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21) 존재 121 :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존재할 수 없는
평론가 없이 사진가는 있을 수 있지만,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전민조 엮음-사진 이야기》(눈빛,2007) 78쪽
평론가 없이 사진가는 있을 수 있지만 (o)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존재할 수 없는 (x)
보기글 첫머리는 “있을 수 있지만”으로 잘 적습니다. 그러나 보기글 끝자락을 “존재할 수 없는”으로 얄궂게 적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쏟았다면 좋았으련만. 한 번 더 마음을 기울였다면 나았으련만.
평론가의 존재 없이도 사진가의 존재는 있지만 (x)
사진가의 존재 없이는 평론가의 존재는 없는 (x)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이 보기글을 쓴 분은 비록 글 끝에 “존재할 수 없는”으로 적지만, 이 앞 세 군데에서는 ‘-의 존재’ 꼴을 넣지 않았습니다. 앞 세 군데는 참으로 잘 적었습니다. 아쉽게 마지막 글월에서 어긋났을 뿐입니다.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있을 수 없다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나올 수 없다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생길 수 없다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이루어질 수 없다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나타날 수 없다
…
퍽 많은 사람들이 덕지덕지 누더기가 되는 얄딱구리한 글을 쓰는 모습을 돌아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얼기설기 엉성한 글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오늘날을 곱씹어 봅니다. 느끼지 못하는 삶입니다. 느끼려 하지 않는 삶입니다.
문득, 사람들이 느끼지 않기로는 말과 글뿐 아니라 이웃사람 삶도 못 느끼지 않나 싶습니다. 이웃사람 눈물과 웃음을 느끼려 하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싱싱 내몰면서 두 다리와 자전거로 이 땅을 디디는 여린 사람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돈없는 사람이 많으나 돈있는 사람도 넘쳐, 서로서로 금이 그인 자리에서 갈갈이 쪼개어진 채 어깨동무를 못합니다. 동무요 이웃이요 식구가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예 남남이 되어 악다구니처럼 치대거나 내치기만 할 뿐입니다.
메마른 삶이 되면 메마른 말이 되고, 맑고 밝은 삶이 되면 맑고 밝은 말이 되는데, 이 흐름을 고이 받아들이며 아끼려는 사람이 아직 퍽 드뭅니다. 착한 마음일 때 착한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착한 생각과 착한 삶과 착한 말로 뿌리내리는데, 이러한 줄기를 맞아들이며 사랑하려는 사람이 아직 너무 적습니다.
사람들이 착한 말을 쓰고 맑은 말을 쓰며 아름다운 말을 쓸 수 있기를 꿈꿉니다. 사람들이 착한 삶에서 비롯하는 착한 말을 쓰고, 맑은 삶에서 비롯하는 맑은 말을 쓰며,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하는 아름다운 말을 쓸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4342.8.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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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없이 사진가는 있을 수 있지만, 사진가 없는 평론가는 있을 수 없다
“없는 것이다”는 “없다”나 “없다 하겠다”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