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982) 편린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의 삶의 족적에서조차 그런 비극의 편린을 무수히 엿볼 수 있다
《김규항-나는 왜 불온한가》(돌베개,2005) 45쪽
비극의 편린
→ 끔찍한 조각
→ 슬픈 대목
→ 쓰라린 모습
…
한국말사전에는 한자말 ‘편린’이 한 가지만 나옵니다. 낱말뜻은 “한 조각의 비늘”이라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사물의 극히 작은 한 부분을 이르는 말”이라고도 나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한국말사전 낱말풀이에 “한 조각의 비늘”이라 나올까요? “한 잔의 차”와 같은 말꼴은 번역 말투라고 합니다. 이런 말투를 써서는 안 된다고 여러 학자와 전문가가 밝힙니다. “한 조각의 비늘”이 아니라 “비늘 한 조각”으로 낱말풀이를 바로잡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덧붙인 낱말풀이도 “사물에서 아주 작은 한 조각”으로 손질해야지 싶어요.
기억의 편린들이 떠오르다
→ 기억 조각들이 떠오르다
→ 옛 생각이 조각조각 떠오르다
과거의 편린들이
→ 지나온 조각들이
→ 지나온 나날들이
아주 작은 조각을 가리킨다는 한자말 ‘편린’이니, 말 그대로 ‘조각’이라는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조각’이란 무엇일까요? 다시 한국말사전을 살펴봅니다. ‘조각’은 “한 물건에서 따로 떼어 내거나 떨어져 나온 작은 부분”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 ‘조각’은 “작은 것”을 가리킵니다. 한자말 ‘편린’을 “아주 작은 조각”이라고 풀이한다면, “아주 작고 작은 것”인 셈인데, 낱말풀이를 달 적에 이 대목까지 헤아리지는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그나저나 “비늘 조각”을 굳이 한자를 빌어서 한 낱말로 삼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비늘 조각이라면 ‘비늘 조각’이라 하면 됩니다. 조각을 가리키고 싶다면 그저 그대로 ‘조각’이라 하면 됩니다. 4338.10.9.한글날4347.8.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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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가 살아온 발자취에서조차 그런 슬픈 대목을 숱하게 엿볼 수 있다
“마르크스의 삶의 족적(足跡/足迹)”은 “마르크스가 살아온 발자취”나 “마르크스가 살아온 나날”로 다듬고, ‘비극(悲劇)의’는 ‘끔찍한’이나 ‘슬픈’으로 다듬으며, ‘무수(無數)히’는 ‘숱하게’나 ‘수없이’나 ‘아주 많이’로 다듬습니다.
편린(片鱗) : 한 조각의 비늘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극히 작은 한 부분을 이르는 말
- 기억의 편린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다 / 과거의 편린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