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902) 필요 1 : 빛을 필요로 한다


그들도 빛을 필요로 한다. 물론 인간보다는 빛을 훨씬 덜 필요로 하기는 하겠지만 여하튼 그들 역시 어느 정도의 빛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시튼/장석봉 옮김-회색곰 왑의 삶》(지호,2002) 208쪽


 빛을 필요로 한다

→ 빛을 바란다

→ 빛이 있어야 한다

→ 빛을 쬐어야 한다

 덜 필요로 하기는 하겠지만

→ 덜 바라기는 하겠지만

→ 덜 있어도 되겠지만

→ 덜 쬐어도 되겠지만

 …



  보기글을 살피면 첫머리와 사이에 ‘필요’가 한 차례씩 나오지만, 끝자락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로 나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한자말 ‘필요(必要)’를 찾아봅니다. 말뜻은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으로 나옵니다. 다시 한국말사전을 펼쳐서 ‘요구(要求)’를 찾아봅니다. 이 한자말은 “받아야 할 것을 필요에 의하여 달라고 청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필요’라는 한자말은 ‘요구’라는 한자말을 써서 풀이하고, ‘요구’라는 한자말은 ‘필요’라는 한자말을 써서 풀이하는군요. 뒤죽박죽 말풀이입니다.


 필요 물품

→ 있어야 할 물품

→ 가져야 할 물품

→ 챙길 물품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 알아야 할 까닭이 생겼다

→ 알아야겠다

 필요 이상 몸을 움츠리며

→ 쓸데없이 몸을 움츠리며

→ 몸을 너무 움츠리며

 전차를 탈 필요도 없지만

→ 전차를 안 타도 되지만

→ 전차를 탈 까닭도 없지만


  한국사람은 얼마나 ‘필요 이상’으로, 그러니까 ‘쓸데없이’ 한자말 ‘필요’를 쓰는지 궁금합니다. 정작 ‘쓸 만하’지 않은 한자말을 자꾸 쓰고 또 쓰다가 어느새 길들지는 않았을까요. 안 써도 될 만한 한자말인데, 한 번 쓰고 두 번 쓰다가 어느덧 손과 입에 익어서 못 털지는 않는가요.


 대출에 필요한 서류

→ 대출할 때 갖출 서류

→ 대출에 있어야 할 서류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 일할 때 드는 돈

→ 일을 하며 쓸 돈

→ 일하는 동안 들어가는 돈

 네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 너는 쉬어야 한다

→ 네게는 쉴 틈이 있어야 한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무슨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 무슨 돈이 있어야겠습니까?

→ 무슨 돈이 쓸모가 있습니까?

→ 돈 없어도 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한국사람은 알맞고 바르면서 사랑스럽게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쓸모있는 낱말을 살핍니다. 쓸모없는 한자말은 털어냅니다. 아름다운 낱말을 살피고, 아름답지 않은 낱말을 떨굽니다. 한국말사전에 쓸모가 많은 한국말을 제대로 담고, 한국말사전에 쓸모가 없는 한자말은 찬찬히 솎아냅니다. 4338.2.20.해/4347.8.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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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빛을 바란다. 다만 사람보다는 빛을 훨씬 덜 바라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그들도 어느 만큼 빛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勿論)’은 ‘다만’으로 다듬고,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여하튼(如何-)’은 ‘아무튼’이나 ‘어쨌든’으로 손보고, “그들 역시(亦是)”는 “그들도”나 “그들 또한”으로 손보며, “어느 정도(程度)의 빛은”은 “어느 만큼 빛은”이나 “빛은 어느 만큼”으로 손봅니다.



 필요(必要) :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

   - 필요 물품 / 동정을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

     사내는 필요 이상 몸을 움츠리며 연방 고개를 주억거렸다 / 

     진고개로 올라가는 길이니 전차를 탈 필요도 없지만

   - 은행 대출에 필요한 서류 /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내가 대마 /

     네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휴식이다 /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

     산에서 무슨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091) 필요 11 : 손길이 필요한 아이


정작 손길이 필요한 아이는 그렇게 잃고, 왜 이리 바쁜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동동거리며 하루 해를 저물리는 공립 학교의 선생이다

《최은숙-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샨티,2006) 12쪽


 손길이 필요한 아이

→ 손길이 가야 할 아이

→ 손길이 닿아야 할 아이

→ 손길을 받아야 할 아이

 …



  손길이나 눈길은 어느 곳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닿는다’고도 하고 ‘받아야’ 하기도 합니다. ‘필요하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요즘에는 ‘필요’란 한자말을 참 이곳저곳에 자주 쓰니까, 이 자리에서도 쓸 수 있다고 말할 분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사랑이 가야 하”듯이 “손길이 가야 합”니다. 사랑을 받아야 하듯이 손길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이 닿아야 하듯이 손길이 닿아야 합니다. 4339.5.22.달/4347.8.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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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손길이 닿아야 할 아이는 그렇게 잃고, 왜 이리 바쁜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동동거리며 하루 해를 저물리는 공립 학교 교사이다


“왜 이리 바쁜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동동거리며”라고 쓴 말이 좋습니다. 참 쉽고 부드럽습니다. 이렇게 쓰면 누구나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모습을 가리키는지 알기 좋습니다. 다만, “공립 학교의 선생이다”는 “공립 학교 교사이다”로 손질합니다. 교사가 스스로 ‘선생’이라 가리키는 대목은 좀 안 어울립니다. 아이들은 교사를 바라보며 ‘선생님’이라 부를 수 있을 테지만, 교사인 어른은 스스로 ‘교사’라고 밝혀야 알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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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088) 필요 10 :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고 있는가 하는 것까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이 저절로 알게 된다

《이오덕-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 36쪽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이

→ 길게 말할 까닭이 없이

→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 길게 말 안 해도

 …


  ‘필요’를 꼭 써야겠다면 하는 수 없이 써야겠지요. 그렇지만 굳이 쓰지 않아도 되며, 안 쓴다고 해서 우리가 하고픈 말이나 나타내고픈 뜻을 못 보여주거나 못 펼치지 않습니다. 이런 말 한 마디에 매달리기보다는 살갑고 산뜻하며 손쉽게 나눌 말을 쓰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4339.5.19.쇠/4347.8.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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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와서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가 하는 데까지 길게 말할 까닭이 없이 저절로 알 수 있다


“가고 있는가 하는 것까지”는 “가는가 하는 데까지”로 손질하고, ‘설명(說明)할’은 ‘말할’이나 ‘이야기할’이나 ‘들려줄’이나 ‘알려줄’이나 ‘늘어놓을’로 손질합니다. “알게 된다”는 “알 수 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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