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를 헤아려 본다


  도깨비를 다루는 어린이책이 아주 많다. 그러나 도깨비를 제대로 살피거나 알아보거나 생각한 끝에 선보이는 어린이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그나마 제대로 도깨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도깨비불’을 그린다든지 ‘수수빗자루’를 그리는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도깨비는 몸이 없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몸이 없지만 어느 몸이든 입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도깨비는 돌에도 깃들 수 있고 꽃이나 나무에도 깃들 수 있다. 사람이 무서워하는 ‘지구별에 없는 어떤 괴물’로 나타날 수 있다. 도깨비 스스로 아무런 몸이 없기 때문에 어떤 몸이든 될 수 있다.

  도깨비는 밥을 먹지 않는다. 도깨비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언제까지나 살아간다. 아니, 도깨비한테 ‘살아간다’는 말은 걸맞지 않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도깨비이기 때문에, 도깨비한테는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과 달리 뚜렷한 몸이 없는 도깨비인 만큼, 도깨비를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다르게 말할밖에 없다.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차원 세계’에서는 도깨비를 쳐다볼 수 없다. 도깨비는 사람과는 다른 ‘차원 세계’에서 산다. 그런데, 도깨비가 사람과 이야기(소통)를 하고 싶을 때에는 사람 몸을 빌어서 나타나든지, 이것저것 도깨비와 가까이 있는 어느 것에든 깃들어서 나타난다. 그래서, 도깨비를 보았다는 사람은 ‘도깨비가 몸을 빌어서 깃들어서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진짜 도깨비’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하고 만다.

  도깨비는 생명체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다. 도깨비는 빛이나 넋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깨비는 밥을 먹을 일이 없고, 똥오줌을 눌 일이 없으며, 땀을 흘리지도 않는다. 웃음도 눈물도 따로 없다. 그렇지만 ‘모든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도깨비한테는 아픔이나 슬픔이나 잠이 없다. 삶과 죽음이 따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도깨비인데, 도깨비한테 ‘뿔을 씌우’고 ‘짐승가죽옷을 입히’며 ‘우락부락한 얼굴’에다가 ‘털북숭이’로 그린다면, 이를 어찌 도깨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요물이나 요괴쯤으로 말할 수는 있으리라.

  어쩌면,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말한 ‘도깨비’는 ‘외계인’일 수 있다(외계인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보기에 알 수 없는 ‘님’이 도깨비였다고 해야 옳겠지만. 그러니까 먼먼 옛날 사람한테는 외계인도 도깨비 가운데 하나로 여겼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화책 《설희》가 다룬 광해군 이야기에 ‘유에프오 기록’이 있다고 나오는데, 지식인이나 권력자 가운데 한겨레에서 책에 글로 남긴 가장 오래된 기록일는지 아닐는지 모르나, 한겨레 골골샅샅에서 모든 시골사람은 ‘사람과 다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으레 보았으리라 느낀다. 알 수 없기에 ‘도깨비’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할까.

  어린이책에는 언제나 그림을 많이 넣는데,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부디 ‘도깨비’를 비롯해 이것저것 제대로 살피고 헤아릴 뿐 아니라 알아보고 생각할 수 있기를 빈다. 이쁘장하게 그리거나 우락부락 그린대서 ‘그림’이 되지 않는 줄 깨닫기를 빈다. 나도 앞으로 한국말사전에 ‘도깨비’ 낱말풀이를 넣어야 할 텐데, 아직 뚜렷하게 갈피를 잡지는 않았다. 더 살피고 알아보아야겠지.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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