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619) 쾌속
거센 파도를 / 부드럽게 달래어 품어 안는 / 해안선 굴곡을 따라 쾌속선을 띄웠다
《배창환-겨울 가야산》(실천문학사,2006) 102쪽
쾌속선을 띄웠다
→ 빠른배를 띄웠다
→ 번개 같은 배를 띄웠다
→ 번개배를 띄웠다
…
인천과 서울을 빠르게 오가는 전철이 있습니다. 춘천과 서울을 빠르게 달리는 전철이 있습니다. 이 전철을 두고 ‘빠른 전철’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철도청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으레 ‘급행(急行) 전철’이라고 말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빠르게 오가는 기차가 있습니다. 이 기차는 서울과 광주를 빠르게 달리기도 합니다. 철도청과 공공기관에서는 으레 ‘KTX’라는 영어를 쓰고, 이를 가끔 ‘고속(高速) 철도’라 일컫곤 합니다.
빨리 가려고 지름길을 가곤 합니다. 질러서 가는 길이기에 ‘지름길’입니다. 지름길이 아니지만 빨리 갈 수 있는 길이라면 ‘빠른길’입니다. 다만, 한국말사전에는 ‘빠른길’이나 ‘느린길’은 안 나옵니다.
빠른길 . 느린길
빠른전철 . 빠른버스 . 빠른기차 . 빠른배
빨리 가니까 “빨리 간다”고 말합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고속도로(高速道路)’라는 말을 굳이 안 써도 됩니다. 빨리 달리는 길이니 ‘빠른길’입니다. 길이 굽으면 ‘굽은길’입니다. 길이 멀면 ‘먼길’입니다. 이런 낱말도 한국말사전에는 없습니다만, 우리가 이런 말을 무척 널리 쓰는 만큼, 머잖아 올림말로 삼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쾌속 질주
→ 무척 빨리 달림
→ 빨리 내달림
쾌속 냉각
→ 아주 빨리 얼림
→ 재빨리 얼림
차는 큰길로 나오자 쾌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차는 큰길로 나오자 빠르게 달렸다
→ 차는 큰길로 나오자 재빠르게 달렸다
‘쾌속선’ 같은 한자말을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한자말로만 이름을 지어 버릇하면, 우리 생각이 죽습니다. 빨리 달리는 배는 ‘빠른배’로 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 ‘번개배’로 이름을 지어도 됩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영어로 새로운 낱말을 짓고 그 나라 사람들 생각을 살찌웁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말로 새로운 낱말을 지으면서 이 나라 사람들 생각을 살찌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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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물결을 / 부드럽게 달래어 품어 안는 / 바닷가 굽이를 따라 빠른배를 띄웠다
‘파도(波濤)’는 ‘물결’로 다듬습니다. “해안선(海岸線) 굴곡(屈曲)”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바닷가 굽이”로 손볼 수 있습니다.
쾌속선(快速船) : 속도가 매우 빠른 배
쾌속(快速) : 속도가 매우 빠름
- 쾌속 질주 / 쾌속 냉각 / 차는 큰길로 나오자 쾌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