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김야원 사진 / 이담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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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70



골목집에 깃든 사람 손길을

― HUMAN(휴먼)

 김야원 사진

 이담북스 펴냄, 2014.4.22.



  골목집은 골목에 있는 집입니다. 골목에 있는 집은 서로 담을 맞댑니다. 담이 없이 집만 지었으면 서로 마당을 나눕니다. 담이 있어도 까치발로 서면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터에 작게 지은 골목집이기에 담을 높이면 햇볕이 골고루 들어오지 않습니다. 바람을 알맞게 막고 햇볕을 살뜰히 받아들일 만한 높이로 담을 세웁니다. 길손이 함부로 들여다보지 않을 만한 높이로 담을 올리고, 집안에서 바깥을 살짝 내다볼 만한 높이로 담을 쌓습니다.


  나중에 층을 올리기는 하지만, 골목집은 으레 한 층으로 짓습니다. 서로 한 층 높이로 어우러지면서, 여름에도 겨울에도 햇볕을 나누어 누립니다. 햇볕을 더 누리거나 덜 누리지 않습니다. 함께 누리고 함께 나눕니다. 작은 사람들은 작은 사랑을 작은 손길로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골목집 어디나 햇볕이 골고루 들어오기에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쪽에 꽃그릇을 놓거나 나무를 심거나 꽃밭이나 텃밭을 꾸밉니다. 흙 한 줌을 알뜰히 가꾸고, 풀 한 포기를 살뜰히 건사합니다. 버려도 될 만한 흙은 없으며, 없어도 될 만한 풀은 없습니다. 모든 흙은 모든 풀과 나무를 살리면서 사람을 살립니다. 모든 풀과 나무는 모든 바람과 빗물을 살리면서 사람을 살려요.





  자동차 드나드는 큰길은 시끄럽습니다. 자동차 싱싱 달리는 큰길은 바람이 매섭습니다. 이와 달리 골목 안쪽은 조용합니다. 높다란 집이 없는데 골목 안쪽은 호젓해요. 골목 안쪽은 바람이 매섭지 않습니다. 작은 집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옹크리니, 매서운 바람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서로서로 등을 기대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어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포근한 볕을 함께 받습니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다가 사라졌다는 덕천마을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엮은 《HUMAN(휴먼)》(이담북스,2014)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은 김야원 님은 머리말에서 “그분들의 흔적 속에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살아온 모습이 깃든 골목동네요, 살아갈 모습이 드러나는 골목집입니다. 비록 철거를 앞두거나 벌써 철거된 집이나 골목이라 하더라도, 그동안 정갈하며 조용하게 지내던 빛이 환합니다. 대문과 담이 빛이 바랬다지만 무척 깨끗합니다. 창틀은 얼마나 가지런한지요. 집안과 마당은 얼마나 깔끔한지요. 해가 드는 곳에 줄을 드리어 빨래를 넙니다. 빨래를 너는 곁에 꽃그릇이 앙증맞게 있습니다. 흐트러짐이 없고 쓰레기가 구르지 않습니다. 어지러움이 없으며 작은 새가 찾아들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아파트를 새로 지으면 작은 새가 찾아들지 못합니다. 아파트에 꾸미는 꽃밭에는 아파트 지킴이가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뿌립니다. 새도 벌레가 아파트 꽃밭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꽃밭에 살구나무나 복숭아나무를 심었어도 꽃만 멀찍이 떨어져 구경할 뿐, 손으로 만지가 무섭습니다. 겉보기로는 놀이터가 있고 꽃밭과 나무가 있는 아파트이지만, 속으로 보면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고, 골바람이 높은 층집 사이로 매섭게 붑니다. 그늘진 자리는 겨울에 더 춥고, 볕이 드는 자리는 여름에 더 덥습니다. 층집마다 빼곡한 에어컨에서 후끈후끈 더운 김이 쏟아집니다.





  사진을 찍은 김야원 님은 “무너뜨리기 위해 포장을 칠 때는 마치 염을 하는 모습같이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의 풍화가 만들어 낸 색감을 누가 감히 흉내낼 수 있을까요?”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골목집을 허물려고 커다란 천을 씌워서 가리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버릇없는 꼴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도무지 골목집을 아끼지 않습니다. 도무지 골목동네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당탕탕 때려부수어야 하는가요. 그처럼 마구잡이로 허물어야 하는가요.


  중국에서는 집을 허물 때에 벽돌 하나하나 알뜰히 건사합니다. 다만, 이제 중국도 벽돌을 건사해서 다시 쓰는 일은 드물지 싶어요. 우리도 지난날에는 골목집을 허물 적에 와장창 때려부수지 않았어요. 벽돌 하나 기둥 하나 살뜰히 뜯어서 새 집을 지을 적에 되살려 썼습니다. 창틀이나 대문을 버리는 일이 없어요. 물건 하나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오래 빈집으로 있다가 스스로 무너진 집이 있으면, 이웃집에서 돌과 쓰레기를 찬찬히 골라서 텃밭으로 가꿉니다. 골목집이 사라진 자리는 어느새 정갈한 밭이 되어요. 게다가 쓰레기라고 하는 것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아니, 쓰레기라 할 것 없이 모두 알뜰히 되쓰지요.


  사진책 《HUMAN(휴먼)》은 무엇을 보여주는 사진을 담았을까요. 김야원 님은 “부서지고 파괴되는 모습 속에서 장려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열심히 살아온 그곳의 사람들 때문이지,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진다는 꿈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부서지거나 허물어지면서 사라지는 마지막 자취를 남기려는 사진이지 싶습니다. 이러한 사진을 찍는 뜻도 틀림없이 있고, 이러한 사진도 얼마든지 찍을 만합니다.





  그러나,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내 마음 한켠이 쓰립니다. 왜 김야원 님은 이런 모습만 찍었을까요. 왜 김야원 님은 텅 빈 골목동네에서 더 짙거나 깊은 사람내음과 살내음을 마주하지 못할까요. 왜 김야원 님은 아직 텅 비지 않은 골목동네 작은 집에서 꽃을 가꾸고 풀을 뜯으며 빨래를 널고 밥을 짓는 작은 사람들 살림살이와 이야기를 더 가까이에서 만나지 못할까요.


  하얗게 맑은 구름과 파랗게 밝은 하늘이랑 골목집 빨래는 눈부신 무지개빛입니다. 살랑이는 바람과 한들거리는 작은 꽃송이와 골목집 창문은 아름다운 무지개빛입니다. 손으로 새긴 문패와 주소패는 집집마다 다른 문살과 창틀 무늬와 어우러지는 무지개빛입니다.


  빛을 보려는 사람은 빛을 봅니다. 꿈을 보려는 사람은 꿈을 봅니다. 이야기를 보려는 사람은 이야기를 봅니다.





  아파트에서 사진을 찍건 골목동네에서 사진을 찍건 아주 마땅히 사람이 나와요. 사람 그림자가 없어도 사람이 나옵니다. 다만, 사람이 나오는 사진이지만, 어떤 사람이 어떻게 나오는 사진인가를 잘 읽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HUMAN(휴먼)》에 추천글을 쓴 박동욱 님은 “칼바람이 부는 겨울과 뜨거운 여름에 악취가 진동하고 옷 속을 파고드는 모기와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건물들 속에서 현장을 기록하고 그들의 삶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게 한 힘은 그의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적인 심장과 미래를 위한 사명감 때문이 아닐까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 추천글을 읽다가 적잖이 소름이 돋았습니다. ‘악취가 진동’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느껴요. 사람들이 살 적에는 쓰레기 하나 구르지 않았을 테지만, 사람들이 모두 떠나 빈 동네에는 술병과 쓰레기와 똥오줌이 구르기 마련이니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를 테지요. 그러면, 이런 고약한 냄새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왜 생겼을까요. 이런 냄새는 골목사람 냄새인가요, 누구 냄새인가요. 사진책 《HUMAN(휴먼)》은 ‘악취가 진동’하고 ‘파고드는 모기’를 뚫고 이룬 멋진 기록물인지요?


  즐겁게 누린 골목마실이 아니라면 즐겁게 나눌 골목빛 감도는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고약하고 힘든 가시밭길을 헤치면서 남긴 기록물이라면 ‘기록하는 값’은 될는지 모르나,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그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사진책 《HUMAN(휴먼)》은 어떤 사진일는지요? 추천글과 같은 사진일는지요, 아니면, 참말 덕천마을에서 ‘마을살이’를 가꾸던 사람들이 애틋하게 떠올리면서 가슴으로 부를 사랑노래를 담은 이야기꾸러미일는지요? 골목집에 깃든 사람들 손길을 읽는 사진이 되기를 빕니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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