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지를 끌고 비룡소의 그림동화 46
도날드 홀 글, 바바라 쿠니 그림, 주영아 옮김 / 비룡소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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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 달구지를 끌고

 도날드 홀 글

 바바라 쿠니 그림

 주영아 옮김

 비룡소 펴냄, 1997.11.20.



  아침에 일어나서 멸나물 잎사귀를 하나 똑 뜯습니다. 지난해까지 우리 집 멸나물을 제대로 못 느끼며 살았습니다. 이 풀을 먹을 적에도 냄새나 맛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잎사귀 하나를 코에 대고 큼큼 냄새를 맡습니다. 참말 남다른 냄새가 있구나 싶습니다. 입에 넣어 혀로 한 입 무는데 새삼스레 남다른 맛을 느낍니다. 먼 옛날 누군가 이 풀한테 ‘멸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을 알겠습니다. 멸나물을 약풀로 삼던 한약방에서 한자를 빌어 ‘어성초’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도 알겠습니다. 멸나물에서는 물고기 냄새가 납니다. 비린내라면 비린내이고 물고기 냄새라면 물고기 냄새입니다.



.. 10월이 되자, 농부는 소를 달구지에 매었어. 일 년 내내 가족 모두가 기르고 만든 것 가운데서 남겨 둔 것들을 달구지에 가득 실었지 ..  (3쪽)





  우리 집 뒤꼍에는 갯기름나물이 자랍니다. 갯기름나물을 처음 알아본 해에는 몇 잎만 살짝 뜯었습니다. 널리 퍼지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지난해에도 몇 잎만 살짝 뜯었고, 그러께에도 몇 잎만 가만히 뜯었지요. 그리고 올해에는 제법 많이 뜯습니다. 올해에는 퍽 여러 곳에 씩씩하게 퍼졌거든요.


  갯기름나물은 줄기가 통통합니다. 통통한 줄기까지 톡 소리 나게 끊어서 입에 넣으면 해사한 냄새와 맛이 온몸으로 퍼집니다. 도시로 마실을 갔다가 저잣거리에서 갯기름나물을 한 꾸러미 사서 먹을 적에는 이런 냄새나 맛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참말, 풀을 먹으려면 ‘내가 가꾸는 보금자리에서 돋는 풀’을 먹어야 제맛이 나는구나 싶습니다.


  쑥잎을 먹거나 갓잎을 먹거나 유채잎을 먹을 적에도 그렇습니다. 고들빼기잎이나 씀바귀잎을 먹을 적에도 그렇습니다. 제비꽃잎이나 괭이밥꽃잎을 먹을 적에도 그래요. 길에서 뜯는 풀과 집에서 뜯는 풀이 다릅니다.


  다만, 어디에서 뜯는 어느 풀이든 스스로 즐겁게 맞이하려는 생각이면 ‘다르면서 즐겁고 재미난 냄새와 맛’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우리 집 풀은 우리 집 풀대로 반가우면서 맛나고, 이웃마을 풀은 이웃마을 풀대로 반가우면서 맛납니다.



.. 달구지가 가득 차자, 농부는 아내와 아들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어. 그리고 농부는 소를 몰고 열흘 동안 걸어갔단다 ..  (10쪽)





  도날드 홀 님이 쓴 글에 바바라 쿠니 님이 그림을 그린 《달구지를 끌고》(비룡소,1997)를 읽습니다. 그림책 《달구지를 끌고》는 미국 시골마을에서 살던 네 식구가 가을에 한 차례 도시로 마실을 다녀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가을과 겨울과 봄과 여름에 네 식구가 즐겁게 일하고 쉬고 놀고 노래하다가, 한가을인 시월을 맞이해 소한테 달구지를 씌우고는, 열흘에 걸쳐 천천히 걸어서 도시로 나가서 ‘시골에서 거둔 것’을 내다 판 뒤, 사탕과 주머니칼과 바늘을 넣은 무쇠솥 하나를 막대기에 걸쳐 어깨에 얹고는 다시 열흘에 걸쳐 천천히 시골 숲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 겨우내 농부는 새 멍에를 깎아 만들고, 새 달구지를 만드는 데 쓸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널빤지를 쪼갰어 ..  (29쪽)



  숲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숲집에서 살던 사람이지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몇몇 임금과 신하와 지식인과 사대부와 이런저런 사람들을 빼고는, 그러니까 1%나 0.1%에 이르는 사람들을 빼고는 모두 숲집에서 살던 사람이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조선이라든지 고려라든지 고구려라든지 발해라든지 부여라든지 백제라든지 가야라든지 신라라든지 옛조선이라든지, 이런저런 이름을 굳이 안 붙이더라도, 누구나 숲집에서 살았어요. 옛날에는 어느 마을이든 모두 숲이었어요. 마을과 마을 사이는 모두 숲이었고, 마을도 숲을 이루었고, 집집마다 숲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숲을 없앤 궁궐에서 지냈습니다. 아무래도 정치권력과 숲은 걸맞지 않은 듯해요.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나무도 풀도 꽃도 없앤 시시하고 따분한 곳에 건물만 으리으리하게 올린 탓에, 늘 서로 다투거나 싸웠지 싶어요. 서로 다투거나 싸우는 터라 전쟁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꾀하면서 ‘숲사람’을 들볶았지 싶어요.




.. 5월이 되자 농부의 가족은 감자와 순무와 양배추를 심었어. 그 사이 사과나무꽃이 피었다 지고, 꿀벌들은 깨어나서 ..  (36쪽)



  숲집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숲은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숲집에서 지내는 사람한테는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숲은 어느 것이든 베풉니다.


  먹고 입고 자는 동안 쓸 모든 살림살이를 숲에서 얻습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모두 매한가지예요. 도시사람이기에 흙이 없이 밥을 먹지 못합니다. 대통령이나 임금이기에 싱그러운 바람을 안 마시면서 살 수 있지 않습니다.


  밥이 나오려면 들과 숲이 있어야 합니다. 들과 숲에는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풀과 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수많은 벌레와 새와 짐승이 어우러지고 냇물이 흐릅니다. 냇물에는 물고기가 삽니다. 내와 못과 바다가 아름다이 만납니다.


  숲사람한테는 ‘나라(정치)’가 없습니다. 숲사람한테는 ‘사회(전쟁)’가 없습니다. 숲사람한테는 ‘책(교육)’이 없습니다. 그러나, 숲사람은 누구하고나 어깨동무를 하는 이웃입니다. 숲사람은 스스로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도시에서 정치를 하거나 사회를 꾸리거나 경제를 만지거나 교육을 벌인다는 이들은 온갖 지식을 주무릅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정치·사회·경제·교육을 하는 이들은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지 못해요.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누리는 아름다움을 도시 이웃한테 나누어 줍니다. 시골에도 도시에도 숲이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저마다 숲을 보듬고 아낄 때에 아름답습니다. 숲에서 이는 바람을 마시면서 몸이 튼튼합니다. 숲에서 나는 밥을 먹으면서 마음을 살찌웁니다. 숲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마주하면서 넋이 맑게 빛납니다. 4347.6.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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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6-10 09:18   좋아요 0 | URL
멸나물 잎사귀에서, 역시 물고기 냄새가 나는군요.^^
바바라 쿠니 님의 그림이 글과 어울려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책인
<달구지를 끌고>를 또 이렇게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느낌글로 한번 더 읽으니
참 좋은 아침입니다~*^^*

숲노래 2014-06-10 09:44   좋아요 0 | URL
냄새와 맛이 재미있더라구요 ^^
이름을 떠올리면서
즐겁게 아침잎을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