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5.5.
: 놀이터 가는 자전거
- 오늘 두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 마실을 할까 생각하다가, 막상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서니 바람이 되게 불어서 그만둔다. 드세게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한 시간 반 즈음 자전거를 달리면 아무래도 힘이 많이 빠져 저녁밥을 제대로 못 챙겨 주겠구나 싶다. 바닷가 마실은 이튿날이나 모레로 미루기로 하고, 면소재지 놀이터까지만 간다.
- 아이들도 바람이 드센 줄 알 테지.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나서 큰아이한테 묻는다. “어떻게 할까? 빵 먹고 싶니?” “응.” “그러면 가까운 데로 가자.” “어디로?” “음, 가면 알지.” 자전거를 슬슬 몬다. 면소재지 골목을 살살 돌면서 도화초등학교 쪽으로 간다. 초등학교 어귀 길이 무너졌다. 크고 무거운 자동차가 지나가다가 무너진 듯하다. 초등학교 어귀에 무너진 길은 곧바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날마다 드나드는 길인데. 자전거를 학교 안으로 몬다. 그런데 놀이터가 있을 자리에 놀이터가 없다. 뭐지? 두리번거리니, 놀이터 자리가 바뀌었다. 나무그늘에 있던 놀이터를 땡볕이 내리쬐는 자리로 옮겼다. 왜 옮겼을까. 아이들이 땡볕에서 놀아야 좋다고 여기는가? 아이들이 땡볕에서 조금만 놀고 ‘더우니 얼른 집에 가도록 하려’는 뜻인가? 참 너무한다. 나무그늘을 누리면서 흙을 밟는 놀이터가 얼마나 좋은데, 나무그늘 하나 없는 땡볕 운동장 한켠에 잔돌을 새로 깔아 억지스레 놀이터를 만드는 짓을 왜 할까.
- 땡볕 놀이터에 면소재지 고등학생 여럿이 앉아서 논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초등학교 놀이터로 못 가고 유치원 놀이터 쪽으로 간다. 그런데 유치원 놀이기구에도 면소재지 고등학생 여럿이 앉아서 논다. 두 아이는 살짝 망설이다가 그냥 놀기로 한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예서 무엇을 하나 싶다가도, 시골 면소재지에서 이 아이들이 가서 쉬거나 놀 만한 데가 따로 없겠구나 싶으니, 이 아이들도 딱하다. 참말 갈 곳이 없어 초등학교 놀이터와 유치원 놀이터 사이에서 어정거리니까. 시골 푸름이인데 바다에 간다거나 숲에 갈 생각을 못한다.
- 오래된 시소를 치우고 새 시소를 놓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는 아예 없앴다. 놀이터에 그네가 없는 모습도 참 서운한데, 애먼 놀이기구 하나를 없앴을 뿐 아니라 땡볕 자리로 옮기다니. 아이들이 못 놀게 하려는 뜻으로만 보인다. 어른들이 하루아침에 바꾼 놀이터를 아이들은 고스란히 따라야 하지 않는가. 땡볕에서 놀아야 하는 두 아이가 고단하다. 얼마 놀지 않았으니 힘든 티가 물씬 난다. 땡볕을 받으며 시소를 타고 뼈다귀집을 오르내리니 얼굴이 곧 빨갛게 탄다. 안 되겠다. 얼른 집으로 가야겠구나.
- 운동장 한쪽 끝에 끈을 잇고는 노란 천을 묶었다. 세월호 사고 때문에 매달았구나 싶다. 노란 끈은 몇 없다. 그만큼 이 작은 시골학교 아이들 숫자가 적다는 뜻이지. 앞으로는 도화면에 있는 초등학교 놀이터에는 갈 일이 드물겠다고 느낀다. 나무그늘에 걸상도 없고, 나무그늘 놀이터도 사라졌으니 재미없다. 맞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집으로 가는 길에 수레에서 잠든 작은아이는 집에 닿아 잠자리에 눕히니 눈을 번쩍 뜬다. 보라야, 낮잠을 자면 좋으련만, 기껏 살살 안아서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여미는데 이렇게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면 네 아버지는 허리가 너무 결리는구나.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