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667) 퇴색
사랑은 그 자체 안에 뜻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그 무엇의 방편이 된다 해도 그것 때문에 그 자체의 뜻이 퇴색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즐거우면 좋겠지만 괴로와도 좋다
《김재준-인간이기에》(향린사,1968) 28쪽
그 자체의 뜻이 퇴색하지는 않는다
→ 스스로 뜻이 바래지는 않는다
→ 스스로 뜻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 스스로 뜻이 바뀌지는 않는다
→ 스스로 뜻이 빛을 바래지는 않는다
→ 스스로 뜻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
한국말 ‘바래다’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한국말 ‘바래다’는 “(1) 볕이나 물기를 받아 빛깔이 바뀌다 (2) 볕에 쬐거나 약물을 써서 빛깔을 희게 하다”처럼 두 가지 뜻으로 씁니다. 그리고, ‘빛바래다’라는 낱말이 있어요. 이 낱말은 “낡거나 오래되다”를 뜻합니다.
한자말 ‘退色’이나 ‘褪色’을 쓰고 싶다면, 이런 낱말도 써야겠지요. 그러나, 한국말 ‘바래다’와 ‘빛바래다’가 있습니다. 사랑스레 쓸 수 있는 한국말을 젖히고서 한자말을 불러들여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아름답게 쓸 수 있는 한국말을 자꾸 뒤로 밀치니, 한국말사전은 나날이 빛바래리라 느낍니다.
그 사진은 퇴색의 정도가 심하다
→ 그 사진은 빛이 많이 바랬다
수채화는 퇴색이 되어
→ 수채화는 빛이 바래어
이념의 퇴색으로
→ 이념이 빛이 바래
→ 이념이 빛바래면서
사랑해 주어야 빛이 납니다. 사랑하고 아끼면서 돌보아야 빛이 날 한국말이요 한국말사전입니다. 우리 스스로 한국말과 한국말사전을 알뜰히 보듬고 보살필 수 있기를 빕니다. 4336.6.8.해/4347.8.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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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스스로 뜻이 있다. 사랑이 그 무엇에 쓰인다 해도 그 무엇 때문에 스스로 뜻이 바래지는 않는다. 사랑이 즐거우면 좋겠지만 괴로와도 좋다
“그 자체(自體) 안에”는 “스스로”로 다듬고, “지니고 있다”는 “있다”로 다듬습니다. ‘그것’이라는 낱말이 자주 나오는데, 서양말에서는 대이름씨로 자주 쓸 테지만, 한국말에서는 제 말을 밝히면 됩니다. 보기글에서는 ‘사랑’으로 고쳐씁니다. “그 무엇의 방편(方便)이 된다 해도”는 “그 무엇에 쓰인다 해도”로 손보고, “그 자체의 뜻이”는 “스스로 뜻이”로 손봅니다.
퇴색(退色/褪色)
(1) 빛이나 색이 바램
- 그 사진은 퇴색의 정도가 심하다 / 수채화는 퇴색이 되어 / 낙엽이 퇴색되다
(2) 무엇이 낡거나 몰락하면서 그 존재가 희미해지거나 볼품없이 됨
- 공산주의 이념의 퇴색으로 동구 공산 국가들이 붕괴되었다 /
그 책의 뚜껑 빛보다도 내용이 앞서 퇴색해 버리고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