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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국어사전
채인선 지음 / 초록아이 / 2008년 2월
평점 :


책읽기 삶읽기 163
한국말을 가르칠 줄 모르는 어른들
― 나의 첫 국어사전
채인선 글
초록아이 펴냄, 2008.1.25.
동화를 쓰는 채인선 님은 2005년에 《아름다운 가치 사전》을 쓰고, 2008년에 《나의 첫 국어사전》을 씁니다. 모두 1400 낱말에 이르는 올림말을 담고, 다섯 살부터 여덟아홉 살 어린이까지 보도록 책을 엮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한국말이 따로 있는 나라이지만, 막상 어린이가 한국말을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올바르게 배우도록 이끄는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런 흐름에서 《나의 첫 국어사전》은 여러모로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이름은 왜 “나의 첫 국어사전”일까요? ‘나의’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내’입니다. ‘나의’는 일본말 ‘私の’를 엉터리로 옮긴 번역 말투입니다. ‘너의’나 ‘우리의’도 모두 잘못 쓰는 말투입니다. 한국말은 ‘네’이고 ‘우리’입니다. 영어사전에서 ‘my’를 찾아보면 ‘내’라 풀이하지 않고 ‘나의’로 풀이해요. 영어사전도 한국말을 올바르게 다루지 못해요. 어린이가 처음 볼 한국말사전이라는데, 책이름부터 어긋나니 아쉽습니다.
책을 들여다보면, ‘같다’를 풀이하며 “내 신발이 빨간색이고 동생 신발도 빨간색이면” 하고 적습니다. 이런 낱말풀이에서는 “내 신발”과 같이 바르게 적습니다. 그런데 책이름은 왜 엉터리가 되어야 했을까요?
올림말을 살피면 굳이 안 실어도 될 낱말이 수두룩합니다. 짐승을 가리키는 이름은 ‘한국말사전’에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교통’이나 ‘예술’이나 ‘학교’ 같은 낱말을 “첫 한국말사전”에 왜 담아야 할까요? 주욱 살피면, “가방 가수 감옥 건물 고속도로 공원 공장 과자 과학자 광고 교실 교통 구급차 군인 금붕어 기계 기록 기린 냉장고 다람쥐 달 달걀 닭 독수리 동물원 동요 동화 돼지” 같은 올림말은 덜어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다 알 만한 낱말은 “첫 한국말사전”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첫 한국말사전”은 아이들이 한국말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슬기롭게 배우도록 돕는 책이 되어야 알맞습니다.
책에 실은 모든 낱말을 살필 수는 없으나, 낱말풀이가 올바르지 않은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짚어 봅니다.


[가깝다]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의 거리가 짧은 거예요
→ 낱말풀이에서 ‘-의’를 함부로 자꾸 씁니다. 이 낱말풀이에서는 ‘-의’를 덜어야지요. 그리고 ‘거(것)’를 지나치게 씁니다. ‘것’을 자꾸 쓰는 말버릇은 우리 말투가 아니에요. 번역 말투입니다.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한국말 이야기인 만큼, 이런 말투와 말버릇을 모두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가꾸다] 어떤 것을 돌보고 보살피는 거예요
→ ‘가꾸다’를 ‘돌보고 보살피는’이라 풀이하는데, ‘돌보다’와 ‘보살피다’는 무엇일까요? 채인선 님은 ‘돌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는 거예요”로 풀이하고, ‘보살피다’는 “정성껏 보호하고 돕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뒤죽박죽 돌림풀이입니다. 《나의 첫 국어사전》은 바로 이런 낱말들, ‘가꾸다·돌보다·보살피다’가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가운데] 가운데는 어떤 곳의 중간이에요
→ ‘가운데’를 ‘중간(中間)’이라는 한자말을 써서 풀이하면 어쩌지요? 아이도 어른도 이런 낱말풀이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가수] 노래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입니다
→ 아이들도 ‘가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 테지요. 이런 낱말은 “첫 국어사전”에 실을 만하지 않습니다. 낱말풀이에서도 “직업으로 가진 사람”과 같은 글이 올바르지 않습니다. ‘가지다’라는 낱말은 이처럼 쓰지 않습니다. 이 글은 “직업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라 적든지, 글 뒤쪽을 “직업인 사람입니다”라 적어야 올바릅니다.
[가장자리] 어떤 것의 둘레나 주위를 말해요
→ ‘둘레’는 무엇이고, ‘주위(周圍)’는 무엇일까요? 어른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도 이런 낱말을 죄다 돌림풀이로 적을 뿐입니다. 두루뭉술한 돌림풀이는 안 해야 합니다.

[가정] 가족들이 한집에 모여 함께 생활하는 것을 가정이라고 해요
→ 채인선 님은 ‘식구’라는 한국말을 안 씁니다. ‘가족(家族)’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결혼(結婚)’도 일본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은 ‘식구’이고 ‘혼인’입니다. 왜 ‘혼인신고서’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왜 예부터 ‘혼인 잔치’나 ‘혼례식’이라 했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한국말을 가르치거나 들려줄 적에는 한국 문화와 삶도 함께 짚고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감사] 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 한국말은 ‘고맙다’입니다. ‘感謝’라는 한자말을 굳이 쓸 일이 없기도 하고, 이 사전에 넣을 일도 없습니다.
[감추다] 어떤 물건을 가리거나 숨기는 거예요
→ ‘가리다’와 ‘숨기다’를 써서 ‘감추다’를 풀이합니다. 이 사전에서 ‘숨기다’를 보면 “어떤 것을 안 보이게 하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숨기다’를 다시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뜻을 알 만한데, 그러면, ‘감추다’와 ‘가리다’와 ‘숨기다’는 또 어떻게 다른 낱말일까요?

[강하다] 바람이 강하다는 것은 바람이 몹시 세고 빠르게 부는 거예요
→ 외마디 한자말 ‘强하다’를 풀이하면서 한국말 ‘세다’를 넣습니다. 한국말 ‘세다’를 한자로 옮기면 ‘强하다’이지요. 이리하여, 채인선 님은 ‘세다’를 “강하고 힘이 많은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건널목] 찻길이나 기찻길을 건너기 위해 만든 장소입니다
→ 채인선 님은 한자말 ‘장소(場所)’를 자주 씁니다. 한국말 ‘곳’과 ‘데’와 ‘자리’를 쓰지 않습니다. 한국말을 알려주거나 밝히는 사전이 되어야 합니다.
[겉] 수박의 겉은 녹색이고
→ ‘녹색(綠色)’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초록(草綠)’은 중국 한자말입니다. 한국사람은 어떤 낱말을 써야 할까요? 한국말은 ‘풀빛’입니다.
[게으르다] 한 게으른 아이가 일하기 싫어하다 소가 되었다는
→ “한 게으른 아이”는 없습니다. 영어 번역 말투로 이런 보기글을 넣으면 어떡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게으른 아이가”라 적거나 “게으른 아이 하나가”로 바로잡아야겠습니다.


[계곡] 산과 산 사이에 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 채인선 님은 한국말 ‘골짜기’는 이 책에서 안 다루고, 한자말 ‘溪谷’만 다룹니다. ‘계곡’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풀이합니다. 한국사람은 어떤 낱말을 써야 할까요? 《표준국어대사전》 말풀이가 잘 보여주지요?
[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계절이라고 합니다
→ 채인선 님은 한국말 ‘철’을 이 책에서 안 씁니다. 한자말 ‘季節’만 다룹니다. 그런데 ‘철’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 계절(季節)”로 풀이해요. 어린이 사전이나 어른 사전이나 모두 엉터리입니다.
[고장] 기계나 물건이 잘못되어 쓸 수 없게 된 거예요
→ 한국말 ‘고장’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한자말 ‘故障’은 한국말 ‘망가지다’로 다듬어야겠지요.
[김치]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에요. 김치는 빨갛고 매워요
→ 한국사람이 고추를 먹은 지 얼마 안 됩니다. 김치를 ‘빨갛고 맵’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부터 김치는 빨갛고 맵지 않았습니다. 예부터 김치란 소금에 절인 남새였어요. 더욱이, 한국사람이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김치는 겨울을 나면서 누리던 먹을거리입니다. 문화와 역사와 삶을 제대로 살피고 바라보면서 올바로 다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빨간김치’를 널리 먹는다 하더라도, 김치는 ‘하얀김치’가 바탕이요, 소금에 절인 남새라는 밑뜻에서 테두리를 넓힐 뿐입니다.

[나쁘다] 좋지 않은 거예요
→ ‘나쁘다’를 이렇게 풀이하면 ‘좋다’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채인선 님은 ‘좋다’를 “무엇이 마음에 들 때나 도움이 될 때 좋다고 해요”로 풀이합니다. “나쁘다 = 좋지 않다”처럼 풀이하는 일은 바로잡아야겠습니다.
[닮다] 모양이나 행동이 비슷한 거예요
→ 채인선 님은 ‘비슷하다’를 “똑같지는 않지만 서로 같아 보이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같다’는 “키 차이가 없으면 키가 같다고 합니다”와 같이 적습니다. 이래저래 말뜻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더럽다] 때가 묻었거나 지저분한 거예요
→ ‘더럽다’와 ‘지저분하다’는 다른 낱말입니다. 다른 두 낱말을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더하다] 어떤 것을 다른 것에 합치는 거예요
→ 한국말 ‘더하다’를 풀이하면서 한자말 ‘合치다’를 쓰면 어떡하지요?

[덥다] 날씨가 더우면 북극곰은 하루 종일 물속에 들어가 있어요
→ ‘덥다’라는 낱말을 보여주면서 동물원 북극곰을 이야기합니다. 동물원은 어떤 곳일까요? 한국에서 살 수 없는 짐승을 억지로 데려와서 가둔 우리가 동물원인데, 이러한 동물원을 보여주는 한국말사전은 아이한테 어떤 넋을 밝힐는지 모르겠습니다.
[두렵다] 어떤 것이 무섭고 걱정이 되는 거예요
→ ‘두렵다’를 풀이하면서 ‘무섭다’라는 낱말을 쓰는데, 채인선 님은 ‘무섭다’를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서로 옹글게 돌림풀이가 됩니다. 참말 아무것도 알 길이 없습니다.
[마련]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는 거예요
→ ‘마련하다’라는 낱말은 ‘장만하다’와 ‘갖추다’를 함께 묶어서 살필 낱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찬찬히 살피지는 않고 ‘준비(準備)’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채인선 님은 ‘준비’를 “필요한 일을 미리 해 놓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미리 해 놓는” 일이 ‘준비’라면 “미리 준비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모습] 사람의 생긴 모양이에요
→ ‘모습’을 풀이하면서 ‘모양’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다시 ‘모양’을 찾아보면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할 때 써요”로 풀이합니다. 안타깝지만, 이런 낱말풀이를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변하다] 어떤 것이 처음과 다르게 되는 거예요
→ 외마디 한자말 ‘變하다’입니다. 한국말은 ‘바뀌다’나 ‘달라지다’입니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말을 배워야 한국사람입니다.
[실수] 조심하지 않아 일을 잘못한 거예요
→ ‘失手’는 한자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이 한자말을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으로 풀이합니다. 채인선 님은 《표준국어대사전》 낱말풀이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자, 그러면 여쭙겠습니다. ‘잘못’은 무엇인가요?
[죽다] 살아 있지 않은 거예요
→ ‘죽다’를 ‘살다’와 맞서는 낱말로 풀이하면, ‘살다’는 또 무엇일까요?
[지루하다] 재미 없는 시간이 계속되는 거예요
→ 채인선 님은 ‘재미 없는’이라 띄어서 적으나, ‘재미없다’는 한 낱말입니다. ‘재미없다’와 ‘지루하다’는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그리고, 다른 한국말 ‘따분하다’는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요?
[피곤] 몸이 지치고 힘든 거예요
→ ‘疲困’은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이나 마음이 지치어 고달픔”으로 풀이합니다. 채인선 님은 ‘고달픔’을 ‘힘듦’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또 여쭙겠습니다. ‘지치다’와 ‘힘들다’와 ‘고달프다’는 무엇을 뜻할까요?

나는 《나의 첫 국어사전》이라는 책이 아주 엉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쁘게 잘 엮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국말을 다루는 눈길이나 손길이나 매무새나 넋은 그리 아름답지 않구나 싶습니다. 한국말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마는 《나의 첫 국어사전》입니다. 한국말을 아이들한테 슬기롭게 보여주지 않는 《나의 첫 국어사전》입니다.
아직 한국에서 어린이가 볼 만한 한국말사전이 없기는 합니다만, 제대로 영글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국말을 잘못 다루거나 엉망으로 다루는 모습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이러한 잘못을 옳게 들여다보면서 바로잡을 수 있는 어른은 몇이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무쪼록 《나의 첫 국어사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올림말을 가다듬고 낱말풀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제대로 엮은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는 ‘어린이 한국말사전’이 나와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4347.5.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