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660) 가족 1
예전엔 옆집 굴뚝에 연기가 안 오르면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보리 한 됫박이나마 나누어 먹던 게 사람답게 살던 우리의 모습이었다. 오른 방세를 마련 못해 일가족이 함께 세상을 등지는 마당에 ‘수출이 안 된다, 경제 위기다’ 하며 노동자가 목쉬게 부르짖는 최소한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골프장이나 넓힐 궁리를 한다면 그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또 하나의 입덧》(따님,1990) 80쪽
일가족이 함께 세상을 등지는 마당에
→ 한집이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 한집안이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 온 집이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 온 식구가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
한국말사전에서 ‘일가족(一家族)’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보니, “한집안의 가족”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한국말 ‘한집안’을 찾아봅니다. “한집에서 사는 가족”이라고 풀이합니다. 다시 한자말 ‘가족(家族)’을 찾아보니,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 풀이합니다.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한집안’이라는 한국말이 ‘가족’을 뜻한다고 하는데, ‘일가족’은 “한집안의 가족”이라 풀이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족의 가족”이 한자말 ‘일가족’인 꼴입니다.
일가족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다
→ 한집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다
→ 한집안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다
일가족을 이끌고 피난을 가다
→ 한집안을 이끌고 싸움통을 벗어나다
→ 한집을 이끌고 싸움통을 떠나다
한국말사전을 더 살펴봅니다. 설마 ‘한가족(한 + 家族)’ 같은 낱말도 실었을까 궁금합니다. 이 낱말은 안 실립니다. 이제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예부터 한국말은 ‘한집안’입니다. ‘가족’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식구’라는 말을 곧잘 썼습니다. ‘食口’도 한자로 지은 낱말인데, 이 낱말을 한자로 적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말밑은 한자이지만, 한자말로 여기지 않고 한국말에 녹아든 낱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한식구’라는 말을 예부터 참 흔히 써요. 그런데, 한국말사전에는 ‘한식구’도 안 실립니다.
가족을 부양하다
→ 식구를 먹여살리다
→ 한집을 먹여살리다
열흘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 열흘 만에 한집 품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식구가 한자리에 모인 가족적 분위기
→ 모처럼 식구가 한자리에 모인 따스한 느낌
→ 모처럼 한집이 한자리에 모인 도란도란 즐거움
→ 모처럼 한집안이 한자리에 모인 사랑스러움
이러한 작은 일은 가족적으로 해결해도 된다
→ 이러한 작은 일은 식구끼리 풀어도 된다
→ 이러한 작은 일은 우리끼리 풀어도 된다
시골에서 할매와 할배가 으리 ‘지비(집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녁’을 가리킬 적에 곧잘 이런 말을 씁니다. ‘집’이라는 낱말로 ‘사람’을 가리킵니다. ‘식구’는 어느새 한국말로 녹아든 낱말이지만, 훨씬 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쓰던 낱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한집’입니다.
‘집’이라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아도, ‘집’은 “사람이 지내는 곳”을 가리킬 뿐 아니라, “집안”을 가리키고, “사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한국말사전은 “‘사람’을 가리키는 ‘집’”이 가시내(여자, 어머니, 아내)이기만 한 줄 잘못 풀이하지만, 예부터 ‘집’은 한집안 사람 누구나 다 가리켰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나 ‘사내가 바깥에서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지, 예전 시골살이에서는 가시내도 사내도 ‘마을에 머물고 집에서 살면서 일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집사람’이든 ‘집’이든 사내와 가시내를 따로 가르는 낱말이 아닙니다. 집에 있는 사람이기에 모두 ‘집사람’이요, 짤막하게 ‘집’이라 했으며, 시골에서는 아직까지도 ‘지비(집이)’라는 대이름씨를 씁니다.
한국말은 ‘집·집안·한집·한집안·온 집(온집)·온 집안(온집안)’입니다. 한자말은 ‘식구·가족’입니다. 한자말 가운데 ‘식구’는 한국 한자말이요, ‘가족’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말뿌리는 이렇습니다. 4336.5.10.흙/4347.8.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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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옆집 굴뚝에 연기가 안 오르면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보리 한 됫박이나마 나누어 먹으며 사람답게 살던 우리 모습이었다. 오른 집삯을 마련 못해 한집이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수출이 안 된다, 경제 위기다’ 하며 노동자가 목 쉬게 부르짖는 아주 마땅한 외침을 못 들은 척하고 골프장이나 넓힐 생각을 한다면 이는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나누어 먹던 게”는 “나누어 먹던”으로 다듬고, “우리의 모습”은 “우리 모습”으로 다듬으며, ‘방세(房貰)’는 ‘방삯’이나 ‘집삯’으로 다듬습니다. “세상(世上)을 등지는”은 “이 땅을 등지는”이나 “스스로 숨을 끊는”으로 손보고, “최소한(最小限)의 정당(正當)한 요구(要求)를 묵살(默殺)하고”는 “아주 마땅한 외침을 못 들은 척하고”나 “아주 마땅한 소리에 귀를 닫고”나 “아주 마땅한 얘기에 등을 돌리고”로 손봅니다. ‘궁리(窮理)’는 ‘생각’으로 손질하고, ‘그건’은 ‘이는’으로 손질합니다.
일가족(一家族) : 한집안의 가족. 또는 온 가족
- 일가족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다 / 일가족을 이끌고 피난을 가다
가족(家族)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 가족을 부양하다 / 잃어버렸던 아이가 열흘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
모처럼 식구가 한자리에 모인 가족적 분위기 /
이러한 작은 일은 가족적으로 해결해도 된다
한집안
(1) 한집에서 사는 가족
(2) 일가 친척
한집
(1) 같은 집
(2) = 한집안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21) 가족 2
내일은 가족 신문 만드는 날 / 어떤 사진 가져갈까 / 사진첩 들춰 봅니다
《김미혜-아빠를 딱 하루만》(창비,2008) 40쪽
가족 신문
→ 우리 집 신문
‘가족’은 한국말이 아닐 뿐더러, 한국 한자말이 아닙니다만,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이 낱말을 무척 자주 씁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어느 회사에서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이름을 널리 앞세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마디에서는 ‘-의’를 붙인 ‘하나의’도 얄궂습니다.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또 다른 식구”나 “또 다른 이웃”이나 “또 다른 한집”이나 “또 다른 한집안”처럼 고쳐써야 올발라요.
학교에서는 “한집안 이야기를 담은 신문”을 만들도록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생각에 젖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신문에 붙이는 이름이 ‘가족 신문’이라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한국말하고 영 동떨어집니다. 곧, 한국말을 집이나 학교에서 제대로 못 배운 아이들이 회사에 들어가거나 사회에서 일자리를 얻으면서, “또 하나의 가족” 과 같은 엉성한 말을 다시금 퍼뜨리는 노릇을 합니다.
집에서는 “우리 집 신문”을 만듭니다. 마을에서는 “우리 마을 신문”을 만듭니다. 학교에서는 “우리 학교 신문”을 만듭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신문”을 만듭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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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우리 집 신문 만드는 날 / 어떤 사진 가져갈까 / 사진첩 들춰 봅니다
‘내일(來日)’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이튿날’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