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만 원 책읽기


  내가 맞돈으로 번 돈이 얼마쯤인가 돌아본다. 1998년 1월부터 1999년 7월까지 신문배달을 하면서 다달이 십만 원짜리 적금을 부었으니, 이무렵 이백만 원쯤 모았지 싶다. 1999년 8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첫 해에는 다달이 육십이만 원 일삯을 받아 사십 만원을 적금으로 넣었으니, 한 해 동안 오백만 원 즈음 모았지 싶다. 2001년 1월부터는 다달이 백만 원을 받았고, 백만 원 받던 해에는 육십만 원을 적금으로 넣었으며, 일삯이 오를 적마다 적금도 늘려, 2003년에는 다달이 백팔십 만원 즈음 일삯을 받으면서 백이십만 원쯤 적금으로 넣었다.

  요즈음 도시에서는 전세를 사는 사람들한테 전세값으로 갑자기 오천만 원을 더 내라 하든지 일억 원을 더 내라 하든지, 이렇게 쉬 말한다고 한다. 곰곰이 돌아본다. 한 해 전세값으로 오천만 원을 더 내려면, 다달이 사백만 원쯤 모아야 하는 셈인가. 한 해 전세값으로 일억 원을 더 내려면, 다달이 팔백만 원쯤 모아야 하는 셈인가.

  도시에서 어떤 일을 하면 ‘한 해 전세값 오천만 원’에 이르는 ‘한 달 사백만 원 모으기’를 할 수 있을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돈을 얼마나 모아야 비로소 ‘느긋한 내 집’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 집 네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 시골집(97평)은 세 곱 바가지를 쓴 값이 ‘구백만 원’이었다. 지붕과 천장과 살림살이를 고치는 밑돈은 천오백만 원쯤 들어가지 싶다. 도시에서 집임자가 올리고 싶어하는 돈을 헤아린다면, 시골에서 ‘내 집’을 장만해서 살면 참 넉넉하리라 본다. 다만, 삶터를 시골로 옮기면 도시에서 누리던 일자리는 얻기 힘들겠지. 그러나, 더 생각해 보면, 삶터를 시골에 두면서, 여느 날에는 도시에서 ‘잠만 자는 작은 집’을 눅은 달삯방으로 얻어도 되리라 느낀다. 한 주에 닷새를 일한다면, 금요일에 일을 마치고 시외버스를 달려 시골집으로 돌아가서 금·토·일을 누린 다음, 월요일 새벽에 시외버스를 달려 도시에서 일하러 나올 수 있겠지.

  주말에라도 시골에서 삶을 가꾸는 이웃이 늘면 여러모로 재미있으리라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주말에라도 시골에서 천천히 삶을 가꾸다 보면, 애써 도시에 머물지 않아도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찾을 만하다. 시골에서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찾는다면, 아주 부드럽게 도시를 떠날 수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즐겁게 지내면, 도시에 있는 집임자는 ‘한 해 전세값 오천만 원 껑충 올리기’나 ‘한 해 전세값 일억 원 훌쩍 올리기’ 같은 짓을 섣불리 못하겠지.

  집임자가 세입자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슬픈 굴레를 어떻게 바꿀까. 집임자가 돈바라기로만 흐르는 가녀린 수렁을 어떻게 고칠까. 세입자가 도시를 떠나면 된다. 집임자가 아무한테도 집을 내놓지 못해 집삯을 못 벌게 하면 된다. 참말 그렇다.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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