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비 마루코짱, 모모는 엉뚱해, 마루코는 아홉 살



  한국말로는 《모모는 엉뚱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일본 만화가 있다. 이 이름을 보고는 어떤 만화인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이름 《치비 마루코짱(ちびまる子ちゃん)》을 한국판에서 요모조모 바꾸어서 붙였더라. 책이름도, 주인공 이름도 왜 이렇게 바꾸어야 했을까. 한국 어린이한테 보여주는 만화영화로는 〈마루코는 아홉 살〉이라는 이름을 쓴다. 한국에서 나오는 만화책으로도 만화영화로도 ‘치비’라는 낱말을 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만화를 그린 이 이름이 ‘사쿠라 모모코’이니, ‘모모코’에서 ‘모모’를 따서 한국판 만화책 이름으로 삼았다고도 여길 수 있다.


  그동안 일본 만화영화를 아이들과 더러 보곤 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한국말로 흐르는 만화영화’를 찾아서 본다. 한국에서도 이럭저럭 이 만화영화를 옮겨서 보여주는구나 싶다. 그런데 퍽 오래된 일본 만화영화를 요즈음에도 그대로 보여주지 싶다. 이렇게 묵은 만화영화를 이렇게 보여주기도 하는구나 싶어 놀라는 한편, 한국에서는 이처럼 수수하며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얼마나 삭히거나 보여주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국에는 《안녕 자두야》가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안녕 자두야》는 만화책으로도 만화영화로도 많이 딸린다. 억지스레 웃기려는 대목이 많고, 거친 말투라든지 떼를 부리는 모습이 잦다고 느낀다. 식구들이 오순도순 지내는 사랑을 느끼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 치고받거나 툭탁거리더라도 《아따 맘마》처럼 푸근한 맛이 없는 《안녕 자두야》라고 느낀다. 만화책을 몇 권 읽어 보아도 《안녕 자두야》에 나오는 말마디는 도무지 아이한테 보이거나 읽히기에 알맞지 않다. 참말 아이들이 이런 말투대로 동무를 사귀거나 놀아야 할까?


  《치비 마루코짱》에 나오는 마루코네 다른 동무 가운데 ‘사내’ 아이 말투는 한국 아이들 못지않게 거칠다. 그러나, 주인공인 마루코는 다르다. 주인공인 마루코는 곧잘 엉뚱하게 꿈에 젖곤 하지만, 수수하며 착하고 예쁘다. 공주님 같은 예쁨이 아니라 수수하게 맑은 마음결이 예쁘다. 그러고 보면 거칠게 노는 아이가 나오는 《하나다 소년사》조차 주인공 ‘사내’ 아이가 보여주는 마음씨나 몸가짐은 밑바탕이 착하고 맑다. 참 그렇다.


  나한테 아이가 없다면, 아이가 없이 그저 만화만 보았다면, 아이가 만화를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아 찬찬히 즐기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이런 만화이든 저런 만화이든 자잘한 말씨와 몸가짐과 움직임과 줄거리까지 두루 살피지는 못했으리라고 문득문득 깨닫는다. 4347.5.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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