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989) 작업 1
현재 만화 작업을 하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마르잔 사트라피/김대중 옮김-페르세폴리스 1》(새만화책,2005) 책날개
만화 작업을 하며
→ 만화 일을 하며
→ 만화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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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에 있는 분들은 저한테 “요즘 무슨 작업 하세요?”나 “작업은 잘 되나요?” 같은 말을 더러 묻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분들이 이런 말을 흔히 하는데, 요새는 회사에 나가는 사람뿐 아니라, 대학생도, 또 여느 사람들도 이 ‘작업(作業)’이란 한자말을 아주 쉽게 씁니다.
요사이 삶을 헤아려 보면, 만화를 그리는 분들한테 “만화 작업을 한다”고 말하고, 영화를 찍는 분들한테 “영화 작업을 한다”고 말하며, 노래를 지어서 부르는 사람들한테는 “음반 작업을 한다”고 말해요. 있는 그대로, 일하는 그대로를 나타내지 않고 자꾸 군말을 붙이고 뭔가 겉으로 있어 보이게 한달까요. 밥먹는 일을 ‘밥먹는다’고 하지 않고 “식사를 한다”고 하잖아요. 잠을 잔다는 말도 “취침에 들어가셔야지요”처럼 말하기까지 합니다.
작업 시간 → 일하는 시간 / 일하는 때 / 일때
준비 작업 → 준비 / 준비하는 일
그들의 작업은 → 그들이 하는 일은 / 그들 일은
교량 복구 작업 → 다리 다시 놓기 / 다리 손질
보완 작업 → 손보기 / 손질하기
전산화 작업 → 전산화
수년간의 작업 끝에 → 여러 해 일한 끝에 / 여러 해 일을 하여
꼭 알맞게 쓸 말을 쓰고, 삶을 즐겁게 가꾸는 말을 써야 합니다. 알맞게 쓰는 말도 아니요, 뜻이나 느낌을 낱낱이 드러내는 말도 아닌 데다가, 겉멋이나 겉치레나 겉꾸밈에 빠지는 말이라면 어떻게 되나요. 삶을 즐겁게 노래하지 못하는 말이 되면 얼마나 쓸쓸할까요.
우리 모두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하면서 ‘일노래’를 부르고, 웃으면서 ‘일꽃’을 가꾸며, 삶을 북돋우는 ‘삶일’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하는 일마다 환하게 빛나 ‘일빛’이 곱다라니 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8.10.22.흙/4341.10.3.쇠/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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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만화를 그리며 프랑스에서 산다
‘현재(現在)’는 ‘요즘은’으로 손질하고, “살고 있다”는 “산다”로 손질합니다.
작업(作業)
(1) 일을 함
- 작업 시간 / 준비 작업 / 그들의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2)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하는 일
- 교량 복구 작업 / 보완 작업 / 전산화 작업 / 수년간의 작업 끝에
(3) [군대] 근무나 훈련 이외에 진지 구축, 막사나 도로 보수 따위의 임시로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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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070) 작업 3 : 시 작업에 몰두했다
네팔을 ‘접은’ 후 그동안 밀쳐 두었던 시 작업에 몰두했다
《백경훈-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호미,2006) 26쪽
시 작업에 몰두했다
→ 시쓰기에 매달렸다
→ 시쓰기에 모든 삶을 바쳤다
→ 시쓰기에 온힘을 들였다
→ 시를 바지런히 썼다
→ 시를 힘껏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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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소설이나 시를 쓸 때도 ‘일’을 할 뿐 ‘작업을 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하는 일과 놀이를 꾸밈없이 바라보고 느끼면 좋겠습니다. 어설프게 남을 따라하거나 흉내내거나 베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말을 쉽고 알맞으며 깨끗하게 쓰면 좋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시를 쓰면 ‘시쓰기’입니다. 글을 쓰면 ‘글쓰기’입니다. 어느 누구도 ‘시 작업’이나 ‘글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4339.4.2.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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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을 ‘접은’ 뒤 그동안 밀쳐 두었던 시 쓰기에 매달렸다
“접은 후”는 “접은 뒤”나 “접은 다음”으로 손봅니다. ‘몰두(沒頭)했다’는 ‘매달렸다’나 ‘온힘을 들였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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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096) 작업 4 : 역사를 공부하는 작업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자에게 역사를 공부하는 작업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내기를 위한 책읽기 길라잡이》(서울대학교 총학생회,1998) 19쪽
역사를 공부하는 작업은 흥미로운 일
→ 역사 공부는 재미있는 일
→ 역사 배우기는 신나는 일
→ 역사 배우기는 즐거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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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온갖 곳에 ‘작업’을 갖다 붙입니다. 이 몹쓸 말버릇은 공부하는 일에까지 가지를 칩니다. 공부는 공부이지, 무슨 ‘공부 작업’인가요. 서울대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공부를 ‘작업’으로 여기면서 할는지요? 게다가 이 보기글을 살피면 “공부하는 작업”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적습니다. ‘작업’과 ‘일’을 잇달아 적습니다. 아직 철이 덜 든 대학생이기에 한국말을 아직 제대로 쓸 줄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4339.6.5.달/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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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넓히고자 하는 이한테 역사 공부는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식의‘지평(地平)’이라 했는데 ‘지평’은 어떤 뜻으로 쓰는 말일까요? 한국말사전 뜻풀이를 보니, “사물의 전망이나 가능성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오는데, ‘테두리·너비·깊이’를 가리키지 싶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냥 “지식을 넓히고자 하는”이라 해도 되겠어요. ‘자(者)’는 ‘사람’이나 ‘이’로 다듬는데, 보기글에서는 ‘학생’으로 다듬어도 됩니다. ‘흥미(興味)로운’은 ‘재미있는’이나 ‘즐거운’이나 ‘신나는‘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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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141) 작업 5 : 벼 수확 작업
벼 수확 작업이 끝나 내가 사는 마을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후루노 다카오/홍순명 옮김-백성백작》(그물코,2006) 86쪽
벼 수확 작업
→ 벼베기
→ 가을걷이
→ 가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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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을걷이’라 안 하고 ‘벼 수확 작업’이라 할까요? 어쩌면 공무원이나 학자들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이들은 예부터 ‘벼베기’라 했고 ‘가을걷이’라 했습니다. 벼를 베니까 ‘벼베기’요, 가을에 거두어들이니까 ‘가을걷이’입니다. 수수하게 가리키는 말이며, 투박하게 쓰는 말입니다. 시골에서 ‘벼베기·가을걷이’가 아닌 ‘벼 수확 작업’ 같은 말을 쓴다면, 시골 삶도 그예 무너져 버렸다고 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은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일본사람은 ‘作業’이라는 한자말을 빌어 ‘벼베기’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한국사람이 이곳저곳에 쓰는 온갖 ‘작업’은 일본사람이 쓰던 일본말에서 비롯했구나 싶습니다. 4339.8.31.나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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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베기가 끝나 내가 사는 마을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수확(收穫)’은 ‘거두어들이다’를 그대로 한자말로 옮긴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한테는 ‘거두어들이다’ 한 마디면 넉넉한 셈이에요. 보기글에서는 “벼를 거두어들이는 일”을 단출하게 갈무리해서 ‘벼베기’나 ‘가을걷이’로 적을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