로 돌아온 이 아이를 반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코끼리 조련사로 살아가려는 이 아이 마음을 읽는 어른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태국말을 가르칠 일도 없고, 코끼리 한살이를 들려줄 일도 없으며, 숲을 가꾸는 길을 알려줄 일도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그저 시험성적만 따집니다.


  코끼리는 풀을 먹습니다. 코끼리를 돌보는 조련사는 코끼리가 잘 먹는 풀을 알아야 합니다. 코끼리는 풀을 아주 많이 먹습니다. 여느 들이나 밭에서 거두는 남새로는 코끼리를 먹이지 못합니다. 너른 숲이 있어야 하고, 깊은 멧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코끼리 조련사를 하자면 숲과 멧골과 들과 냇물을 모두 잘 알아야 하며, 풀과 나무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기생수》라는 만화를 그리기도 한 일본 만화가 이와아키 히토시 님이 그린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04∼2013)를 보면, 역사를 읽는 ‘다른 눈길’이 돋보입니다. ‘전쟁과 정벌과 영웅’이라는 틀로 역사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삶과 마을과 사랑’이라는 틀로 역사를 바라봅니다. 정치집권자가 부리는 전쟁이라든지 정벌로 이곳저곳이 뒤숭숭하달지라도, 정치집권자 또한 밥을 먹고 잠을 잡니다. 정치집권자가 먹을 밥은 시골사람이 짓습니다. 정치집권자가 지내는 도시와 온갖 건물과 집은 시골사람이 짓습니다. 만화책 《히스토리에》에는 지난날 세계역사라고 하는 틀에서 한 번도 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이 어떠한 나날이었고 마음이었으며 꿈과 사랑이었는가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정치집권자 자리에 선 이들이 얼마나 허울이 가득했고, 정치집권자한테 끌려서 전쟁소모품이 되어야 하는 군인이란 모두 얼마나 덧없는가를 밝힙니다.


  몇 천이나 몇 만이나 몇 십만이라 하는 전쟁소모품이란 무엇일까요. 이 많은 사람들은 왜 군인이 되어 창이나 칼을 들고 누군가를 죽여야 할까요. 전쟁소모품이 되는 사람들은 왜 태어나야 했을까요.


  “걱정 말아요. 분명히 잘 될 거야. 이 마을은 살아남을 거예요. 고마워. 고마워. 이제까지 한 번도 제대로 말해 본 적 없지만, 고마워. 날 동료로 삼아 줘서(4권 63∼64쪽).” 작은 마을을 윽박지르면서 모조리 불살라 죽이려는 ‘작은 집권자가 거느린 군대’를 앞에 두고, 만화 주인공이 혼잣말을 합니다. 만화 주인공은 ‘전쟁 미치광이’한테 군인 숫자나 무기로 맞서지 않습니다. 마을사람이 하나도 안 다치도록 하면서 ‘작은 집권자’를 끌어내려 ‘저쪽 전쟁소모품’인 군인들도 덜 다치게 하면서 ‘전쟁을 빨리 끝낼’ 길을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전쟁은 생각조차 안 하면서 작은 마을을 사랑스레 가꾸는 시골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일 만한 슬기란 있을까요? 아무렴, 있습니다. 생각을 하면 이러한 슬기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생각을 안 하면 언제까지나 이러한 슬기를 못 찾아냅니다.


  온 나라에 민주와 평등과 자유와 평화가 서리면서 남북녘이 아름답게 하나되는 길을 슬기롭게 찾을 수 있을까요? 아무렴, 찾을 수 있습니다. 돈벌이나 재개발이나 정치권력 따위를 헤아리지 않으면, 이러면서 참다운 민주와 평등과 자유와 평화만 헤아린다면 슬기로운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어제 공방 식구들과 술을 마시던 중, ‘설계’, ‘제작’, ‘운용’ 3가지 중 어떤 단계가 가장 즐거운가, 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이구동성 ‘제작’이라더군요(6권 28쪽).” 머리만 쓰는 일은 삶을 빛내지 않습니다. 스스로 씨앗을 거두어 다시 씨앗을 심는 일이 삶을 빛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맛나거나 값진 밥을 사먹어야 삶이 빛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씨앗을 거둔 뒤 스스로 제 땅에 씨앗을 심어서 남새를 거두고, 나물을 뜯어서 함께 누릴 때에 비로소 삶이 빛납니다. 하루하루 스스로 삶을 지어야 사랑이 태어나요. 날마다 스스로 생각을 지어야 꿈이 자랍니다.


  기계를 부려 똑같은 틀로 잔뜩 지은 아파트에서 살 때하고, 스스로 땀을 들여 씩씩하게 지은 집에서 살 때하고, 어느 쪽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이 될까 헤아려 봅니다. 마당 한 뼘 없는 아파트에서 살 때하고, 마당을 열 평이나 스무 평이라도 누리는 집에서 살 때하고, 어느 쪽이 삶을 사랑스레 돌보는 길이 될까 생각해 봅니다. 마당조차 없으니 나무를 심을 땅조차 없이 지내는 아파트하고, 식구들이 마당이나 텃밭에 나무 몇 그루 심을 수 있는 집하고, 어느 쪽이 삶을 즐겁게 누리는 길이 될까 곰곰이 돌아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답게 살 때에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살지 않으면서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스럽게 살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럽게 살지 않으면서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돈이 있다면 돈이 있을 뿐입니다. 이름값이 있다면 이름값이 있을 뿐입니다. 힘이 세다면 힘이 셀 뿐입니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은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이 아닙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이 아닙니다. 웃음이나 이야기가 아닙니다. 춤이나 노래가 아닙니다. 즐거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즐겁습니다. 기쁘게 춤을 추는 사람이 기쁩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이 넉넉하고 너그럽습니다.


  아이들이 성적표에 꽤 높은 점수를 숫자로 찍어야 삶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성적표 숫자에 매달려 하루 내내 시멘트 교실에 갇혀 지내야 한다면 삶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학교는 아주 작아야 합니다. 학교는 아이들만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르면서 즐거운 삶을 아름답게 가꾸도록 이끌 때에 학교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누구나 늘 함께 다니면서 날마다 삶을 새로 배우고 가꾸도록 북돋울 때에 학교입니다. 예전에는 보금자리와 마을이 ‘보금자리와 마을’이면서 ‘배움터’요 ‘삶터’였습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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