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책길 걷기
6. 온누리에는 어떤 책이 나올까
온누리에 온갖 책이 새로 태어납니다. 한국에서도 날마다 여러 가지 책이 태어납니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날마다 나오는 모든 새책을 살피기는 어렵습니다.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사람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로 가르쳐요. 한 학기나 한 해를 두고 교과서 하나로 한 과목을 가르칩니다. 예전에는 참말 교과서가 아닌 책을 학교에서 다루지 않았어요. 오직 교과서 하나만 다루었어요. 오늘날은 예전과 사뭇 달라, 교과서 아닌 책을 제법 다룹니다.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책’을 따로 장만해서 학교도서관에 두기도 하고 학급문고로 갖추기도 합니다.
교과서는 ‘간추린 책’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책에 쓴 이야기를 간추려서 엮는 교과서입니다. 책 몇 권으로 흐르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는 고작 한 줄로 간추리기도 합니다. 수천 권이나 수만 권에 이르는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는 한 줄로조차 안 다루기도 합니다.
교과서를 읽으면서 배우는 사람은 ‘교과서를 본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책을 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책을 보려면 참말 책을 살펴야 합니다. ‘간추린 교과서’가 아닌, ‘그대로 밝히거나 풀어놓은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책이 수없이 태어나는데, 교과서 하나에만 기댄다면 우리가 무엇을 배울 만한지 생각해 봐요.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는데, 간추린 지식을 담은 교과서에만 머문다면 우리 마음밭이 얼마나 자랄 수 있을는지 헤아려 봐요.
어느 책은 오래도록 사랑받습니다. 어느 책은 그다지 사랑받지 못합니다. 오래도록 사랑받기에 더 아름다운 책이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그다지 사랑받지 못했더라도 덜 아름답거나 안 아름다운 책이라 여길 수 없습니다. 권정생 님이 쓴 《몽실 언니》(창작과비평사,1984)는 우리가 어떤 책으로 바라볼 만할까 궁금합니다. 무척 널리 읽히는 책이니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이라고 여길 만할까요. 푸름이와 어린이라면 《몽실 언니》를 한 차례쯤 읽었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책을 스무 살이던 1994년에 처음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적이나 중·고등학생이던 때에 이 책을 말하거나 알려주거나 건넨 어른은 없습니다. 스무 살이던 어느 날 책방마실을 하다가 스스로 알아보았어요. 스무 살 나이라면 어린이책은 안 읽을 만하다고 여기는 흐름이 한국 사회에 있지만, 그때 저는 이 책이 문득 끌렸어요. 스무 살이라면 대학생이 되는 나이인데, 다른 동무(대학생)들은 대학교재나 토익책을 옆구리에 꼈지만, 또는 인문사회과학책을 손에 쥐지만, 저는 어린이책 《몽실 언니》를 장만해서 읽었습니다. 제 어린 날과 푸른 날에 만나지 못한 어린이문학이 몹시 궁금했어요.
“이 산골마을 이름은 댓골이라 했다. 뒷산 골짜기로 보리둑나무가 무성하여 달밤엔 은빛 잎사귀가 아름다웠다(18∼19쪽).” 같은 글월에 밑줄을 긋고는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런 글월을 가만히 되읽으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투박하거나 수수한 글줄이라 할 테지만, 이렇게 투박하면서 수수한 글줄이 외려 제 가슴을 톡 건드렸어요.
책을 덮고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내가 사는 곳은 어떤 이름인가? 내가 사는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내가 사는 곳에는 어떤 나무가 자라는가? 내가 사는 곳에서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만나는가?’ 하는 생각이 잇달아 머릿속을 스칩니다.
“맑은 개울물에 기저귀랑 저고리랑 담그어 놓고 방망이로 토닥토닥 두들겨 빤다. 몽실이와 순덕은 딴 아이들보다 빨래도 잘한다(33쪽).” 같은 글월에 연필로 밑줄을 천천히 긋습니다. 다시금 한참 들여다봅니다. 괜히 눈물이 한 방울 똑 떨어집니다. 아무것도 아닌 글월이라 할 테지만, 그냥 그런 삶을 적은 글줄이라 할 텐데, 이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또 책을 덮었지요. 또 한참 생각에 잠겼지요. 예전에는 참말 모두들 맑은 개울물에서 빨래를 했겠다고 떠올렸어요. 제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그무렵, 또 백 해나 이백 해나 삼백 해쯤 앞서, 또 천 해나 이천 해나 삼천 해쯤 앞서, 모두들 맑은 개울물에 옷가지를 펼쳐서 척척 비비고 헹구었겠구나 싶었어요.
맑은 개울물에 옷을 빨면, 옷은 맑은 개울물 빛깔과 무늬를 얻습니다. 맑은 개울물에 빨래한 옷을 마당에 척 널어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도록 하면, 옷은 따순 볕과 싱그러운 바람이 베푸는 기운을 받습니다.
온누리에는 그야말로 많은 책이 꾸준하게 태어납니다. 수없이 많은 책은 저마다 어떤 삶을 그린 책일까요. 수없이 많은 책은 저마다 어떤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책일까요. 《몽실 언니》를 쓴 권정생 님은 몽실이 입을 빌어 “배운다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젖은 키를 크게 하고 몸을 살찌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머리가 깨고 생각이 자라게 한다(68쪽).”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엄마젖, 또는 어머니젖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한테서 태어납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가 베푸는 젖을 먹고 자랍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이녁 어머니한테서 태어나 으앙 울면서 갓난쟁이 나날을 보냈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시골 이야기를 책에 담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도시 이야기를 책에 싣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 이야기를 책에 쓸 테고, 일본에서는 일본 이야기를 책에 적어요. 한국에서는 한국 이야기를 책에 적바림할 테고, 역사학자는 역사 이야기를 책으로 펼칠 테며, 과학자는 과학 이야기를 책으로 선보일 테지요. 시골에서 자라는 사람은 어떤 책을 찾아서 읽을 만할까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어떤 책을 찾아서 읽을 만한가요. 온누리에는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책이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데, 거의 모든 책은 도시를 겨냥합니다. 시골을 바라보며 태어나는 책은 드뭅니다. 시골을 이야기하거나 시골살이를 밝히는 책은 아주 드물어요.
두 다리로 걸어서 책방에 가 봅니다. 커다란 책방이든 자그마한 책방이든, 책방마다 가장 많이 쌓인 책은 ‘책이 아닌 교재’입니다. 학교에서 다루는 수험서가 책방마다 가장 많이 있습니다. 문제집과 참고서가 책방에서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지식을 더 잘 익혀서 시험문제를 더 잘 풀고는 점수를 더 잘 받도록 꾀한다는 교재가 책방마다 가장 많아요.
《몽실 언니》에서는 “몽실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도 그 애처럼 꽃을 꺾어 팔아서라도 떳떳하게 살까 봐.’ 여태 몽실이 살아온 건 모두 부끄러운 일뿐인 것 같았다. 얻어 먹고 살아온 것만 같았다. 몽실은 찬거리를 사들고 부랴부랴 꽃 파는 애한테 갔다. 그러나 거기 꽃 파는 애는 없었다(188쪽).”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몽실이는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합니다. 몽실이는 어릴 적부터 배를 곯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씁니다. 어린 동생을 바라지합니다. 늙고 아픈 아버지를 수발합니다. 몽실이한테는 책이 없고, 교과서도 없습니다. 시험공부도 대학교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 삶이 있습니다. 살아가려는 몸짓이 있습니다. 살면서 누리고 싶은 사랑이 있습니다. 살면서 누리고픈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빛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책방마다 교재가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하니까, 우리들은 문제집과 참고서를 늘 옆구리에 끼면서 지낼 때에 아름답다고 할 만한지 궁금하곤 해요.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다루니, 열두 해에 걸쳐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과서만 잘 익히면 될는지 궁금하곤 해요.
온누리에는 왜 새로운 책이 날마다 꾸준히 태어날까요. 이웃나라에서도 한국에서도 왜 꾸준하게 새로운 책을 펴낼까요. 교과서가 있어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가르치지만, 왜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라고 이야기하는 어른이 많을까요.
《몽실 언니》는 어린 몽실이가 마흔 살을 살며시 넘은 어느 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끝을 맺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셔요. 열다섯 살인 내가 앞으로 마흔 살 언저리에 이르면,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요. 스무 살인 내가 앞으로 마흔 살 즈음이 되면, 어디에서 어떤 눈빛으로 이웃과 마주할까요.
“난남은 안네를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몽실이도, 죽은 금년이 아줌마도, 한국의 모든 여자들은 안네 같다고 생각했다(261쪽).”와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되새깁니다. 온누리에서 새로 태어나는 책은 한결같이 한 가지를 밝히려는 뜻이리라 느낍니다. 바로 ‘사랑’을 밝히려고 하지 싶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길을 밝히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길을 밝히며, 나와 네가 우리로 어깨동무하면서 새롭게 빚을 사랑을 밝히려는 책이지 싶습니다. 4347.6.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책과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