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804) 존재 1 : 전쟁 장사라는 것도 존재
전쟁은 이타적인 이유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대개 주도권 다툼이나 비즈니스 때문에 일어납니다. 물론, 전쟁 장사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아룬다티 로이/박혜영 옮김-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81쪽
한자말 ‘존재(存在)’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섯 가지로 풀이합니다. “(1) 현실에 실제로 있음 (2)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 만한 두드러진 품위나 처지 (3) (철학)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외계(外界)에 객관적으로 실재함 (4) (철학) 형이상학적 의미로, 현상 변화의 기반이 되는 근원적인 실재 (5)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객관적인 물질의 세계. 실재보다 추상적이고 넓은 개념이다” 보기글은 다섯 가지 나옵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악명 높은 존재
독보적인 존재
무시하지 못할 존재가 되었다
‘존재’와 비슷하게 쓰는 다른 한자말 가운데 ‘실존(實存)’이 있는데, 이 낱말은 “(1) 실제로 존재함 (2) (철학) 사물의 본질이 아닌, 그 사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 스콜라 철학에서는 가능적 존재인 본질에 대하여 현실적 존재를 뜻한다 (3) (철학) 실존 철학에서,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를 뜻한다고 해요.
다른 한자말 ‘실재(實在)’는 “(1) 실제로 존재함 (2)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 세계 (3) (철학) 관념론에서, 사물의 본질적 존재”를 뜻한다고 해요.
‘존재’를 다루는 한국말사전은 ‘실재’를 빌어 풀이합니다. 그런데 ‘실재’는 “실제로 존재함”을 뜻한다고 적어요. 그러면, 두 낱말은 어떻게 생각하거나 알아야 할까요. ‘실존’이라는 낱말은 또 어떻게 살피거나 헤아려야 할까요. “실제로 있음”을 가리키는 ‘존재’이니, “실제로 존재함”이란 “실제로 실제로 있음”인 셈인지요.
전쟁 장사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 전쟁 장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 전쟁 장사도 있습니다
→ 전쟁 장사꾼도 있습니다
→ 전쟁을 장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전쟁을 장사하기도 합니다
…
있으니 ‘있다’고 말합니다. 없으니 ‘없다’고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이고 없는 그대로입니다. 느끼는 그대로이고 보는 그대로입니다. 우리 말뿐 아니라 온누리 어느 나라 말도 모두, 있는 그대로 말하고 듣는 그대로 적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다
→ 신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다
→ 신이 있다고 받아들이지 않다
→ 신은 있지 않다고 생각하다
→ 신은 없다고 생각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간다
→ 사람은 사회를 이루며 산다
…
외국말로 된 책을 한국말을 옮기는 자리에서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 ‘있다’를 어떤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한자말 ‘존재’는 어떤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두 가지 낱말은 다른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같은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하느님이 있다”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다른 낱말로 옮겨야 하나요.
악명 높은 존재
→ 악명 높은 사람
→ 끔찍하다는 사람
→ 끔찍한 이름이 높은 사람
독보적인 존재
→ 남보다 앞선 사람
→ 도드라지게 뛰어난 사람
→ 매우 뛰어난 사람
…
‘존재’라는 낱말을 쓴 자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이라고 말할 자리에 흔히 끼어듭니다. 아니, 사람이니까 ‘사람’이라고 말하면 되는데, 구태여 ‘존재’라고 가리키는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사람을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하나요. 우리는 왜 사람을 ‘존재’라고 가리켜야 하나요. 사람을 ‘사람’이라고 가리키면 어딘가 안 어울린다고 느끼나요. 어딘가 어설프거나 뭔가 안 들어맞는가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 ‘사람’이라는 낱말을 못 쓰지 않나 궁금합니다. 우리 삶터를 ‘있는’ 그대로 껴안지 못하니 말과 글도 ‘있는’ 그대로 못 쓰지 않나 궁금합니다. 스스로 얼과 넋을 알뜰히 가꾸는 마음씨가 옅으니, 말과 글을 알맞춤하게 쓰는 매무새조차 잃지 않나 궁금합니다.
무시하지 못할 존재
→ 얕잡을 수 없는 사람
→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
…
철학을 하건 사상을 하건 언론을 하건 문학을 하건 교육을 하건 예술을 하건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삶을 가꾸면서 일을 하고 놀이를 즐깁니다. ‘존재’라는 한자말을 쓴다고, 또 ‘실존’이라는 한자말을 쓴다고, 여기에다가 ‘실재’라는 한자말을 쓴다고 철학이 더 깊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한자말 때문에 사상이 더 넓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한자말을 써야 문학이 더 맛깔스럽지 않아요.
학문을 살리고 마을을 살리며 넋과 사랑과 꿈을 살리는 자리를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4337.7.7.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전쟁은 남을 사랑할 때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으레 주도권 다툼이나 돈벌이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전쟁 장사라는 짓도 있습니다
“이타적(利他的)인 이유(理由)로”는 “남을 사랑해서”나 “남을 사랑할 때”로 다듬습니다. ‘대개(大槪)’는 ‘거의’나 ‘으레’로 손질하고, ‘비즈니스(business)’는 ‘장사’나 ‘돈벌이’로 손질합니다. ‘물론(勿論)’은 ‘다들 알겠지만’이나 ‘그리고’로 고쳐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