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책길 걷기
7. 책은 어떻게 만날까


  책은 늘 마음으로 만납니다. 마음으로 만나는 책이기에 마음으로 읽습니다. 마음으로 만나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만나지 않거나 못하면, 책을 마음으로 못 읽거나 안 읽습니다.

  동무는 늘 마음으로 사귑니다. 마음으로 사귀는 동무이기에 마음으로 어깨를 겯습니다. 마음으로 사귀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사귀지 않거나 못하면, 동무와 나는 서로 어떤 사이가 될까요?

  학교는 배우는 곳입니다. 학교를 다니는 우리들은 무엇인가 배우려고 학교를 다닙니다. 그래서, 학교는 한국말로 쉽게 풀이해서 ‘배움터’라고 일컫습니다. 배우는 터이기에 배움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학교는 놀이터가 아니고 삶터가 아니며 이야기터가 아닙니다. 오직 배우는 터이기에,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들은 우리한테 여러 가지 지식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기에 교과서를 씁니다. 교과서를 바탕으로 지식을 가르칩니다. 교과서에 안 나오는 지식은 학교에서 안 다룹니다. 학교에서는 오직 교과서 지식을 학생이 잘 알아서 시험을 잘 치르도록 이끕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안 하는(교과서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 아이를 몽둥이로 두들겨패거나 손찌검을 했습니다. 벌을 세우고 갖가지 거친 말도 일삼았습니다. 요즈음은 아이를 함부로 때리거나 패는 교사는 거의 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몽둥이질은 사라졌어도, 교과서 지식 가르치기는 그치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는 ‘더 위에 있는 다른 학교’에 갈 때에 쓸 시험지식을 외우는 구실을 합니다.

  학교에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우리는 학교에서 어떤 마음을 느끼거나 만날까요. 우리는 마음을 기울여서 배우는가요. 어른들은 우리한테 마음을 쏟으면서 가르칠까요. 서로 마음을 기울이거나 쏟기는 하지만, 학교 울타리에서만 마음을 기울이거나 쏟을 뿐, 우리가 살아갈 마을과 집과 나라를 넓게 아우르는 눈썰미하고는 동떨어지지 않을까요.

  학교라는 곳에서 우리가 서로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면, 학교라는 곳은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에는 ‘학교’라는 이름조차 안 쓰리라 생각해요.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틀을 넘어, 사랑을 나누고 꿈을 키우는 곳을 ‘학교’로 삼을 수 있으면, 학교는 더는 ‘학교’가 아닌 ‘마을’이 되고 ‘보금자리’가 되며 ‘숲’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가르치거나 배울 적에 서로 마음을 살뜰히 주고받을 수 있을 때에 새로운 빛이 태어납니다.

  쿄우 마치코 님이 그린 물빛내음이 감도는 만화책 《미카코》(미우 펴냄)가 있습니다. 이 만화책에는 ‘말(대사)’이 얼마 안 나옵니다. 물빛과 같이 찬찬히 흐르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물빛처럼 보드라우면서 맑고 해사한 이야기만 조물조물 나옵니다.

  첫째 권을 읽으면서 ‘난 처음으로 토끼를 쓰다듬었다(60쪽).’와 같은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나는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밑줄을 긋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밑줄을 그어요. 내 마음을 살포시 건드리는 아름다운 대목이라고 느끼면 서슴지 않습니다. 즐겁게 밑줄을 긋고는 여러 차례 되읽습니다. 기쁜 가락을 새롭게 느껴 봅니다.

  둘째 권을 읽으면서 ‘어서 여기를 뜨지 않으면 발톱이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16쪽).’와 같은 대목에서 밑줄을 그었어요. 풀밭에 맨발로 서니 발톱이 풀빛으로 물들 듯하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대목이에요.

  참말 그렇습니다. 바닷물에 두 발을 담그면 어느새 내 발은 바닷빛으로 바뀝니다. 두 팔을 하늘로 뻗어 구름을 잡으려 하면, 내 팔은 어느새 하늘빛과 구름빛으로 물듭니다.

  한두 살짜리 어린 동생이 있나요? 어린 동생이 있으면 어린 동생 볼살을 살살 쓰다듬어 보셔요. 내 볼을 어린 동생 볼에 대어 보셔요. 갓난쟁이 아기들 살결이 얼마나 보드라우면서 어여쁜가를 느껴 보셔요. 아기들 손을 쥐면 어느새 나도 아기와 같은 숨결이 됩니다. 아기들 눈망울을 바라보면 어느새 나도 아기와 같은 눈빛이 됩니다.

  셋째 권을 읽으면서 “따뜻해졌어(18쪽)?”와 같은 대목에서 밑줄을 긋습니다. 한겨울인데, 동무가 장갑 한 짝을 잃었습니다. 장갑을 안 낀 손이 빨갛게 업니다. 이를 뒤늦게 알아챈 다른 동무가 얼른 ‘장갑 안 낀 손을 호호 불고 비비면서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어 줍니다. 한참 이러고서 한 마디 묻는 말이 “따뜻해졌어?”예요.

  넷째 권을 읽으면서 ‘빨간 구두를 신으면 어디론가 데려가 줄 줄 알았다. 돈도 있고 탈것도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나의 빨간 구두는 땅에 붙어 있었다(72∼74쪽).’와 같은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새어머니한테서 학원비를 받은 미카코라는 아이는 학원에 안 갑니다. 드넓게 펼쳐진 강둑에 섭니다. 강바람을 맞으며 한참 섭니다. 아이는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어디 멀리 떠날까 하고 생각하지만,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어디로 갈 때에 즐거울까요. 어디로 갈 적에 마음속에서 샘솟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책은 언제나 마음으로 만납니다. 마음으로 만나지 못하는 책은 ‘유명세’나 ‘추천’이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만나겠지요. ‘독후감 숙제’ 때문에 만나는 책이 있을 테고, ‘선물받’아서 만나는 책이 있어요. 한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독후감 숙제’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면,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면, 책이란 무엇일까요.

  영화를 왜 볼까요? 마음이 맞는 동무하고 왜 사귈까요? 사랑을 왜 하고 싶을까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왜 나를 낳았을까요? 나는 책하고 어떻게 만날 때에 즐겁게 웃을 수 있나요? 동무하고 둘이서 무엇을 하며 놀 적에 기쁘면서 신날까요?

  마음을 담지 않으면서 짓는 밥은 마음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마음을 담지 않으면서 태어난 책은 마음을 북돋우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서 읽지 않는 책이라면, 아주 마땅히 우리 마음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꽃을 바라보듯이, 푸른 바람을 마시듯이, 따순 햇볕을 맞아들이듯이, 마음을 활짝 열고 책을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 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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