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933) 유리 1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생존에 유리했다
《크리스 하먼-민중의 세계사》(책갈피,2004) 31쪽
생존에 유리하다
→ 살아남는 데에 도움이 된다
→ 삶에 한결 낫다
→ 서로 도와야 살아가는 데에 더 낫다
…
한국말사전에 실린 아홉 가지 ‘유리’ 가운데 우리가 쓰는 ‘유리’는 몇 가지일까 생각해 봅니다. 도움이 되는 일은 ‘도움이 된다’고 적습니다. ‘有利’로 적을 일이 없습니다. 따로 떨어졌다면 ‘따로 떨어졌다’고 적습니다. ‘遊離’로 적을 일이 없어요. ‘流離漂泊’을 가리킨다는 ‘流離’를 쓴대서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떠돌기’라 해야 비로소 알아들을 만합니다.
여름 계절풍은 벼농사에 특히 유리하다
→ 여름 바람은 벼농사에 더 도움이 된다
→ 여름 철바람은 벼농사에 더욱 좋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갔다
→ 우리한테 좋게 흐른다
→ 우리한테 도움이 되도록 나아간다
어떤 사람은 현실과 동떨어집니다(← 현실과의 유리). 말과 삶이 동떨어질(← 이론과 실제가 유리) 수 있습니다. 삶과 멀찌감치 떨어진 꿈만을 좇을(← 현실과 유리된 이상만을 추구하다) 수 있어요.
한국말사전에 실린 한자말은 우리 삶과 얼마나 가까이 맞닿는지 아리송합니다. 우리 삶과 동떨어진 한자말이 지나치게 많이 실린 한국말사전은 아닐까요. 우리 삶을 사랑하는 길하고는 멀찌감치 떨어진 한국말사전은 아닌가요. 4338.5.20.쇠/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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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이 아니라 두레가 삶에 한결 낫다
‘경쟁(競爭)’은 ‘겨룸’이나 ‘다툼’으로 다듬고, ‘협동(協同)’은 ‘돕기’나 ‘서로돕기’나 ‘어깨동무’나 ‘두레’로 다듬으며, ‘생존(生存)’은 ‘삶’이나 ‘살아남기’로 다듬습니다.
유리(由吏) = 이방 아전
유리(有利) : 이익이 있음
- 여름 계절풍은 벼농사에 특히 유리하다 /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갔다
유리(有理) : 유리 연산 이외의 관계를 포함하지 않는 일
유리(有理) : 이치에 맞는 점이 있음
유리(流離) = 유리표박
유리(琉璃) : 석영, 탄산소다, 석회암을 섞어 높은 온도에서 녹인 다음 급히 냉각하여 만든 물질
유리(遊離) : 따로 떨어짐
- 현실과의 유리 / 이론과 실제가 유리되다 / 현실과 유리된 이상만을 추구하다
유리(瑠璃)
(1) 황금색의 작은 점이 군데군데 있고 거무스름한 푸른색을 띤 광물
(2) 거무스름한 푸른빛이 나는 보석
유리(??/??) = 끈삼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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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213) 유리 2
법의 지배는 소중하지만, 법 그 자체가 국민의 일반의지와 유리되거나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했을 경우
《한승헌-그날을 기다리는 마음》(범우사,1991) 102쪽
국민의 일반의지와 유리되거나
→ 사람들 생각과 동떨어지거나
→ 사람들 마음과 동떨어지거나
→ 사람들 생각에서 벗어나거나
→ 사람들 마음과 멀리 떨어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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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지(一般意志)’는 철학에 나오는 말이로군요. “개인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사회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공적 주체로서의 국민 일반의 의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국민 일반의 의지를 ‘일반의지’라 하는 셈이로군요. 그런데 보기글에서 “국민의 일반의지”라 적어요. 낱말과 낱말풀이가 영 아리송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느 생각’이 ‘생각’이나 ‘여느 마음’이나 ‘마음’으로 적어야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누군가는 “농사꾼의 일반의지”나 “노동자의 일반의지”처럼 쓰기도 할 테지만 “농사꾼 마음”과 “노동자 마음”이라고 적을 때에 비로소 뜻이 환하게 피어납니다.
한자말 ‘유리(遊離)’는 “따로 떨어짐”을 뜻합니다. 이런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쓸 수 있을 테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은 ‘유리’라는 한자말을 쓰지 않습니다. 글밥을 먹는 분들이 이런 한자말을 흔히 씁니다. 여느 사람들, 그러니까 여느 마음으로 여느 삶을 가꾸는 사람들은 ‘여느 한국말’을 수수하고 투박하게 씁니다. 4340.1.29.달/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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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있어야 하지만, 법 스스로 사람들 마음과 동떨어지거나 올바른 길을 걷지 못했을 때
“법의 지배(支配)도 소중(所重_하지만”은 무슨 뜻일까요. “법은 소중하지만”이나 “온누리에는 법이 있어야 하지만”을 뜻할까 아리송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법이 있어야 하지만”을 말하려 했지 싶습니다. “법 그 자체(自體)가”는 “법이”나 “법 스스로”로 손보고, “국민(國民)의 일반의지(一般意志)”는 “사람들 마음”으로 손보며, “절차적(節次的) 정당성(正當性)”은 “올바른 길”로 손보며, “못했을 경우(境遇)”는 “못했을 때”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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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332) 실정
한때 동양 최대 철새도래지였지만 지금은 형편없이 위축된 을숙도마저 명지대교로 망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박병상-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알마,2007) 66쪽
망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 망가지는 꼴이다
→ 망가지는 판이다
→ 망가진다
…
“失政을 저지르다”보다는 “정치를 잘못하다”로 적을 때 알아듣기에 낫다고 느낍니다. “동정을 잃었다”는 ‘失貞’은 한자로 적어도 알아듣기 힘들군요. ‘實定’보다는 “하기로 했다”면 넉넉합니다. 네 번째로 나오는 ‘實情’은 때에 따라서 다르게 담아냅니다. “실정에 맞다”라면 “흐름에 맞다”로, “실정에 어둡다”라면 “삶에 어둡다”로, “실정을 보고하다”는 “어떠한지 알리다”나 “어떠한지 말하다”로, “실정을 모르다”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다”로, “실정이 여의치 않다”는 “흐름이 뜻대로 안 된다”로, “국내의 실정에 밝다”는 “나라 흐름에 밝다”로 다듬어 봅니다. 4340.9.15.흙/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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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동양에서 가장 큰 철새 쉼터였지만 이제는 엉망으로 줄어든 을숙도마저 명지대교 때문에 망가진다
“동양 최대(最大)의 철새도래지”라 하지 않아서 반갑지만, “동양에서 가장 큰 철새도래지”로 적는다면 한결 낫습니다. ‘도래지(渡來地)’는 ‘쉼터’로 고치면 어떨까요. ‘위축(萎縮)된’은 ‘쭈그러든’이나 ‘작아진’이나 ‘줄어든’이나 ‘쪼그라든’으로 다듬고, ‘지금(只今)은’은 ‘이제는’으로 다듬으며, ‘형편(形便)없이’는 ‘엉망으로’로 다듬습니다.
실정(失政) : 정치를 잘못함. 또는 잘못된 정치
- 실정을 저지르다 / 실정을 거듭하다
실정(失貞)
(1) = 실절(失節)
(2) 동정(童貞)을 잃음
실정(實定) : 실제로 정함
실정(實情) : 실제의 사정이나 정세
- 실정에 맞다 / 실정에 어둡다 / 실정을 모르다 / 실정을 보고하다 /
실정이 여의치 않다 / 국내의 실정에 밝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